[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하람, 헤렘
‘사심 없이 가장 순결한 믿음 봉헌’ - 하람. 고대근동 종교의 독특함을 표현하는 용어로, 거룩한 것을 따로 떼어 놓고 온전히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구약성경의 야훼 하느님을 ‘고대의 전쟁신’으로 폄하하는 오해를 접하곤 한다. 아마도 ‘전멸’로 번역되는 ‘헤렘’의 의미를 잘 이해하면 이런 오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고대근동의 헤렘 수천 년 전 고대근동의 전쟁은 성전(聖戰)이었다. 모든 전쟁은 인간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의 전쟁이었고, 전리품과 포로는 당연히 신의 것이었다. 그래서 고대근동의 장수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승리한다면 전리품과 포로를 모두 신에게 바치고 자신은 전혀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맹세하곤 했다. 이때 사용하는 용어가 헤렘, 곧 ‘전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전멸이 실행되었음을 확인하는 고고학적 결과나 문헌은 희박하다. 전쟁에서 이기고 신전이나 종교적 상징물을 파괴한 기록은 풍부하지만, 실제 전쟁으로 얻은 곡식과 가축과 포로를 깡그리 살라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물자와 인력이 많이 드는 일이고, 경제적 이득은 전쟁의 기본목적에 속하지 않는가. 그래서 ‘헤렘(전멸)의 맹세’는 애초부터 전쟁의 결의를 다지거나 명분을 쌓는 목적이었을 것으로 본다. 이미 고대근동 세계에서 헤렘은 ‘전술적 용어’라기보다 ‘종교적 용어’로 탄생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헤렘을 ‘거룩함’, ‘완전한 봉헌’으로 옮기기도 한다. 헤렘의 동사원형인 하람은 고대근동인들의 독특한 종교심을 드러낸다. 아랍어 계통에서 하람은 ‘거룩한 것으로 선포하다’, ‘금지하다’를, 에티오피아어에서는 ‘세속적 사용을 금지하다’를, 아카드어에서는 ‘분리하다’를 의미한다. 고대근동인들의 종교심에 따르면, 하람은 ‘전쟁의 모티프를 차용한 내면의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하람은 오히려 ‘(거룩한 것을) 엄격히 분리하다’, ‘(거룩하므로) 세속적 사용을 금지하다’, ‘(거룩한 것을) 완전히 바치다’는 뜻에 훨씬 가깝다. - 헤렘. 하느님을 지금 여기에서 철저히 신뢰함을 표현하는 말로서, ‘전멸’ 또는 ‘완전봉헌물’ 등으로 옮긴다. 구약성경의 헤렘 구약성경도 이런 맥락에서 헤렘을 사용한다. 광야는 춥고 배고프고 늘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던 곳이었다. 전력과 군사 면에서 약세인 이스라엘은 전쟁을 하기 전에 “저 백성을 제 손에 넘겨주시면, 그들의 성읍들을 헤렘으로(완전 봉헌물로) 바치겠습니다”고 맹세했다(민수 21,2). 모세는 광야에서 이민족과 싸워 헤렘(전멸)시켰고(신명 2,34; 3,4-7),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살아 있는 것을 모두 헤렘(전멸)시켰다(여호 10,40; 11,12.14-15.20). 신명기 20장은 ‘헤렘 신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그런데 본문을 관찰하면 과연 이것이 ‘실제 전쟁 준비지침’인지 퍽 의심스럽다. 만일 이스라엘이 적과 마주치면(1절), 제일 먼저 할 일은 하느님께 전적인 신뢰를 두는 것이고(1절) 전쟁 준비는 사제의 긴 설교로 시작하며(2-4절), 군관들이 뒤를 잇는다(5-8절). 그다음에야 비로소 전쟁을 치를 장수를 임명한다(9절). 이어 마치 ‘정의로운 전쟁’(bellum iustum)의 지침처럼 보이는 규정이 나오는데, 고대의 야만적 전쟁양태를 고려하면 사뭇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다. 이스라엘은 우선 화친을 제안해야 하고(10-11절) 응하지 않을 경우에만 전쟁을 할 수 있는데(12-13절) 이때에도 신학적 의미에 따라 가까이 사는 백성과 멀리 사는 백성을 구분해야 한다(14-19절). 끝으로 무분별한 파괴행위의 금지규정이 이어진다(19-20절). - 헤르몬. ‘헤르몬의 이슬’(시편 133,3)로 유명한 이 산의 이름은 ‘하람한 곳’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지명은 ‘거룩하게 구별된 산’, ‘세속적이지 않은 산’으로 새길 수 있다. 갈색 윗첨자 e는 거의 발음되지 않는다. ‘전사의 내면’으로 사실 전쟁 이야기는 신앙의 근본적인 철저함과 확신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마치 생사의 기로에 선 군인처럼, ‘지금 여기서 철저히’ 하느님을 신뢰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모티프이다. 성 이냐시오가 보여주듯 ‘충실한 전사의 내면’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높은 경지를 훌륭히 표현한다. 그러므로 헤렘은 인간의 편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응답이기도 하다. 아무런 사심 없이 가장 순결한 믿음을 드리겠다는 철저한 내면의 자세가 헤렘이다. 우리는 야만적 폭력이 당연하던 시대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런 폭력적 표현 너머에 있는 보편적 신앙을 봐야 한다. 현대에도 헤렘 신학은 필요하다. 사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의 폭력성은 오히려 더 확대되었다. 그런 현대적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내면의 철저한 자세를 요구받을 때가 있다. 이슬람 신앙의 지하드(聖戰)도 헤렘의 전승을 잇는 말이다. 고대에 이미 종교색 짙은 용어로 탄생한 말을 21세기에 실제 전쟁용어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의 오류도 역시 우리가 전멸 신학을 더 깊이 깨달아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14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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