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베드로의 장담이 남긴 상처 형, 메시아를 만났소 베드로의 본디 이름은 시몬이다. 예수님 생전, 그리고 부활하신 뒤 호숫가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여전히 시몬이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예수님을 만난 날 받은 이름이다(요한 1,42). ‘바위’라는 뜻을 지닌 새로 받은 이름은 새 이름처럼 새롭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베드로’라는 이름의 진가는 사도행전에 가서야 드러난다. 그는 벳사이다 출신이지만(요한 1,44) 많은 학자는 그가 결혼 이후에 ‘나훔의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카파르나움에 가서 살았다고 본다. 복음서에서 가장 짧은 치유 기사인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 치유 사건(마르 1,29-31)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이미 결혼을 했고, 이는 코린토 1서(9,5)에서 바오로가 언급한 베드로의 결혼 사실과도 일치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동생 안드레아 때문이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아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형을 그분께 소개했다(요한 1,41). 그날 자신 앞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도 모르면서 베드로는 자신의 스승 예수님을 그렇게 만났다. 그 새벽의 호숫가 베드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다. 제베대오의 아들들과도 동업 관계였는데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허탕을 치고 그물을 씻던 그날 아침 바닷가에서 한 체험은 베드로에게 예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했을 것이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당황스럽지만 그물을 친 결과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된 사태를 보고 자신이 ‘죄 많은 사람’이라며 당장 무릎을 꿇어 용서를 청한다. 베드로는 이처럼 솔직담백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사람을 낚는 사람’(루카 5,10)이 된다는 것이다. 과연 베드로는 그 순간 이 말뜻을 알아들었을까? 어쨌든 경이로운 그분의 그 말씀은 자신이 특별히 선택되었다는 느낌을 들게 했고 그는 그분을 따라갔다. 전통적으로 교황님이 낀 반지를 ‘어부의 반지’라고 한다. 이탈리아어로는 페스카토리오(Pescatorio)라고 부른다. 이 반지에는 베드로가 배에서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낚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바로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마르 1,17)는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다. 열두 제자 중 세 사람 예수님의 제자단이 생겼다. 제자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났고 뒤에 열두 제자로 확정되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끔 다른 제자들을 남겨 두고 세 사람하고만 시간을 공유하신다(마르 5,37; 9,2; 13,3; 14,33 참조). 그들은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치유해 주실 때도 세 사람만 데리고 그 집에 가셨다(마르 5,37).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맞은쪽 올리브 산에 예수님께서 앉아 계실 때 이 세 사람만이 따로 와서 성전 파괴가 언제 일어날 것인지 조심스럽게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대답해주신다(마르 13,3). 그 셋은 고향에서 고기잡이도 함께했고 서로 잘 아는 사이여서 소통이 자유로웠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 세 사람만을 데리고 가셨을 때 그들만의 특권 의식이라도 있었을까? 그들이 그런 특권 의식이 없었다고 해도 혹시나 다른 나머지 제자들은 선택되지 않은 것에 대해 잘 받아들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 내가 가장 잘나가지 않은가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로 가는 길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왔다.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 60km 지점에 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제자 모두의 대답을 제치고 베드로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대답한다.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공관 복음서에서는 베드로가 하지만, 요한 복음서에서는 라자로의 누이 마르타가 고백한다(11,27). 그 고백으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았다(마태 16,19). 그것은 무엇이든지 그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강력한 열쇠이다. 그러한 그리스도 고백은 베드로에게 어쩌면 마음속으로 자신이 제자들의 으뜸이라고 생각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도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예수님께서 왜 성전 세를 내지 않는지에 대해 베드로에게 물은 것(마태 17,24)으로 보아 아마 주위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높은 산에서 스승의 거룩한 변모도 보았다(마르 9,2). 모세와 엘리야의 발현에 황홀해진 그는 그분들을 위하여 초막을 세 개나 지어 드리겠다고 하였다. 다른 나머지 제자들은 절대 볼 수 없었던 발현을 본 기쁨이 베드로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한 가지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은총(마태 16,17)이어서 자신이 자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순수한 마음은 어디 가고 이제는 보상을 어느 날 권력가이자 큰 부자인 사람이 와서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지 예수님께 물었다(루카 18,18).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에 그 부자는 슬퍼하며 떠났다. 베드로는 즉시 자신이 그 부자 권력가랑 얼마나 다른지 이렇게 피력한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가진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속에 있는 말을 안에 담아 두지 못한다. 마태오 복음서는 더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19,27) 그즈음 설상가상으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마태 20,20-21). 치맛바람이 대단한 어머니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열 제자의 반응이다. 그들은 심히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마태 20,24). 루카 복음서에는 제자단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제자들의 논쟁을 다룬다(9,46). 이러한 정황을 생각해 볼 때 제자단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9,48)라고 하신 예수님의 정신을 그들은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 발 씻는 날의 호언장담 베드로의 호언장담하는 성격은 발 씻는 날 드러난다. 먼저 발 씻김을 받은 다른 제자들이 무안할 정도로 베드로는 자신의 발을 예수님께서 씻지 못하시게 한다. 만찬에서 배신의 예고와 함께 베드로는 ‘모두 떨어져 나갈지라도’ 자신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남과 비교하는 자만을 드러낸다.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에 그는 더욱 힘주어 장담한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결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마르 14,31). 그 장담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사제의 뜰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추종자로 지목된 이유는 그의 갈릴래아 억양 때문이었다.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마태 26,73). 갈릴래아 사람은 유다인과는 다른 관행과 관습을 가지고 있었고 독특한 억양의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누구든 이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젤롯」 참조). 닭이 울기 전에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강하게 예수님을 부인했다. 예수님의 눈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다. 짧고 긴 침묵의 순간 세상이 까만 종이 같은 배경,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시는 눈빛이 새겨졌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 말씀이 분명하게 ‘생각났고’(루카 22,61),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주님 안에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가 베드로는 비겁함과 연약함의 흔들림을 통해 점진적으로 정화되고 강해져 갔다. ‘교회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우세비오는 하느님께서는 위대한 권능의 사도 베드로를 로마로 부르셔서, 그의 장점 때문에 그를 다른 사도들의 지도자로 택하셨다고 했다( 「사도들」 2.14.25). 그러나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은 장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그가 당시의 교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가 되기엔 오히려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바닷가에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었을 때 그의 마음은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치 영화 ‘사일런스’에서처럼 무시무시한 핍박에서 배교를 한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게스 신부, 기치지로의 엄청난 무게의 고뇌와 존재적 절규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에게 상처를 남긴 그의 장담은 그가 새 시대 공동체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만든 가치 있는 실패의 경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을 통해 사랑은 말로 장담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존중과 용기와 책임감이 통합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배웠을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확실히 변했고 대담하게 예수님을 증언할 뿐만 아니라 기적까지 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최고 의회에서 예수님을 증언할 때 의회 의원들은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이지만 ‘담대함’에 놀라워했다고 한다(사도 4,13 참조). 이제 베드로는 사람들이 그가 “지나갈 때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누구에겐가 드리워지기를”(사도 5,15) 바랄 정도의 인물이 되었다. 그가 로마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와 만났을 때 무릎 꿇은 코르넬리우스를 일으키며 “일어나십시오. 나도 사람입니다.”(사도 10,26)라고 했다. 이제 그에게서 자만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지도자로서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인 겸손이 존재 전체에서 묻어난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인생을 살아갈 때 실패를 한 사실보다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하느님 안에서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용기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 허귀희 클라라 -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수녀회 수녀. 예수회 영성 센터에서 ‘성경과 영성’을 가르치며, 성경의 학문적이고 영성적 의미를 통합하고자 연구하고 있다. 미국 엘름스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7년 6월호, 허귀희 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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