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야훼, 아도나이
‘나의 주님’… 심신 가다듬고 부르는 신성한 이름 요드로 시작하는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낱말은 '야훼'라고 할 수 있다. - (그림1) 야훼. 하느님의 이름이다. 학문적 글에서는 그대로 읽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도나이’ 등으로 바꿔 읽어야 한다. 오렌지색 윗첨자 e는 거의 발음되지 않는다(무성셰와). 독특한 종교적 태도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은 히브리어로 ‘야훼’라 한다.(그림1) 이 이름의 표기법에 구약성경의 고유한 영성이 깃들어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이 이름을 감히 인간의 입에 올릴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낱말을 ‘아도나이’(나의 주님) 등으로 바꿔 읽었다.(그림2) 성경뿐 아니라 개인 저술 등에서도 ‘야훼’라고 쓰고 ‘나의 주님’(아도나이)으로 읽었다. 이를테면 ‘야훼께서 말씀하셨다’고 쓰인 곳을 ‘나의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로 읽는 식이다. 히브리어 강독시간이면 초보자들은 이런 독특한 독법(讀法)에 애를 먹는다.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곳마다 빠짐없이 ‘아도나이’(나의 주님)으로 바꿔 읽어야 하니 말이다.(‘야훼’를 ‘야훼’로 읽으면 감점이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유다교든 이 점은 같다. 하느님의 이름이 언제 나오는지 늘 긴장하고 성경 본문을 대해야 한다. 표기법의 전승 - (그림2) 아도나이. ‘나의 주님’이란 뜻으로, ‘야훼’ 대신 읽는 대표적 방법이다. 그래서 독특한 전승이 탄생했다. ‘야훼’의 자음에 ‘아도나이’(나의 주님)의 모음을 붙여 새로운 표기를 만든 것이다.(그림3) 이 표기는 ‘야훼’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라는 세심한 ‘독법지침’이요,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곳마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귀 기울이라는 ‘영성지침’이다. 또는 아예 모음을 빼고 자음만 쓰기도 했는데, 이 표기는 ‘하느님의 이름을 표현하는 네 문자’라는 의미에서 신명사문자(神名四文字 tetragrammaton)라 한다.(그림4) 물론 신명사문자도 ‘아도나이’(나의 주님)로 읽는다. 그런데 그리스어 성경을 주로 쓰던 그리스도교는 이 중요한 전승을 그만 망각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 독특한 표기법이 하느님 이름의 고유한 표기라고 오해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이름을 ‘예호바’로 옮긴 오류의 시작은 1381년 도미니코회원 마르티누스(Raymundus Martinus)의 저술이다. 그리고 레오 10세 교황의 고해신부였던 갈라티누스(Petrus Galatinus) 등이 이 오류를 확산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 결과 16세기 이후 제단이나 성화 등에 ‘예호바’라는 이름이 자주 쓰였고, 종교개혁 전통에서 더욱 확산되었다. 하지만 현재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대부분의 교회는 오류를 바로잡았다. 최근의 영어성경은 대개 하느님의 이름을 Lord나 대문자 LORD로 옮기는데, ‘아도나이’의 독법을 따른 것이다. 우리말 번역본도 사정이 비슷하다. 가톨릭 교회의 「성경」은 굵은 글자의 ‘주님’으로, 개신교회의 「표준새번역」은 보통글자의 ‘주님’으로 옮겨 이 전통에 참여한다. - (그림3) 예호바. ‘야훼’의 자음과 ‘아도나이’의 모음을 결합시켜 만든 독특한 독법(讀法)의 대표적 예다. 그러므로 이 표기는 ‘예호바’ 또는 ‘여호와’가 아니라, ‘아도나이’로 읽어야 한다. 아도나이의 윗첨자 a(그림2의 분홍색)가 윗첨자 e(분홍색)로 바뀐 것은 히브리어의 고유한 음운법칙을 따른 것이다. 살아있는 하느님 표기 그런데 현대 라삐들의 영어 저작에서 ‘God’이란 낱말을 ‘G-d’ 또는 ‘G-D’로 적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독일어로 ‘Gott’를 ‘G-tt’로 적는 글도 보았다. 이는 자음만 적는 신명사문자의 방식을 현대어에 적용한 것이다. 이 표기법을 보며 필자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하느님의 표기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라삐들의 깊은 신앙심을 접한 것 같아서였다. 성경 히브리어만의 독특한 표기법을 오늘날에 살려내는 그들의 노력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실로 수천 년의 전승을 잇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에 영감을 받아 필자는 20여년 전부터 노트에 ‘하느님’을 ‘ㅎㄴㄴ’으로 적고 있다.(그림4) 물론 이런 표기는 필기속도 향상에 도움이 된다. 그 뿐만 아니라 ‘ㅎㄴㄴ’ 표기는 종이에 쓰든 컴퓨터 화면이든 눈에 잘 띄기 때문에, ‘하느님’에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어서 좋다. ‘ㅎㄴㄴ ㄴㄹ’(하느님 나라) 또는 ‘ㅎㄴㄴ ㅂㅅ’(하느님 백성) 등으로 확장해서 간편히 사용할 수도 있다. 한글의 빼어난 확장성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셈어(히브리어)와 인도유럽어(독일어, 영어)에서 발전된 독특한 표기법을 이렇게 언어형식적으로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는 문자는 흔하지 않다. 한민족 복음전파의 결정적 계기가 되신 성 김대건 신부님 축일이다. 부디 성경원어와 우리말이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품는다. 구세사 수천 년의 전승이 이 땅에서도 생생히 살아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그림4) 신명사문자. 신명사문자는 ‘야훼’(그림1)의 자음만 표기한 것이다. 히브리어의 모음기호는 자음보다 훨씬 후대에 생겼기 때문에 가장 고대의 표기라고 볼 수도 있다. 자음만 쓰는 방식을 영어에 적용하여 G-d로 쓰기도 한다. 이 방식을 한글에 적용하면 ㅎㄴㄴ이 적당한데, 필기의 속도를 높이는 실용적 효과도 적지 않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7월 2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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