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과 함께하는 치유여정] 판관 기드온이 들려주는 지혜 인생이란 예측불가능한 상황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옛부터 인간은 이 예측불가능한 일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 그 안에서 어떤 법칙성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것을 알게 되면 삶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인생의 지혜라 불렀습니다. 구약성경의 저자들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그 관찰을 통해 얻은 지혜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현자들의 남다른 점은 세상만사를 하느님과의 관계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지혜들 가운데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놀라운 지혜도 있습니다. 이번 달 구약인물과 함께 떠나는 치유 여정에서는 기드온이라는 판관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지혜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 앞에 펼쳐진 인생 길 앞에서 어디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모든 분을 이 여정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기드온이 판관으로 불림을 받던 시절에 이스라엘은 미디안이라는 나라의 압제를 칠 년간 받고 있었습니다(판관기 6장 참조). 미디안족은 아말렉족, 동방인들과 연합하여 메뚜기 떼처럼 쳐올라와서 이스라엘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의 생활은 몹시 곤궁해졌을 뿐만 아니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미디안족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산속 동굴이나 토굴 속에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극심한 고통이 이어지자 백성들은 하느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기드온을 그들을 구원자로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을 설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기드온은 자신의 힘은 너무 약해서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그리하면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족을 칠 수 있을 것이다.’는 주님의 말씀에도 기드온은 자신에게 말을 건네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자신이 준비해온 고기와 누룩없는 빵을 천사가 지팡이로 불살라 버리자 그제서야 기드온은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락합니다. 기드온이 비록 사명을 수락하기는 하였어도, 인생을 살게 하는 참된 힘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는 아직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걷는 여정을 통하여 그는 이것을 배워가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놀라운 인내와 끈기로 기드온의 인생 여정 전체를 이끌어가실 것이며, 기드온은 점차로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알아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기드온에게 주신 사명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의 지방 사람들이 믿고 있던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디안족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역경에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기드온은 자신의 아버지 집에 있던 바알 제단을 허물고 그 옆에 있는 아세라 목상을 잘라 버린 후 주님의 제단을 쌓고 번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기드온은 집안과 성읍 사람들이 이를 알게 되면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두려움에 가득 차서 자기 집안의 종 열 명을 데리고 한밤중에 이 사명을 수행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 바알 제단이 사라진 것을 안 성읍 사람들이 기드온을 죽이러 옵니다. 그런데 사건은 기드온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해결됩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의 아버지가 나서서 기드온의 행위를 변호한 것입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바알 숭배를 조롱하면서, 바알이 진짜 신이라면 스스로를 옹호하게 해보라고 말합니다. 바알 제단이 그의 집에 있던 것으로 보아 요아스는 그 성읍의 족장이었을 것입니다. 족장인 그가 바알을 옹호하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선언함으로써 기드온은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두려워 하지 않는 기드온’, 더그 라이스이 사건을 통하여 인생을 살게 하는 참된 힘이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기드온이 배웠다면, 두 번째 사명을 수행하면서 그는 이를 더욱 분명하고 확고하게 배우게 될 것입니다. 미디안족이 아말렉족, 동방인들과 연합군을 형성하여 이스라엘 땅인 이즈르엘 평원에 진을 치자 이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기드온도 군사들을 모집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하기 전에 기드온은 주님께서 정말로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주님께 다시 표징을 청합니다. 타작 마당에 양털 뭉치를 내놓았는데, 마당은 하나도 젖지 않고 양털 뭉치만 이슬에 젖어 있다면, 반대로 타작 마당은 이슬에 젖어 있는데, 양털 뭉치만 말라 있는 일이 일어난다면 확신을 갖겠노라고 기드온은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주님은 기꺼이 기드온의 표징 요구를 들어주십니다. 그리하여 기드온의 군대는 미디안 진영을 마주하여 하롯 샘가에 진을 칩니다. 그때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시어 군사 수가 너무 많으니 그 수를 줄이라고 합니다. 삼만이천 명이 모집되었지만 메뚜기 떼처럼 많은 미디안 군에 비하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국 일을 이루시는 분이 당신임을 배우게 하시려고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기드온은 이에 순종합니다. 먼저, 모집된 군사들 가운데 두렵고 떨리는 자들을 돌아가게 하니 이만이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수도 많다 하시며 군사 수를 더 줄이기 위해 ‘물마시기 시험’을 하게 합니다. 어떤 군사들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고, 어떤 군사들은 개처럼 물을 핥아 마셨습니다. 선택된 이들은 물을 개처럼 핥아 먹은 삼백 명이었습니다. 이 삼백 명의 군사들은 최정예 부대원일까요? 아니면 오합지졸일까요? 전쟁에서 무기를 내려놓는 이는 기본적으로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갖추지 못한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처럼 물을 핥아 먹기 위해서는 무기를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기드온으로 하여금 선택하라고 하신 이들은 정예부대가 아니라 전쟁에 나설 자격이 없는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주님은 이들을 선택하라 하셨을까요? 기드온이 배워야만 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 우리가 그를 통하여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은 삼백 명의 오합지졸을 이끌고 전쟁에 나서야 할 기드온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를 격려하기 위하여 하느님은 기드온에게 그날 밤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기드온은 한 미디안 군사의 꿈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꿈은 이스라엘이 승리할 것임을 알려주는 꿈으로 그 이야기를 들은 기드온은 용기백배하여 그날 밤으로 공격을 개시합니다. 기드온은 삼백 명의 군사를 세 부대로 나누고, 그들에게 나팔과 횃불을 감춘 빈 단지 하나씩을 나누어줍니다. 한 손에는 나팔을, 다른 한 손에는 단지를 들었으니 이 군사들 가운데 누구도 무기를 갖지 않은 셈입니다.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이스라엘의 승리가 인간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삼백 명의 군사들은 미디안 진영을 둘러싸고 기드온의 신호에 따라 한밤중에 나팔을 불면서 단지를 깨뜨렸습니다. 횃불과 갑작스런 나팔 소리에 둘러싸인 채 정신이 없어진 미디안 군사들은 갈팡질팡하며 자기들끼리 싸우다 후퇴하게 됩니다. 퇴각하는 미디안 군대를 뒤쫓기 위해 기드온은 퇴각 길에 있는 다른 지파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이들의 도움으로 기드온과 군사들은 미디안 군대를 이스라엘 땅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이 사건을 통하여 힘이 있다고 인생이 탄탄대로 열리는 것도 아니며, 힘이 없다고 모든 길이 막히는 것도 아님을 배웠습니다. 인생 길을 열어가는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지혜는 인생의 주인이신 분을 신뢰하며 그분께 삶의 주도권을 맡겨드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미디안의 손에서 해방된 백성들이 그와 그의 집안을 왕조로 세우려 할 때 그는 확신을 가지고 거절합니다. “여러분을 다스리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배웠던 이 지혜는 상식만을 믿는 세상에서는 참으로 배우기 어려운 지혜이기도 합니다. 이 지혜가 여러분의 발길을 비추는 빛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기드온의 삶과 구원 체험은 참된 힘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줍니다. 흔히 우리는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이것도, 저것도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거듭해서 이것을 강조합니다. 텔레비전의 광고는 멈추지 않고, 이것을 가지면 행복해지고, 저것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떠들지 않습니까? 그런 선전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기드온이 들려주는 지혜를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생활성서, 2016년 7월호, 김영선(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 수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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