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69)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코린 2,15)
새 계약의 사도들이 선포하는, 구원으로 이끄는 화해의 말씀 복음 선포 직무에 대한 성찰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특징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내용 중 하나는 복음을 선포하는 직무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성찰입니다. 사도의 직무에 대해 언급하는 신약성경의 내용에서 잘 알려진 것은 바오로의 협력자였던 루카가 전하는 사도행전의 표현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공동체의 일을 담당할 부제들을 뽑으면서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힙니다.(사도 6,4) 또 마티아 사도를 뽑는 이야기에서 보면 사도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표현됩니다.(사도 1,22) 이런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바오로 사도가 이해했던 사도 직무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나 멸망할 사람들에게나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죽음의 향내고,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향내입니다.”(2코린 2,15-16) 바오로 사도는 자신과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표현의 배경에는 당시 로마의 ‘개선 행진’이 자리합니다. 로마는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며 개선 행진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 행진의 가장 앞에는 신에게 감사하는 의미를 담은 향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개선 행진에서 사용하는 이 향은 로마에게는 승리의 향기로 그리고 로마에 패한 이들에게는 죽음의 향기로 여겨졌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마치 로마의 개선 행진처럼 말씀을 선포하는 이들 역시 사람들에게 전하는 향기라고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불의한 이들에게는 심판을 전하고 의로운 이들에게는 구원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전하는 이들은 개선 행진에서 피어오르는 향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또한, 바오로 사도는 사도의 직무를 “새 계약의 일꾼”으로 생각합니다.(2코린 3,6) 여기서 말하는 계약은 문자가 아닌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바오로 사도의 표현은 예레미야서 31장 33절의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구약의 십계명처럼 돌 판에 새겨진 계약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 곧 문자가 아닌 성령에 의해 주어진 계약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계약은 사라질 것이지만, 성령을 통한 새 계약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바오로 사도에게 사도의 직무는 “성령의 직분”이고(2코린 3,8) 사람들을 “의로움으로 이끄는 직분”입니다.(2코린 3,9) 하느님은 성령을 통해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으로, 영광으로, 궁극적으로 구원으로 이끌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 이 모든 것을 바오로 사도는 ‘자유’를 위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그들에게 해방을 주었던 것처럼 이제 하느님은 성령을 통한 새로운 계약으로 믿는 이들에게 의로움을 통한 자유를 선사합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코린 3,18) 하느님이 부여한 화해의 직분 바오로 사도에게 하느님의 가장 큰 업적은 죄 중에 있던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과 화해시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느님과 화해를 위한 하느님의 업적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화해 말씀을 전하는 “화해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입니다.(2코린 5,18) 바오로 사도의 사도 직무에 대한 성찰 역시 충실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화해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들을 죄에서 구원으로 이끄는 화해의 말씀을 사도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선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2코린 5,20) 사도의 직무는 이렇듯 말씀에 봉사하는 직분입니다. 이 직무는 개인적인 자격이 있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물로 이해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0월 15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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