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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의 세계: 요시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11 조회수5,877 추천수0

[성경의 세계] 요시야 (1)

 

 

요시야는 유다 16번째 왕으로 재위기간 BC 640~609년, 31년간 왕으로 있었다. 사실상 마지막 임금이다. 그가 죽자 4명의 왕이 더 등장했지만 유다왕국이 택한 것은 아니다. 이집트와 바빌론이 임명했다. 요시야는 한창나이에 죽었다. 이후 유다는 급격히 기울었고 강대국의 간섭과 꼭두각시 왕들로 멸망했다. 요시야는 부친 아몬이 즉위 2년만에 쿠데타로 죽자 8살에 왕이 되었다. 반란세력은 집권하지 못했다. 급변 속에서 요시야를 지킨 이들은 제관들이었다. 그들은 어린 왕을 보필하며 훗날의 종교개혁을 완성시킨 이들이다.

 

히브리인은 처음부터 주님 유일신만 믿었던 건 아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뒤에도 신앙에 있어선 혼합주의였다. 주님도 믿고 가나안 토착 신도 섬겼다. 그래서 산당 제사가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것이다. 종교개혁은 이러한 민중 신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요시야는 재위 18년에 대대적인 성전 수리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율법이 담긴 책을 발견했다(2열왕 22,8). 구약성경 5번째 책인 신명기다. 발견된 율법서는 개혁의 지침서가 되었다. 먼저 성전 안에 있던 이방인 신상과 제단을 찾아내 키드론 골짜기에서 불태웠다. 우상숭배와 조금만 선이 닿아도 가차 없이 제거했다. 그리곤 마침내 산당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종사하던 사제들은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2열왕 23,20). 공포 분위기였다.

 

개혁은 북이스라엘 수도 베텔에서도 실시되었다. 첫 임금 예로보암은 이곳에 산당과 제단을 세우고 제사 지냈던 것이다. 북쪽 백성이 남쪽 예루살렘에 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요시야는 베텔 산당을 헐어버린다. 그리곤 인근 무덤에서 뼈를 가져와 제단 위에서 태웠다(2열왕 23,16). 시체 뼈를 태워 부정한 곳으로 만든 것이다.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행위였다. 북쪽 사람들은 착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요시야가 북쪽 땅 일부를 되찾았음을 시사한다.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다.

 

종교 혁신은 유다가 망한 뒤 실현되었다. 요시야 때 확립된 모세오경 때문이다. 율법이 정착되었기에 제관들이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국땅을 떠돌면서도 뭉칠 수 있었던 이유다. 이후 혼합 신앙은 힘을 잃었고 주님 신앙만 남게 된다. 지방의 종교 권한은 사라지고 예루살렘 권위만 유일해졌다. 모세오경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요시야는 현대 유대교의 문을 열었던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7년 12월 10일 대림 2주일(인권주일 · 사회 교리 주간)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요시야 (2)

 

 

요시야 왕이 등장할 때 근동엔 새로운 국제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역 맹주였던 아시리아가 몰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동(近東)은 유럽에서 볼 때 가장 가까운 동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터키와 레바논, 시리아와 요르단,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가리킨다. 힘의 공백이 생기자 이집트와 바빌로니아가 선두자리를 노렸다. 바빌로니아는 지금의 이라크다. 강력한 힘으로 아시리아를 때리자 아시리아는 변방에 흩어진 군대를 불러들였다. 그러면서 이집트에 원군을 청했다. 이렇게 해서 이집트 왕 느코(Necho)는 유다 땅을 밟았고 요시야와 부딪쳤다. 역대기에 등장하는 므기또 전투다(2역대 35,22).

 

유다왕국은 혼란기를 틈타 아시리아 속국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면서 북쪽 땅도 회복하려 했다. 요시야는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읽었고 통합 이스라엘을 위해 매진했다. 북쪽 수도였던 사마리아와 베텔을 장악했고 종교개혁까지 실시했다(2열왕 23,19).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이집트 왕 느코였다. 아시리아 뒤를 이어 근동의 맹주를 노리는 야심찬 임금이었다. 라이벌은 바빌로니아였다. 열왕기에 의하면 느코는 아시리아 왕을 만나러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고 있었다. 연합군을 형성해 바빌로니아를 칠 계획이었다. 요시야는 제지하러 나갔다가 므기또 싸움에서 전사한 것이다(2열왕 23,29).

 

당시 요시야 나이 39세.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느코는 유다왕국 요시야를 알고 있었다. 개혁 정치로 나라를 안정시켰고 조금씩 북쪽 땅을 차지하며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거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를 없애고 꼭두각시 왕을 내세워 유다를 지배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후 요시야 장남 여호아하즈가 왕이 되지만 느코는 끌어내린다. 왕이 된지 석 달 만의 일이다. 느코는 둘째아들 엘야킴을 왕위에 앉히고 여호야킴으로 개명하게 했다. 자신이 정해준 이름으로 살라는 뜻이었다. 유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고 외세의 간섭에 허덕이다 몰락하게 된다. 요시야는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죽고 4년 뒤(BC 605년) 느코는 아시리아와 연합해 바빌로니아를 공격했지만 지고 만다.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벌어진 카르크미스(Carchemish)전투다. 이후 아시리아는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고 느코도 이집트 밖을 나오지 못했다. 유다는 바빌로니아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2017년 12월 17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요시야 (3)

 

 

요시야 재위 31년은 근동의 격변기였다. 아시리아는 기울고 바빌론은 떠올랐다. 요시야는 바빌론에 가담해 속국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편 이집트는 아시리아와 손잡고 맹주자리를 노렸다. 아시리아 역시 이집트를 이용해 권좌를 지킬 심산이었다. 상황이 정리된 건 기원전 605년 카르크미스(Carchemish) 전투 이후다. 이집트 아시리아 연합군이 무참히 깨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근동의 최강자는 바빌로니아가 되었고 임금은 네부카드네자르 2세였다.

 

이집트 왕 느코는 므기또에서 요시야를 죽였다. 바빌론에 편승한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유다는 여호아하즈를 왕으로 세우지만 즉각 폐위 당한다(2열왕 23,33). 그 역시 바빌론 쪽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느코는 여호야킴을 왕위에 앉히곤 심복으로 삼았다. 이렇게 유다는 이집트 속국이 되었다(2열왕 23,35). 한편 카르크미스 전투에서 승리한 바빌론은 이집트 본토를 치면서 예루살렘을 공격했다. 속국을 먼저 손본 것이다. 여호야킴은 항복했고 충성을 맹세했다. 바빌론 속국으로 돌아선 것이다. 네부카드네자르는 포로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다니엘과 세 젊은이도 포함되어 있었다(다니 1,6). 1차 유다 침공이다.

 

이후 여호야킴은 바빌론을 섬겼다. 그러나 3년 뒤 반기를 든다(2열왕 24,1). 정세를 잘못 읽은 것이다. 바빌로니아는 속국 군대를 보내 응징했다. 열왕기는 약탈 부대라 했다. 이 싸움에서 여호야킴은 붙잡혀 이집트로 끌려갔다(2역대 36,6). 직접 전투에 나섰던 것일까? 아무튼 36살 한창나이였다(2열왕 23,36). 여호야킨 왕자가 임금이 되었다. 18살이었다. 하지만 3달 뒤 폐위된다. 네부카드네자르가 직접 예루살렘을 치러오자 항복한 것이다(2열왕 24,12). 바빌로니아는 치드키야를 왕으로 세우고 퇴각했다. 그는 요시야 셋째 아들이었다(1역대 3,14). 대신들과 왕족은 포로가 되었고 여호야킨도 함께 끌려갔다(2열왕 24,15). 두 번째 유다 침공이다.

 

여호야킴(Jehoiakim) 말뜻은 주님께서 일으킨다는 의미다. 킴의 원형은 아람어 쿰(koum)이다. 마르코복음 5장 14절 ‘탈리타 쿰’은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으로 역시 아람어다.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공용어가 아람어였기에 유대인은 바빌론 포로 때부터 아람어를 사용했다. 이후 일상적인 말이 되었고 예수님께서도 아람어를 쓰셨다. 여호야킨(Jehoiakin)은 주님께서 세운다는 뜻이다. 왕이 된지 3달 만에 폐위된 비운의 왕자다. 바빌론에 끌려갈 때 18살이었고 유배생활 37년째 되는 55세에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2열왕 25,27). [2017년 12월 24일 대림 제4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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