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클레멘스는 12사도 및 그 목격자의 증언을 직접 전해 들었거나 사도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더라도 사도적 전통에 연결되어 있는 자들인 사도교부에 속하며 로마의 제4대 주교였다. 이레네우스에 따르면, 클레멘스는 “사도들(베드로와 바오로)을 자신의 눈으로 보았고 그들과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설교가 여전히 그의 귀에 맴돌고 있었고 그들의 전승이 여전히 그의 눈 앞에 있었다. 무엇보다 그 혼자가 아니었다. 이 시기에는 사도들에게 교육을 받은 이가 여전히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에 따르면, “도미씨아누스 치세 12년에 아나클레투스는 12년 동안 로마 주교를 지낸 후에 클레멘스에게 그 직을 넘겨 주었다.” 이 증언은 클레멘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 재위12년에서 트라야누스 황제 재위3년까지, 즉 92~101년 사이에 로마 주교로 있었음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교황인명록』(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클레멘스는 로마출신이고 아버지는 파우스티누스(Faustinus)이며 9년 2개월 10일 동안 교황직을 수행하였다. 재위기간 동안 12월에 두 번의 서품식을 집전하여 10명의 신부와 2명의 부제를 만들었다. 또한 15개의 지역에 주교들을 축성하였고, 트라야누스 황제 재위 3년에 순교하였다.
오리게네스의 기록을 따라 에우세비우스는 『교회사』3, 15에서 “클레멘스는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쓴 그 사도가 동료 일꾼이라고 기술한 자였다.”라고 적으면서, 사도 바오로가 필립비서 4,3에서 말하는 클레멘스와 동일시하고 있지만 신빙성이 희박하다. 더욱이 4세기 말에 작성된 『클레멘스의 수난』(Passio Clementis)과 6세기 말에 나타난『성 클레멘스의 순교』(Martyrium S. Clementis)은 클레멘스에게 순교자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하지만 고대의 저술가들은 이에 대해 어떠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히에로니무스 역시『명인록』15,4에서 “트라야누스 황제 재위 제3년에 죽었고 로마에 세워진 한 성당이 오늘날까지 그의 이름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고 기록할 뿐이다.
2. 저술
클레멘스는 우리에게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Epistula ad Corinthios)를 남겨주었다. 약 96년경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신약성경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저술로서 최초의 교부문헌으로 불려지며 전체 65장으로 되어 있다. 170년까지 코린토 교회의 전례 집회에서 읽혀지는 등 고대 교회에 매우 널리 알려졌으며, 때로 정경에 근접하는 권위를 누리기도 했던 이 편지는 교회사와 교의사 그리고 전례사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이 서간이 쓰여지게 된 배경과 이유는 바오로의『코린토 1서』의 경우와 비슷하다. 즉 바오로가 1코린 1,10-17에서 꾸짖었던 코린토 교회의 내분이 재발 및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레네우스에 의하면, “클레멘스 치하 때 코린토의 형제들 사이에 심각한 분열이 생겼다. 따라서 로마 교회는 코린토 인들을 평화 안에서 화해시키기 위해, 그들의 신앙을 쇄신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일찍이 사도들로부터 받은 전승을 선포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편지를 그들에게 보냈다.”
이 불화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일부 평신도들이 교도권에 도전하여 성직자들을 추방하였고, 다른 성실한 신도들은 쫓겨난 성직자들을 옹호함으로써 고린토 교회 자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끌레멘스는 “연이어 우리에게 찾아온 급작스런 재앙과 역경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사이에 말다툼이 되고 문제들, 곧 몇몇 분별없고 건방진 사람들이 하느님의 간택을 받은 이들에게 맞지 않는 고약하고 몹쓸 항거 사건을 일으킨 일에 대해 우리가 너무 늦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서간을 시작한다. 이어서 그는 구약과 신약의 예를 들어 불목과 시기를 꾸짖으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모범된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덕행들로 애덕과 사랑, 참회, 순명, 자비심과 관대함, 평화와 유순함의 원천인 겸손 등을 열거한다. 이러한 덕행들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모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의 질서와 조화, 미래의 삶에 대한 약속, 현재 그리스도를 통해 내리시는 하느님의 축복 등을 언급하고 있다.
제2부에서 서한은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질서의 중요성을 소개한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사도들을, 사도들은 주교와 부제들을 파견하고 계승케 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교계제도는 신적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평신도가 교직자를 반대하고 몰아내는 것은 커다란 잘못인 것이다. 이러한 분열은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상처 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제라도 뉘우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분쟁의 종식을 알려주는 기쁜 소식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끝맺고 있다.
3. 신학사상
1) 그리스도인의 삶
서한의 직접적 목적인 조화와 순명에의 권고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구도 안에서 표현된다. 코린토 교회에 생긴 문제의 근본적 이유는 애덕과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다른 덕행들의 결핍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클레멘스는 평화와 형제적 사랑의 가치에 대한 감동적 호소를 하고 있으며, 참회와 겸손을 권고한다. 또한 불화와 질투의 파괴적 결과를 묘사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조화와 질서에서 나오는 선익에 대해 묘사한다. 교황은 우주의 질서 안에서, 그리고 인간의 육신 안에서 볼 수 있는 일치가 회복될 것을 기대한다. 이 일치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삶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2) 부활
클레멘스는 부활을 인간의 충만한 실현으로 그리고 약속에 대한 기쁘고 확실한 기다림으로 제시한다. 부활은, 부활한 이들의 맏이인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초하는 것이며, 낮과 밤 그리고 씨앗과 열매라는 구도에서 설명된다. 아울러 예수의 부활과 이집트의 신화에 나오는 피닉스 새의 신화를 연결시키고 있다. 이 피닉스 새의 이야기는 후기 그리스도교의 문학과 성미술 그리고 모자이크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교회사적 관점에서 보면, 서간 제 5장은 사도 바울로가 로마제국의 서쪽 끝, 아마도 스페인까지 선교하였고, 사도 베드로와 바울로가 로마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하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는 로마교회의 수위권과 관련된 교의 문제와 연결된다. 또 6장에서는 네로 황제의 박해가 얼마나 잔인했으며, 박해 때에 순교한 이들 가운데 여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로마교회와 보편교회의 사목자로서 클레멘스는 복음의 순수성과 가르침의 정통성을 보존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윤리에 맞는 생활을 강조하며, 교회의 지도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공동체의 목자들에게 순명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는 구원의 의미를 전하고자 했던 그의 마음과 노력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