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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의 세계: 즈루빠벨 성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9 조회수6,482 추천수0

[성경의 세계] 즈루빠벨 성전 (1)

 

 

유배에서 돌아온 유대인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몰입한다. 믿음의 중심인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즈루빠벨 성전이다. 당시 유대 총독이 즈루빠벨(Zerubbabel)이었기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유다 지파 사람으로(마태 1,12) 바빌론에서 태어난 2세였다. 즈루빠벨 뜻은 바빌론 출신이란 의미다. 이스라엘 이름은 세스바차르였다(에즈 1,8). 유대인 본국 귀환이 시작될 때 키루스 왕은 그를 총독으로 임명했다. 5만의 군중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였다. 1차 바빌론 귀환이다(BC 537년). 이렇게 해서 즈루빠벨은 이스라엘 행정을 책임진 관료가 되었다. 그와 함께 대사제 예수아는 바빌론이 약탈해간 성전 기물을 되찾아왔다. 물론 키루스 왕의 호의였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듬해 둘째 달(에즈 3,8). BC 537년 5월경, 즈루빠벨과 대사제 예수아는 성전 기공식을 한다. BC 587년 바빌론이 파괴한 솔로몬 성전을 다시 짓는 것이었다. 장소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규모는 초라했다. 옛 성전의 웅장함을 봤던 노인들은 눈물을 흘렸다(에즈 3,12). 그러나 백성 전체는 환호하였다. 이후 사마리아인과 불화 사건에 휩싸인다. 그들의 성전 건축 동참을 원로들이 막았기 때문이다. 이교도와 섞여 살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정한 존재가 되었는데 어떻게 참여시키겠냐는 것이었다. 사마리아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건축을 반역행위로 몰았다(에즈 4.16). 예루살렘 성이 완공되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 고발한 것이다. 이후 성전 공사는 16년간 중단된다. 즈루빠벨은 본국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언자 하까이와 즈카르야는 민중을 독려하며 기다리자고 외쳤다. 마침내 다리우스 왕 2년 공사가 재개된다(BC 520년). 임금은 국고지원을 명했고 조공 일부가 건축비로 들어오게 된다(에즈 6.8). 모든 결정의 중심에는 즈루빠벨 총독이 있었다.

 

마침내 기원전 516년 성전은 완공되고(에즈 6,15) 이듬해 봉헌식을 가졌다. 역사에서 말하는 제2성전이며 즈루빠벨 성전이다. 훗날 헤롯 대왕은 화려하게 증축했다. 46년 걸렸다. 제3성전이라 불리는 헤롯 성전이다. 하지만 70년 독립전쟁으로 무참히 파괴되었고, 통곡의 벽이라 부르는 서쪽 벽만 남아 있다. 제1성전은 솔로몬 성전이다. 기원전 967년 짓기 시작해 7년 뒤 완성되었다. 길이 31m, 폭 10m, 높이 15m 당시 건축 기술로는 획기적인 건물이었다. 세 성전 모두 예루살렘 북동쪽 같은 장소에 세워졌다. [2018년 1월 28일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즈루빠벨 성전 (2)

 

 

즈루빠벨 성전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솔로몬 성전보다 소박했던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기공식 때 옛 성전을 봤던 노인들은 울었다고 성경은 전한다(에즈 3,12).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옛 성전 중심은 계약 궤를 보관한 지성소였다. 궤 안에는 십계명을 새긴 석판을 넣었고 주님께서 현존하는 장소로 여겼다. 대사제만 출입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성전 파괴 때 잃어버린다. 엄청난 쇼크였다. 이후 다시 만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즈루빠벨 성전이 등장한 것이다. 자연스레 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사제들은 한층 강화된 권위를 가졌다. 제2성전은 희랍 시대를 거치며 헤롯 대왕 때까지 500년간 유지된다. 즈루빠벨 뒤를 이어 느헤미야가 유대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성전 주위 성벽을 다시 쌓았고 BC 437년 마무리했다.

 

기원전 331년 페르시아는 그리스에 굴복한다. 오리엔트 지역이 알렉산드로스 휘하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BC 323년) 알렉산드로스 왕이 급사하자 이 지역은 셀레우코스 장군 휘하에 들어간다. 그는 보병부대 지휘관이었다. 혼란을 수습한 그는 스스로 임금이 되었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작이다. 4번째 임금이 안티오코스 4세로 에피파네스라 불린 인물이다. 유대인에게 희랍 문화를 보급시킨다는 구실로 종교적 박해를 가했기에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즈루빠벨 성전 안에 제우스 신상을 세웠고 제단에는 돼지를 죽여 피를 뿌리기도 했다. 에피파네스란 ‘신이 등장했다.’라는 뜻이다. 자신을 희랍의 신이 나타난 것으로 선포한 것이다. 그러니 왕을 따르는 자체가 신심 깊은 유대인들에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정통 유대인들이 반발하자 군대를 보내 핵심 인물들을 처형했고 예루살렘 성벽을 허물기도 했다. 성전에서의 종교예절과 할례를 금했고 안식일을 지키면 사형에 처했다. 발견되는 두루마리는 모두 불태워 버렸다. 당연히 저항이 있었다. 기원전 167년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독립투쟁이 일어난 것이다. 3년 후인 BC 164년 안티오쿠스 4세는 죽고 독립전쟁은 승리한다. 마카베오는 즈루빠벨 성전 안에 있던 제우스 상을 없애고 새롭게 제단을 쌓았다. 성전 정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성대한 축제를 벌였다.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하누카(Hanukkah) 축제다. 하누카는 봉헌(奉獻)을 뜻한다. 매년 12월 25일 시작해 8일간 이어진다. [2018년 2월 4일 연중 제5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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