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함께 달려갑시다!!!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5 조회수506 추천수1 신고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신비를 믿는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죽음과 부활 승천에 신비 아닌 게 어디 있을까요? 그중에도 부활은 신비이자 현실입니다. 역사입니다. 그 신비의 장소에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복음 공히 예수님이 부활을 다루면서 이 여자를 언급합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습니다.[마태 28,8]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와서 그분께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아라. 그러니 서둘러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서 일러라.”라고 하신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린 겁니다.

 복음 모두가 달리는 것으로 부활의 목격 장면을 묘사합니다. 하나의 부활 사건을 두고 그 실제 상황은 다 다릅니다. 그게 신비입니다. 그렇지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고는 달렸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던 것이다.’[마르 16,8]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 몸을 굽혀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마포만 놓여 있었다.[루카 24,12]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요한 20,1-4]

 이렇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리려고, 또 그 기쁜 소식을 확인하려고 여러 사람이 달렸습니다. 기쁨으로 달렸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달려야합니다. 달려가서 이 기쁜 소식[복음/굿 뉴스]을 전해야 합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성경의 번역이 맞고 그름의 판단은 우리 평신도의 몫이 아닙니다. 그 지엽적인 것은 다들 접어두시고 큰 틀인 부활의 신비를 믿고 알립시다. 마리아가 달려갔듯이.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달려갔듯이 그렇게 달려갑시다. 그리고 ‘예수님 참으로 부활하셨도다.’라고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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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 찬미 예수님! 요한 복음서 20,1-4까지만 인용하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앞뒤가 맏지를 않습니다.

    2011-04-25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계속)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으로 달려가 확인을 하였더니, 확인 결과 성 요한은, 제가 위의 글에서 지적하였던 바로 그러한 목격을 하고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보고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서 20,9절의 의미를 반드시 잘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2011-04-25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즉,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관련하여, 성 요한이 "보고 믿었던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를 제대로 인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이것이 자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그 중요한 부분에 대한 증언이 줄어들거나 늘어나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2011-04-25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다시 생각해 보아도, "개켜져 있었다"로 번역한 것은 상당히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2011-04-25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요한 복음서 20,1-2에 기록된 마리아 막달레나의 빈 무덤 목격을 전해 듣고는, 요한 복음서 20,3-9까지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의 그러한 상태를 확인한 후에 그리고 요한이 "보고 믿은" 후 빈 무덤을 떠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였던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타나신 기록이 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에 마리아 막달레나는 "라뿌니" 라고 대답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믿기 시작하였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1-04-26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그리고 빈 무덤을 발견한 당일 저녁에, 즉 첫 부활절 일요일 저녁에, 위층 방에서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모여 기도하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요한 복음서 20,19-23), 그리고 만 일주일 뒤에, 즉 일요일에, 예수님께서는 물증을 요구하였던 토마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요한 복음서 20,24-29).

    2011-04-26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요약하면, 적어도 성 요한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빈 무덤에 남아 있었던 물적 증거들을 보고 믿었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몰랐으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시는 것을 듣고서 믿었으며, 사도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 "네 손가락을 ...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려라" 고 말씀하신 후에, 비로소 신앙 고백을 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제자들이 믿게 되는 과정을 살펴 볼 때에, 빈 무덤에서 목격한 바를 "보고 믿었던"(즉 부활하신 예수님의 추가 조치에 의하여 믿게 되었던 것이 아닌) 성 요한의 믿음이 대단히 돋보인다는 생각입니다.

    2011-04-26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제 글의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부디 바라는 것이 있다면, 특히 형이하학적 물증에만 의존하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만을 인정하기에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확신하지 못하여 왔던 분들 모두가 이 글을 차분히 읽고 묵상함으로써, 신인이신, 즉 하느님이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좀 더 빨리 확신하고 믿게 되는 데에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2011-04-26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하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기는 커녕 대신에 정 반대로 온갖 소리로 조롱을 하는 자들에게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

    2011-04-26 추천(0)
  • 문경준 (frigo) 쪽지 대댓글

    차라리 소설을 한 편 쓰지 그러십니까... 요한복음서에 그렇게 목을 매다가는 다른 세 권의 복음서, 즉 공관복음서는 휴지통에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됩니다. 이제 그만두심이 님의 신앙심을 그나마 지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곳 자료실이 제공하는, 님이 소망하는 대로 교회와 교도권의 가르침에 매우 충실한 '요한복음서 입문'이라도 좀 읽고 나서 소설을 쓰든지 꿈을 꾸든지 하시지요. 불어 plier를 fold로 번역을 하고는 그걸 또 우리말로 "둘둘 말렸다"고 비틀어버리는 수준의 영어/불어 실력으로는 복음서를 해석할 수 없습니다. 정말 '형이하학적 물증에만 의존하는' 소순태 회원의 수준에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가련함

    2011-04-26 추천(0)
  • 문경준 (frigo) 쪽지 대댓글

    만을 느끼게 됩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기는 커녕 대신에 정반대로 온갖 소리로 교회의 어른들을 조롱하는 자에게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

    2011-04-26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 문경준 (frigo) (2011/04/26) : 불어 plier를 fold로 번역을 하고는 그걸 또 우리말로 "둘둘 말렸다"고 비틀어버리는 수준의 영어/불어 실력으로는 복음서를 해석할 수 없습니다. ] <----- 글쎄요... 불어 plier를 "fold up"으로 번역을 하였더니 "fold"로 번역을 하였다고 지금 왜곡/변조를 하는데, 하긴 불어 학부 전공자에게는 "fold" 와 "fold up"이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2011-04-26 추천(0)
  • 문경준 (frigo) 쪽지 대댓글

    소순태 (sunsoh) (2011/04/26) : [ 문경준 (frigo) (2011/04/26) : 불어 plier를 fold로 번역을 하고는 그걸 또 우리말로 "둘둘 말렸다"고 비틀어버리는 수준의 영어/불어 실력으로는 복음서를 해석할 수 없습니다. ] <----- 글쎄요... 불어 plier를 "fold up"으로 번역을 하였더니 "fold"로 번역을 하였다고 지금 왜곡/변조를 하는데, 하긴 불어 학부 전공자에게는 "fold" 와 "fold up"이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사전을 잘 찾아보고 얘기하시지... fold(up) laundry라는 문구도 나와 있어요. 관용구로 쓰이는 fold up은 전혀

    2011-04-26 추천(0)
  • 문경준 (frigo) 쪽지 대댓글

    다른 의미로 쓰이지요. 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100&where=endic&query=fold+up로 가보세요.

    2011-04-26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 문경준 (frigo) (2011/04/26) : 불어 plier를 fold로 번역을 하고는 그걸 또 우리말로 "둘둘 말렸다"고 비틀어버리는 수준의 영어/불어 실력으로는 복음서를 해석할 수 없습니다. ] <----- 글쎄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불어 "pliés"를 "folded up"으로 번역을 하였더니, 불어 "plier"를 "fold"로 번역을 하였다고 지금 왜곡/변조를 하는데, 하긴 불어 학부 전공자에게는 "folded"(과거 분사) 와 "folded up"이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2011-04-26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여러 번역본들을 비교/검토해 보면, 일부 개신교측의 번역에서 "folded up" 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그러나 이것이 지금처럼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대다수의 개신교측 성경들에서도 rolled up 혹은 wrapped up 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서 사용한 표현은, 이미 말씀드린 그리스어 단어의 충실한 번역인, "involutum" (원형은 "involvo") 이며, 따라서 당연히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영어 성경들인 RSVCE 및 NAB 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folded up" 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rolled up"이라고 번역하였다는 생각입니다

    2011-04-26 추천(0)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문경준 (frigo) (2011/04/26) : 아, 글쎄 그놈의 folded up이 '둘둘 말린'이란 뜻이냐고요... 아, 글쎄 그놈의 pliés가 '둘둘 말린'이란 뜻이냐고요. 그걸 '둘둘 말린'이라고 왜곡/변조한 사람이 누구냐고요.] <----- 이제사 "up" 단어가 눈에 들어 옵니까? 심지어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 성경 요한 복음서 20,7에서 "folded up / rolled up / wrapped up" 에 대응하는 한자 단어로서 "捲" 를 사용하고 있는데, 말이 많네요.

    2011-04-26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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