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반장 월례연수] 신약 성경 인물 (1)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시대가 시작될 즈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인물입니다. 유다교의 마지막 예언자라고 할 수 있는 요한은 메시아적 · 종말론적 시대의 전환을 알리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가르침과 활동을 통해 다양하게 영적 개혁을 시도한 신구약 중간기 유다교의 독창적인 증인입니다. 동시에 예수님과 맺은 관계로 볼 때 그리스도교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의 탄생 대축일은 6월 24일이며 수난 기념일은 8월 29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어린 시절 세례자 요한이라는 인물과 그의 활동에 대한 자료는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의 작품 《유다 고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탄생과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루카 복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루카 1,5-80 참조) ‘요한’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요하난’으로 주님을 나타내는 ‘요’(yo)와 은혜를 뜻하는 ‘하난’(hanan)이 합쳐진 말입니다. 직역하면 ‘주님의 은혜’, ‘주님께서 은총을 베푸셨다.’는 말입니다. 이 의미답게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하였습니다. 루카 복음서(1,5-25 참조)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사제 즈카르야였고, 어머니는 성모님과 친척인 엘리사벳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1,5)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즈카르야가 지성소에 들어가 하느님 앞에서 제사를 드릴 때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하느님의 은혜로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요한’으로 지으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자신과 부인이 나이가 많았기에 천사의 예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일이 성취되는 날까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때가 되자 하느님의 축복으로 노부부는 아이를 갖게 되었고, 이렇게 탄생한 아이가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또한 그는 어머니 태중에서 성모님의 태중에 있던 예수님과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1,17)라는 말씀처럼 메시아 시대를 준비하는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의 삶을 준비하였습니다. 성인이 된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며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본격적으로 이사야와 엘리야 예언자의 정신을 지닌 예언자로서 광야에 살게 됩니다. 그는 물이 많은 ‘애논’에서 세례를 주었다고 합니다.(요한 3,23 참조) 요한의 세례와 가르침 요한의 세례는 1세기 유다교 안에서 성행했던 침례 운동의 맥락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에는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그 당시 에세네파 사람들이 행하던 목욕재계와 침수를 통해 죄를 씻는 반복적인 정결예식이 아니라, 인격적인 권위에 근거하여 베풀어지는 유일회적인 세례였습니다. 둘째,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용서는 공동체적 보속을 통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 고백을 통한 용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유다교가 일 년에 한 번 속죄의 날에 대사제에게 부여한 사죄 선포권에 대한 도전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셋째,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을 쇄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기에게 다가오는 이는 죄인과 창녀 등 차별 없이 모두 받아들이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는 그 당시 바리사이파나 에세네파의 배타적인 집단 행위와는 대조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유다인의 정결예식이 사람들을 분리시키는 기능을 수행하였다면, 요한의 세례는 그들을 일치시키는 기능을 발휘하였다고 평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죄의 사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죄에 대한 용서 이후, 언젠가 닥쳐올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회개의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즉 회개의 표지와 사회적 실천을 연결시킴으로써, 사랑과 윤리의 삶이 회개의 열매이며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세리와 직업 군인 등을 받아들이고 그들 역시 직업윤리에 충실하도록 당부합니다.(루카 3,7-14 참조) 결국 세례자 요한은 진노의 시간이 임박했다고 하여 사회적 삶으로부터 도피하도록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정의와 자비의 실천을 강조하였습니다. 요한과 예수님과의 관계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마르 1,9-11; 마태 3,13-17; 루카 3,21-22 참조) 또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그분을 따르기도 하였습니다.(요한 1,35-42 참조)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는 메시아시라면, 세례자 요한은 구약과 하느님 나라의 중간 시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에 앞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1)라고 선포하였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루카 7,28)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세례자 요한의 권위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하느님 나라의 미래를 이야기했다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위 안에서 현실화하는 하느님 다스림의 현재를 선포하셨습니다. 이 차이는 금욕적인 요한의 삶과 하느님 나라의 축제를 현재화하는 예수님의 삶의 차이이기도 합니다.(루카 7,33-34; 마르 2,18-22 참조) 세례자 요한의 죽음 유다인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요한은 베레아의 마캐루스 성채에 압송되어 처형된다고 하지만, 마르코 복음서는 요한의 죽음을 갈릴래아의 연회장에서 헤로디아의 계략으로 인한 참수로 묘사합니다.(마르 6,17-29; 마태 14,3-12 참조) 헤로데 대왕의 손녀인 헤로디아가 헤로데라고 불리는 안티파스의 이복형제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살로메를 낳았는데, 세례자 요한은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 헤로데 안티파스를 비난하였고, 이에 안티파스가 세례자 요한을 처형하였습니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기념하여 8월 29일에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을 지냅니다. 생각해 봅시다 * 준비된 삶을 살았던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은 그 당시 세례를 통한 회개를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종말의 날을 준비하라고 선포한 예언자였습니다. 그의 삶은 언제나 준비하는 삶이며 준비된 삶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신 예수님을 잘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준비시켰고, 자신은 언제나 금욕주의적 삶과 예언자적 정의의 선포를 위해 끊임없이 준비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오지 않은 종말’의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 할 그리스도인 삶의 지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겸손의 삶을 살아간 세례자 요한 많은 군중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 관심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세례자 요한의 몇몇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떠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고 말하면서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자리를 내어 드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 중심에 주님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삶이 바로 겸손의 삶이며, 진정한 주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 회개를 통해 내가 맺고 있는 열매는 무엇이 있나요?(루카 3,2-18 참조) - 나의 가정과 우리 사회에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어떤 것이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8년 2월호, 사목국 성서사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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