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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신약 성경의 인물: 야고보 - 아름다운 여정으로의 초대 야고보 사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15 조회수4,712 추천수0

[신약 성경의 인물 – 야고보] 아름다운 여정으로의 초대 야고보 사도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들 가운데 누가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시지 않으셨나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한 열두 사도일 듯합니다.

 

 

파견된 이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곁에서 직접 듣고, 수많은 기적도 체험하며 예수님과 함께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가장 확실하게 목격한 증인이지요.

 

또한 사도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알리고자 파견된 이들입니다. 그리스어로 사도는 ‘파견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어 ‘파견된 이’를 뜻합니다. 그러니 사도야말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지요.

 

그럼 예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이 열두 명 말고 사도가 더는 없었을까요? 먼저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의 자리를 대신한 마티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라고도 불리며, 스스로도 사도로서 사명을 다했던 바오로 사도가 있습니다.

 

열두 사도들은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합니다. 베드로 사도와 더불어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이 네 명의 복음사가 정도가 친숙하지만, 다른 사도들의 면면을 따지자니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도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분을 만나보려 합니다.

 

 

두 명의 야고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이름이 같은 야고보가 두 명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대(大)야고보, 소(小)야고보’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동명이인이라 혼동을 피하려고 나눈 것뿐입니다.

 

소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입니다(마르 3,18). 필립보 사도와 함께 5월 3일에 축일을 지내는 성인입니다. 대야고보에 비해 별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출소한 뒤 “이 일을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 알려 주십시오.”(사도 12,17) 하고 말하며 이 사실을 전하고자 한 대상이기도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형제(마태 13,55; 갈라 1,19)라고도 하는 야고보가 이 소야고보라는 의견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한편 대야고보는 제베대오의 아들로 요한 사도의 형이기도 합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많이들 아시는데, 이 명칭이 야고보 성인을 지칭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계셨나요? 산티아고는 산토(Santo, 성)와 이아고(Iago, 야고보)의 합성어로 야고보 성인을 말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니 한국은 유럽을 제외하고 미국 다음으로 방문객이 많은 나라라고 하네요.

 

이처럼 야고보 성인의 이름이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친숙히 불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애제자들

 

사실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의 특별한 제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야고보 사도가 다른 제자들보다 특별한 위치를 지녔다고 추측되는 장면이 성경의 여러 곳에서 목격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어부이던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이 네 사람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시겠다며 제자로 부르십니다(마태 4,18-22).

 

예수님께서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실 때는 야고보,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십니다(마르 1,29).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는 베드로와 야고보,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십니다(마르 5,37).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시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는 장면(마태 17,1-8)에서도 유독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만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근심과 번민에 휩싸인 예수님께서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태 26,36-46) 하고 당부하시던 대상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비록 이들은 당신 말씀마저 저버리고 잠들었지만 말입니다.

 

이렇듯 성경에서는 야고보 사도를 예수님 공생활의 특별한 순간에 함께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직업이 어부였던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아버지 제베대오를 도와 삯꾼들과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는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곧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섰지요(마르 1,19-20).

 

마태오 복음서에서도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4,22)라며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이들은 즉각적으로 응답하였음을 전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 이들은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라 생각됩니다. 한편으로 신중하기보다는 다소 급한 성격이라 여겨집니다. 삯꾼들을 고용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텐데 이를 즉각 포기했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가족도 버렸으니까요.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실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이런 강직하면서도 급한 성격은 사마리아 마을의 일화에서 두드러집니다. 예수님과 그 일행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간다는 것을 아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을에서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자 그들의 불같은 성격을 드러내지요.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 9,54)

 

예수님을 향한 이들의 강한 믿음과 함께, 그 열정이 다소 과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전형적인 반응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의 ‘보아네르게스’(마르 3,17)라는 별명의 소유자답게, 이들은 평생을 열정적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두 아들의 어머니, 살로메

 

야고보와 요한 사도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또 다른 인물은 바로 이들의 어머니 살로메입니다. 살로메는 예수님 곁에서 여성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순간(마르 15,40)에도 함께했고, 돌아가신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도 삽니다(마르 16,1).

 

그 시대에 여성은 사회적 지위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예수님 곁에서 물질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보더라도 살로메의 활동이나 태도 등은 당시에 매우 파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살로메는 두 아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가 엎드려 절하며 무엇인가 청합니다. ‘이분이 바로 메시아시다.’라는 기대와 함께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을 때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아의 모습은 제왕적인 군주로서의 메시아였습니다. 제자들조차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큰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을 정도였지요. 적대자들의 움직임 또한 심상치 않은 시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살로메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시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

 

‘오른쪽’과 ‘왼쪽’은 무엇을 말할까요? 바로 제 아들들에게 최고의 자리를 보장해 달라는 뜻이겠지요. 열두 제자 가운데에서도 네 명 안에 들었는데, 이제는 더 욕심을 내서 아들들의 출세를 원하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우리네 어머니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 20,22) 그러자 그들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기회를 확실히 잡아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것이 비단 이들만의 생각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들은 다른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겼으니 말입니다. 자신들이 내심 바라던 것을 이 두 형제가 어머니 살로메에 기대어 선수를 쳤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계시던 이때, 제자들은 저마다 높은 자리를 탐내고 있으니 이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요?

 


열정의 사도, 야고보

 

어찌 사도들이 그럴 수 있는지 비난하기는 쉽지만, 과연 우리의 신앙이 이와 다르다고 확답할 수 있을까요? 질투심과 시기심,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우리의 마음 또한 이런 사도들의 모습과 닮지 않았나요?

 

열과 성을 다하는 야고보의 모습이 때로는 지나쳐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 인간적인 모습에서 점차 신앙적으로 성숙해 가는 야고보 사도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도 야고보 사도의 이런 모습을 모범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한 성인입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마태 20,23).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정하신 대로 지상 여정을 마친 것이지요.

 

야고보 사도의 열정을 좇아, 인생에 한번쯤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산티아고로 그 순례의 첫걸음을 떼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최광희 마태오 - 서울대교구 신부.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을 담당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 대학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8년 2월호, 최광희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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