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야곱 - ‘위선자인가? 하느님의 사람인가?’ 야곱 이야기(창세 25,19-35,29)를 읽다 보면 드는 생각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 에사우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오더니(25,19-28) 콩죽 한 그릇으로 형을 속여 맏아들의 권리를 얻어냅니다(25,29-34).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어머니와 짜고 아버지를 속여 형에게 돌아갈 축복을 가로채기까지 합니다(27장). 그래서 그는 목숨의 위협을 받고 달아나야 했습니다. 외삼촌의 집으로 갔는데, 거기서 그는 반대로 속임수에 넘어가게 됩니다. 레아와 라헬과의 결혼에도 속임수를 당해야 했고, 그 대가로 14년을 머슴처럼 일합니다(29장-30장). 자신을 놓아줄 생각 없는 외삼촌 라반을 피해 달아나 고향으로 오는 길도 쉽지 않았습니다(31장). 먼 길을 돌아 고향을 앞두고 그는 형 에사우를 만나게 된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가족과 딸린 이들을 먼저 보내는 비겁함도 보입니다(32장). 남을 속이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 야곱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야곱 이야기에는 불합리한 면들이 많습니다. 사기꾼 같고 이기적인 이 사람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베텔에서 그가 세우는 서원에도 이기적인 말들이 담겨 있습니다. “~~ 해주시면, 제가 ~~ 하겠습니다.” 자신이 내건 청원들을 이루어주면 하느님께 갚겠다는 식의 말이 그의 서원입니다. 야뽁 건널목(32,23-33)에서 그는 끈질기게 매달립니다. ‘저에게 축복해주시지 않으면 놓아드리지 않겠습니다.’(32,27) 무조건 내놓으라는 막무가내식의 청원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청하는 야곱을, 하느님은 축복하십니다. 야곱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사 중 하나가 ‘축복하다’입니다. 부(富)와 후손에 대한 약속, 땅의 상속에 관한 것이 축복이라는 말로 등장합니다. 이 축복이 야곱에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축복을 전해 받았다고 그의 삶이 풍요롭고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조상들에게 주어진 축복을 (가로채) 계승했지만, 분노한 형으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 했고,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부모와 고향을 떠나 먼 길을 가야 했습니다. 타향에서 머슴처럼 살아야 했고, 처남들의 시기 속에서 배척당해야 했습니다. 달아나듯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도 쉽지 않았습니다. 뒤에서는 외삼촌이자 장인이 쫓아오고, 앞에는 형이 그에게 마주쳐왔습니다. 야뽁 건널목, 땅의 경계를 이루는 물줄기 앞에 앉아 밤을 새워 고민하고 싸우는 그의 모습은 복 받은 사람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이어받았지만 야곱은, 그와는 반대의 삶, 고달픈 삶(31,42 참조)을 살아야했습니다. 사실 야곱은, 에사우를 피해 달아나기 전까지 스스로 하느님을 언급하거나 찾지 않았습니다. 베텔에서의 꿈(28,10-22)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고 나서야 그의 입에서 비로소 ‘하느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라반의 집에서 하느님의 개입으로 그의 자녀들이 태어납니다. 야곱의 아내들은 자녀를 얻을 때마다 하느님의 돌보심을 깨우치고(29,31-30,24), 야곱과 함께 살면서 번성하게 된 라반도 그 모든 것이 야곱과 함께 계신 하느님의 축복임을 알아챕니다(30,27). 야곱도 이제 모든 축복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고백합니다(30,30).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 이를 또한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고 알리는 사람이 됩니다(31,5). 그의 고백-증언을 듣는 이들도 주님께 대한 고백을 하는 이들로 변화됩니다(31,16.50.53). 야곱은 에사우를 만나기 전에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호소하는 이로 바뀌게 되고(32,10-13), 마침내 ‘이스라엘’(32,29 ‘하느님과 겨루다.’ 또는 ‘하느님께서 겨뤄주신다.’, ‘하느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뜻)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그는 형과 화해하고 아브라함이 그러했듯 스켐(33,18-34,31), 베텔(35,1-15), 베틀레헴(35,16-20), 마므레(35,27-29) 등 주요 성소를 찾아가는 순례자로 변모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축복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사악이 전해주는 축복에는 자손과 땅, 재산, 권력(27,28-29; 28,3-4)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시대도 마찬가지지만) 고대사회에서 이러한 것들은 사실 인간 생존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것들을 얻는 이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불리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야곱의 삶에 개입하셔서 이 모든 것들로부터 그를 떼어놓으십니다. 그리고 그와 주변의 사람들이 하느님이 누구신지 깨닫고 고백하도록 이끄십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를 속박하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만드십니다(요한 8,3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오로지 하느님만을 알고 그분만을 따르는 이로 변화되어서야 야곱은 참된 이스라엘이 되고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이가 됩니다(35,1-1).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알아 뵙는 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을 내려주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십니다. 야곱 이야기는 단지 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야곱의 새로운 이름(32,29; 35,10)이 후일 그의 자손들 전체를 일컫는 말이 되고,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시조가 된다는 점, 브에르 세바(26,23.33;28,10), 미츠파(31,49), 프니엘(32,31), 수콧(33,17) 등의 지명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차지한 땅의 경계를 이룬다는 점 등은 그의 이야기가 민족 전체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확인합니다. 참된 이스라엘은 인간적인 복을 누리는 이들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을 알고 그분만을 자유 안에서 섬기는 이들입니다. [2018년 4월 8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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