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사라 (1)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로 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다. 첫 이름은 사라이(Sharai)였는데 이사악을 낳으면서 사라(Sara)로 바꿨다(창세 17,15). 계약의 전수자를 낳을 것이니 새 출발하라는 주님의 뜻이었다. 당시 90살이었다. 유목사회에서 이름을 바꾼다는 건 운명을 바꾸는 것과 같았다. 사라이와 사라는 히브리어 동사 사라르(Sarar 다스리다)에서 왔다. 사라이는 지배자란 뜻이다. 아브라함 집안의 안주인이란 말이 되겠다. 사라는 사라이(지배자)의 완성된 모습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로 번역되었고 만국의 어머니란 표현으로 확대 해석되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정실이었지만 젊은 시절부터 아이를 낳지 못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확실한 후손을 약속할 때도 불임의 응달 속에 있었다. 오랫동안 기도와 노력으로 부르심에 응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능력 밖이라며 체념한다. 아들을 낳으라고 몸종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보낸 이유다. 그런데도 하가르가 임신하자 질투심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인간적 갈등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 사라를 주님께선 이름을 바꾸라며 다시 선택하신다. 아브라함의 후계자를 낳을 것이란 암시였다. 사라는 웃었다. 자신의 처지를 알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냐는 반응이다. 그동안의 고뇌와 서운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녀의 일생엔 극적인 요소가 많다. 젊은 시절 매우 아름다운 여인으로 등장한다. 아브라함 일행이 흉년을 피해 이집트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곳 왕은 사라에 반해 궁으로 데려갔다. 주님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왕궁에 주저앉았을 것이다(창세 12,19). 이렇듯 그녀의 삶은 철저하게 주님의 계획 아래 있었다. 젊은 나이에 아들을 낳았더라면 자만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미모와 지적 능력을 갖추었기에 아브라함을 흔들었을 것이다. 주님께선 사라의 임신 능력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셨다. 임신 가능한 상황에서 아들을 낳는 것과 불가능한 상황에서 낳는 것은 다르다. 주님께선 생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셨던 것이다. 사라는 정말 90살에 아이를 낳았을까? 육체적 나이 90이라기보다는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생리가 끝나는 나이를 50대 초반으로 본다면 50대 후반 나이로 봐도 무관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숫자가 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라는 127세에 죽었고(창세 23,1) 헤브론 인근 막펠라 동굴에 안장되었다. 아브라함도 죽은 뒤 사라 곁에 안장되었다(창세 25,9).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 30km 지점에 있는 산악도시다. [2018년 5월 6일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신안동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사라 (2) 사라는 나이 90에 아이를 낳을 것이란 주님 말씀에 웃었다(창세 18,12). 생리도 없어졌고 후손에 대한 의욕도 접었을 때다. 씁쓰레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순종하며 따라가는 남자였다면 사라는 계산하며 섬기려는 여자였다. 신앙인의 두 모습이다. 머뭇거리던 사라는 결국 이름을 바꾼다. 만인의 어머니란 뜻의 사라(Sara)였다. 이후 아이를 잉태하자 삶은 돌변한다. 불가능한 꿈이 현실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았던 반전이다. 사라는 감격하며 주님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90세 노인보다는 50대 중반 나이가 더 어울린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당신은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창세 12,11). 빼어난 용모였던 것은 틀림없다. 미모로 인해 곤혹을 치른 일도 창세기에 두 번 등장한다. 성격마저 강했다. 하가르가 아브라함의 아이를 배자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낸다(창세 16,6). ‘날 업신여기는 건 당신 탓’이라며 아브라함까지 몰아붙였다. ‘당신 몸종이니 알아서 하라.’라는 말에 하가르를 구박했고 견디지 못한 그녀는 집을 나갔다. 천사가 달래자 겨우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았다. 이사악을 낳은 뒤엔 하가르와 이스마엘을 아예 내보내라고 남편을 졸랐다. 아브라함은 망설인다. 이스마엘도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개입하셨다. 사라의 말을 들어주라고 하신 것이다(창세 21,12). 이스마엘 후손도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단 말씀이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는 사라란 이름은 나오지 않고 아브라함 첫째 아내로만 등장한다. 하가르가 이스마엘을 낳은 뒤 그녀를 해코지하는 모습도 없다. 이슬람교는 모세오경도 경전으로 받아들인다. 코란과 동등하게 여긴다. 아브라함이 예루살렘 모리야 땅에서 아들을 바치려 했기에 예루살렘도 그들의 성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제물로 바치려 했던 아들은 이사악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 믿고 있다. 1959년 9월 17일 우리나라를 관통했던 태풍은 사라의 이름을 차용했다. 역대 최악의 태풍이었다. 특히 9월 17일은 추석이었다. 일기예보가 없던 그 시절 모르고 차례 지내다 휩쓸려버린 집도 많았다고 한다. 태풍에 이름이 등장한 건 2차 대전 후 미군의 주도였다. 사라호는 당시 예보관 아내 이름이었다고 한다. 1978년까지 여성 이름만 사용하다 이후 남녀 이름을 번갈아 사용했고 2000년부터 태풍 영향이 심한 나라에서 돌아가며 이름을 붙이고 있다. 2003년 매미호는 우리나라에서 붙인 이름이다. [2018년 5월 13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신안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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