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98) “나는 두 증인을 내세워 천이백육십일 동안 자루옷을 걸치고 예언하게 할 것이다”(묵시 11,3)
두 증인이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 요한 묵시록은 하느님의 두 증인이 사람들의 회개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힘을 세상에 드러내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림은 네 명의 천사가 미카엘 대천사를 둘러싸고 세상 종말을 알리는 나팔을 불고 있는 모습.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 작 ‘최후의 심판’. 출처=가톨릭 굿뉴스. 일곱 봉인의 환시 후에 전하는 일곱 나팔의 환시는 마찬가지로 재앙을 이야기합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는 지속되는 재앙은 점점 강해지고 확장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일곱 봉인이 구약 성경과 복음서에 나오는 재앙들과 비슷한 것처럼 일곱 나팔에 의한 재앙 역시 그렇습니다. 특히 이 재앙들은 탈출기에서 찾을 수 있는,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의 재앙을 생각하게 합니다. 일곱가지 재앙 첫째 재앙은 우박과 불을 내리는 것인데 이것은 이집트에 내린 일곱째 재앙과 상응합니다.(탈출 9,23-26)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 바다가 피처럼 변한다는 둘째 재앙은 탈출기의 첫째 재앙을 생각하게 합니다.(탈출 7,20-25) 셋째 재앙은 강과 샘의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과 비슷한 재앙을 탈출기에서 찾기는 어렵습니다. 넷째 재앙은 해와 달과 별에 내린 것으로 어둠을 가져오는 재앙입니다. 이 재앙은 이집트에 내린 아홉째 재앙과 비슷합니다.(탈출 10,21-23) 다섯째 재앙은 이집트에 내린 여덟째 재앙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탈출 10,12-20) 메뚜기를 소재로 삼는 이 재앙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명시적으로 지금 세상에 내린 하느님의 재앙이 누구를 목표로 하는 것인지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땅의 풀과 푸성귀와 나무는 하나도 해치지 말고, 이마에 하느님의 인장이 찍히지 않은 사람들만 해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묵시 9,4) 하느님의 인장을 받은 사람들은 이미 보았던 것처럼 믿음을 가진 모든 이들을 의미합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세례나 견진성사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인장을 받습니다. 이 재앙들은 믿지 않는 이들, 더 나아가 하느님을 거부하고 악의 세력에 동조하는 이들에게 내리는 재앙입니다. 이런 내용은 여섯째 나팔에 의한 재앙에서도 드러납니다. 동쪽에서 다른 민족이 쳐들어와 로마와 맞서 싸울 것이고 악의 세력이 패배할 것을 보여주는 여섯째 재앙에서 역시 구체적으로 그 대상이 표현됩니다. “이 재앙으로 죽임을 당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도 저희 손으로 만든 작품들을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귀들을 숭배하고, 또 보지도 듣지도 걸어 다니지도 못하는, 금이나 은이나 구리나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들을 숭배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묵시 9,20) 일곱 봉인의 환시와 마찬가지로 일곱 나팔의 환시에서도 성격이 전혀 다른 환시 하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두 증인에 대한 환시입니다. 묵시 10―11장에 나오는 환시는 재앙의 대상이 되는 악의 세력을 향한 것이 아닌 믿는 이들을 향한 환시입니다. 하느님 뜻을 전하는 두 증인 두 증인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불이 나와 원수들을 삼켜버리고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는 것은 엘리야 예언자를,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온갖 재앙으로 땅을 치는 권한을 가진 것은 모세를 연상케 합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보낼 종말론적인 예언자로 표현됩니다. 모세에게 한 하느님의 약속은 종말 때에 일으켜 줄 예언자의 모습을 표현합니다.(신명 18,18) 또한 엘리야는 죽음을 맞지 않고 하늘로 불려간 예언자로(2열왕 2,11), 사람들은 언제인가 다시 엘리야 예언자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는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 예언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 성경의 가장 뛰어난 두 예언자의 특징을 통해 두 증인의 역할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성경에서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해 모세와 엘리야 예언자를 파견하신 것처럼, 하느님은 종말에 앞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예언할 두 증인을 보내실 것입니다. 이 두 증인은 1261일 동안, 상징적으로 영원하지 않은 일시적인 시간 동안 사람들의 회개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힘을 세상에 드러낼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5월 13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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