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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의 세계: 이사악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19 조회수4,981 추천수0

[성경의 세계] 이사악 (1)

 

 

이사악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이며 레베카의 남편이다. 위대한 세 족장(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한 분으로 180세까지 살았다. 아들 야곱을 통해 태어나는 손자들까지 보고 죽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뿌리가 될 후손을 확인한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자손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악도 늦도록 아이가 없었다. 젊은 나이엔 자녀를 주시지 않았던 것이다. 계약의 전수자인 그에겐 답답한 일이었다. 기도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주님께선 쌍둥이 아들을 주신다. 먼저 태어난 아이가 에사우였고 동생이 야곱이었다. 그의 나이 60세 때였다(창세 25,26).

 

이사악은 주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창세 17,19). 왜 그 이름을 주셨는지 명확한 해설은 없다. 하지만 전승되어온 이야기는 있다. 이사악 탄생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웃었다(창세 17,17). 100살이 된 늙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씁쓰레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사라 역시 웃었다(창세 18,12). 생리가 끝난 몸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을 왜 말씀하시냐는 반응이었다. 젊은 시절 그토록 청해도 주지 않더니만 이제 와서 무슨 말씀을 하시냐는 불만이었다. 비웃음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사악의 어원은 ‘웃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차하크(tzhak)다. 직역하면 ‘웃게 될 것’이란 의미다. 히브리어 발음은 이츠하크(Yitzhak)다. 이스라엘 수상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라빈 총리 풀 네임은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이다. 웃음과 연관되었기에 많은 이들이 택한 이름이었다. 이사악(Isaac)은 라틴어 발음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불가능하다며 헛웃음을 보냈지만 주님께선 참 웃음을 주시려 하셨다. 이사악이라는 이름을 주신 이유다. 사라는 아들을 낳으리란 말에 웃었다. 아들을 낳자 또 웃었다. 하지만 두 웃음은 다르다. 첫 웃음은 불만이었고 두 번째 웃음은 감격이었다. 곁에 있는 이들까지 웃게 하는 축복이었다. 이사악의 이름에 담긴 메시지다.

 

‘주께서 나에게 웃음을 주셨다. 소식을 듣는 이마다 나한테 기쁘게 웃어 주겠지. 사라가 젖을 먹일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늙은 그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창세 21,6-7) 사라의 힘들었던 삶이 녹아 있는 고백이다. 당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의 설움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스라엘의 어머니 사라는 이렇게 이사악을 만나 전혀 다른 여인으로 바뀌었다. 그 늦은 나이에. [2018년 5월 20일 성령 강림 대축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신안동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이사악 (2)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내용이다. 어떻게 얻은 아들인가? 그런데 주님께선 그 아이를 제물로 제사를 바치라고 하신다. 여생(餘生)이 축복으로 마무리될 것이라 믿었던 아브라함에겐 충격이었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니!’ 말씀을 듣는 순간 온갖 번뇌에 휩싸였을 것이다. 하지만 순종한다. ‘아버지, 불과 장작은 있는데 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번엔 순진한 아들이 심장을 찔렀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담담하게 답한다. 정말 그랬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창세 22,9) 믿음과 포기가 없으면 이렇게 할 수 없다. 내면의 싸움에서 이겼기에 주님께선 천사를 보내 아브라함을 제지했을 것이다.

 

성경엔 사라의 반응은 없다. 아브라함은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알았더라면 가만있을 사라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팎으로 시련에 직면했던 아브라함이다. 그러나 그는 주님 말씀에 순종했다.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믿음과 희생이 담긴 모리야 땅은 거룩한 땅이 되었다.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던 이유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바위는 현재 예루살렘 황금 돔 모스크 안에 보관되어 있다. 예전엔 솔로몬 성전이었지만 지금은 이슬람 경당으로 바뀐 것이다.

 

주님께선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시곤 늘 축복으로 마무리하셨다. 처음엔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 하셨다(창세 12,2). 이후 축복은 구체화된다. 비옥한 땅을 주며(창세 13,15) 후손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 하셨다(창세 15,5). 그것도 사라가 낳을 정통 후예들이라 했다(창세 17,16). 아브라함은 계약의 증표로 할례를 행한다. 성기의 포피 일부를 잘라내는 행위다. 남자 몸의 중요한 부분을 바침으로 계약을 확정 지었던 것이다. 나중엔 유대인과 다른 민족을 구별하는 결정적 표지가 된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의 아내를 하란 땅에 사는 피붙이에게서 구한다. 가나안 여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혈족에게서 며느리를 찾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친동생 나호르의 손녀 레베카(Rebecca)다(창세 24,15). 이사악에겐 조카였던 셈이다. 이후 이사악은 엄청난 복을 받는다. 재산은 백배 이상 불어나 거부가 된다. 모리야 땅에서의 시련이 보답받은 것이다. 이츠하크(Yitzhak)는 웃게 될 것이란 뜻이라 했다. 이사악은 그 이름에 어울리는 여생을 살다 죽었다. [2018년 5월 27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신안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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