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00 · 끝)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묵시 21,1)
종말 속 피어난 희망으로 구원을 계시하다 - 요한 묵시록은 재앙 이후에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에 관한 환시를 전하고 있다. 그림은 새로운 창조를 알리는 예루살렘의 환시 모습. 율리우스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 작 ‘천국의 예루살렘’ 부분. 출처=「아름다운 성경」. 모든 재앙 이후에 등장하는 환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또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묵시 19,11) 이 표현과 함께 요한 묵시록은 종말을 묘사합니다. 보통 ‘하느님의 기사’라고 불리는 이 환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열린 하늘에서 흰말을 타고 오시는 분은 “성실하고 참된 분”(묵시 19,11), “하느님의 말씀”(묵시 19,13), “임금들의 임금, 주님들의 주님”(묵시 19,16)이라고 불립니다. 또 이분은 입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칼로 민족들을 치는, 곧 말씀으로 심판하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이 표현은 이미 사람의 아들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묵시 1,16) 결국, 요한 묵시록의 모든 환시를 기록하여 보내라고 명령하신 그분은 종말 때에 다시 올 그리스도인 셈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종말의 모습을 악의 세력과의 전쟁으로 표현합니다. 대신 그 과정에 대한 언급 없이 처참한 최후를 맞은 악의 세력을 묘사할 뿐입니다. 모든 새가 전쟁에서 패한 악의 세력에 동조하던 이들로 배를 불린다는 잔인한 표현은 성경에서 가장 처참한 죽음을 나타내며, 그들의 행실에 대한 심판으로 표현됩니다.(에제 39,17-20) 요한 묵시록에서 표현되는 독특한 것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 사이에 ‘천 년 통치’라는 중간 시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시간은 구약성경에서 기원을 찾게 되는 평화로운 시대에 관한 내용으로 보입니다.(이사 11,1-9)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실현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환시이기도 합니다.(마태 19,28) 이 통치의 시간 이후에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천 년 통치가 종말에 살아남은 믿음을 간직한 이들이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마지막 심판은 죽은 이들이 심판받는 사건입니다. 요한 묵시록의 종말에 관한 환시는 마치 우리가 알고 있는 최후 심판의 모습을 둘로 나누어서 묘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 년 통치 그리고 마지막 심판 이후에 등장하는 것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습니다.”(묵시 21,1) 종말은 세상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시작입니다. 새로운 창조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환시는 새 예루살렘의 환시입니다.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이 환시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합니다. 이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고 크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성벽의 크기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구체적인 치수들은 이 도성의 실제적인 크기를 나타내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만 2000 스타디온, 지금으로 말하면 2000㎞가 넘는 정육면체로 된 도성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크면서도 완전함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또 144 페키스로 소개되는 성벽의 두께는 지금의 70m에 가깝습니다. 이것 역시 실제적인 묘사이기보다는 하느님의 보호가 완전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도성의 크기에 대한 묘사 이후에는 도성의 아름다움을 다양한 재료들을 통해 나타냅니다. 온갖 보석들로 꾸며진 새 예루살렘은 이 세상의 어떤 화려함도 갖추지 못한 아름다움을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외형적인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도성 안에 더 이상 성전이 없고 하느님과 어린양이 그것을 대신한다는 내용입니다.(묵시 21,22) 또한 도성 안을 흐르는 생명수에 대한 묘사는 상징적으로 하느님과 어린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표현합니다. 이것을 통해 요한 묵시록의 환시는 정점에 이릅니다. 요한 묵시록은 우리에게 재앙을 소개하고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간직한 이들이 우상숭배에 대한 강요와 박해에서도 신앙을 간직할 수 있도록 종말의 희망을 통해 위로하는 것이 요한 묵시록이 기록된 목적입니다. 이런 책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개별적인 내용과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요한 묵시록은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을 계시하는 책입니다. 그동안 신약 여행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5월 27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 그동안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을 연재해 주신 신부님과 애독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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