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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아가, 노래들의 노래1: 아름다운 노래, 아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789 추천수0

아가, 노래들의 노래 (1) 아름다운 노래, 아가

 

 

책의 제목 ‘아가’는 1,1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뜻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번역된 히브리어 표현을 한 단어 한 단어 옮기면 ‘노래들의 노래’이지요. 지성소가 ‘거룩한 것들 가운데 거룩한 것’이듯, ‘노래들의 노래’는 가장 뛰어난 노래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책 제목을 아가(雅歌), 아름다운 노래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1세기까지도 이 ‘아름다운 노래’가 성경에 속하는지 논란을 벌였습니다. 라삐 아키바는 아가가 당연히 거룩한 책이라고 단언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가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날에 비하면 온 세상 전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성문서 모두가 거룩하지만 아가(노래들의 노래)는 거룩한 가운데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성소가 거룩하듯 아가가 지극히 거룩한 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가를 보는 두 가지 시각

 

그런데 라삐 아키바 시대의 유다인들 사이에서 왜 아가가 성경에 속하는지 속하지 않는지 의견이 갈렸을까요? 이는 아가의 첫 구절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아, 제발 그이가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아가 1,2) 성경에 어쩌다 이런 구절이 들어갔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이 구절은 정말 여자가 남자의 입맞춤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이 문제에 관해 토론한 역사를 짚어 보면, 두 가지 질문이 한데 얽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가가 순전히 남녀의 인간적 사랑을 노래한 것이냐, 아니면 다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남녀의 사랑이라는 외형을 빌어 표현한 것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이어지는 둘째 질문은 아가가 인간적 사랑을 말했다면, 어떻게 성경의 일부가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책 내용 안에 뭔가 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을 생각해 봅시다. 아무런 판단 없이 아가의 본문을 읽으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나왔다가 양치기가 나오기도 하고 공주가 나왔다가 염소를 치는 아가씨가 나오기도 합니다. 어쨌든 남자와 여자가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여자는 책의 첫머리부터 남자의 입맞춤을 그리워합니다.

 

그런데 고대와 중세의 여러 해석자는 젊은 남녀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노래한 책이 성경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성경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책의 내용에 뭔가 숨은 뜻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우의적(寓意的) 해석’이 오랫동안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아가의 우의적 해석

 

‘우의(allegoria)’는 겉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다른 것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아가의 우의적 해석은 여러 가지지만 유다교의 전통을 먼저 살펴보면, 유다교는 오랫동안 아가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 해석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사랑을 혼인 관계에 비겨 이야기한 구약성경의 전통을 배경으로 합니다. 호세아를 쉽게 떠올릴 수 있고(1-3장 참조), 그밖에도 에제키엘서(16장, 23장 참조) 등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 해석 노선에서, 아가에 여러 번 나오는 “나의 연인은 나의 것, 나는 그이의 것”(아가 2,16)이라는 표현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정의하는 계약을 암시합니다. 상대에게 서로 속하는 남녀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이지요.

 

이러한 유다교의 전통적 해석은 구약성경의 아람어 번역본인 타르굼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타르굼의 어떤 부분은 히브리어 성경을 거의 충실하게 아람어로 옮겼지만, 어떤 책에서는 번역자가 많은 내용을 첨가했습니다. 아가의 타르굼이 대표적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아가의 타르굼에는 번역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성경 본문에 많은 내용이 첨가되어 아가를 풀이하고 있습니다.

 

타르굼에 따르면 아가는 이집트 탈출부터 종말의 부활에 이르는 이스라엘 역사를 보여 줍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를 찾고 함께 사랑을 나누는 여정에서 타르굼의 저자는 그 역사를 읽어 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것으로 선택하시고,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제사를 받아들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하느님에게서 떠나가지만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이스라엘을 일깨워 주십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이 재건된 다음 메시아 시대가 오고 의인들이 부활한다는 역사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아가의 우의적 해석은 다양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먼저 유다교의 해석과 대조를 이루며 아가의 신부가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신부(교회)라고 보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유다교의 해석과 비교한다면, 적용 대상은 서로 다르지만 해석 방법 자체는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아가에서 말하는 남녀의 사랑이 뭔가를 말하기 위한 부호 같다고 보고, 주인공 여인을 신앙 공동체와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유다교에 없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크게 발전하지 않았던 한 종류의 우의적 해석이 중세를 거치면서 그리스도교에서 꽃피게 됩니다. 그것은 아가의 여인을 그리스도인 개인의 영혼으로 보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 또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나누는 사랑의 역사가 아가에 표현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고대에 오리게네스도 그렇게 해석했고, 그 후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아빌라의 데레사, 특히 십자가의 요한 등 신비가들이 그와 유사하게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아가에서 노래하는 사랑이, 영혼이 하느님과 온전히 결합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표현했다고 봅니다.

 

 

아가가 인간적 사랑을 말한 것이라면

 

우의적 해석을 주장하는 이들 대부분은 그것이 아가의 본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곧 남녀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오직 다른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라삐들이 아가를 연애 노래로 해석하는 것에 맹렬히 반대하면서 영적 의미를 강조했던 것을 보면, 당시에도 아가를 단순한 사랑 노래로 받아들인 이들이 없지 않았음을 방증합니다. 그 후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에서도 주류를 형성하지 못했지만, 아가의 자구적 해석을 주장하는 이들이 때때로 나타났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질문 가운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아가는 남녀의 인간적 사랑을 있는 그대로 노래했다고 보는 이가 없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도 의견이 다시 갈라집니다. 두 번째 질문, ‘아가가 인간적 사랑을 말한 것이라면 그런 책이 어떻게 성경의 일부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먼저 어떤 이들은, 주로 고대와 중세에 아가가 인간적(육적) 사랑을 노래했기 때문에 성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표적 예가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였습니다(4-5세기). 그는 아가에서 하느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책이 영감을 받은 책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솔로몬이 파라오의 딸과 결혼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이방 여자가 아름답고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이라고 알리기 위하여 만든 노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장은 많은 이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오히려 교회에서 단죄를 받았습니다. 어쨌든 아가는 성경에 속했고 그것을 반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인간적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성경의 내용으로 부적절하다고 보았다는 점입니다. 우의적 해석을 하던 이들 가운데에도 많은 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중세와 근대의 몇몇 저자도 아가가 인간적 사랑을 주제로 삼았다고 보았지만,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적 사랑은 성경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남녀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노래한 것이 과연 죄스러운 일이고 구약성경에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요? 성경을 보면 인간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23) 하는 경탄입니다. 이것부터 성경에서 삭제해야 할까요? 인간적 사랑의 찬란함을 노래한 ‘아름다운 노래’는 오히려 창조선 선성(善性)에 대해 흔들림 없는 믿음을 보여 주는 구약 신학의 절정이 아닐까요? 다음 달에는 이 관점에서 아가를 바라보는 과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2년 1월호(통권 430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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