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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23: 바오로의 기도 여정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4,066 추천수0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 (23) 바오로의 기도 여정

 

 

우리가 걸어온 여정

 

2년간 연재한 글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를 마무리할 때다. 이 글은 바오로를 왜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로마서가 바오로의 기도에 대한 연구 자료가 될 수 있는지에서 시작하였다. 문맥을 고려하며 로마서에서 관련된 여러 기도 구절을 주석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초점을 둔 것은 ‘바오로에게서 어떤 기도 모델을 발견할 수 있는가’였다.

 

바오로는 신학자와 선교사이기 전에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도 생활은 내면 생활의 한 면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복음을 전하는 외적 사도직과 병행하는 내적 사도직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의 사도직’이라는 표현은 바오로에게 정말 어울리는 말이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개인적 · 사회적 상황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므로 바오로의 기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오로의 기도 개념, 그가 물려받은 기도 전통과 새롭게 바뀐 것이 무엇인지 관찰해야 한다.

 

 

바오로의 기도

 

여러 저자가 기도라는 용어를 각각 다르게 정의한다. 가장 일반화한 정의는 ‘하느님께 말하는 것’, ‘하느님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다. 기도에 대해 사용하는 다양한 용어는 하느님께 한 말의 특징에 따라 감사, 다른 이를 위한 중재, 찬미 등으로 분류된다. 바오로의 기도를 생각할 때 기도는 단순히 정해진 기도문을 ‘구송한다’는 개념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가 ‘하느님께 하는 말’이라는 정의는 기도의 대상인 하느님을 강조한다. 그리스도교 기도의 중심이자 토대는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을 토대로 한 기도의 내적 구조에는 세 가지 특징, 곧 인격적이며 살아 계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 그런 하느님과 인간의 구체적 대화(F. 풀러)가 담겨 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다. 아버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고 ‘우리를 위한 하느님’으로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우리는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 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우리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고,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를 도와 하느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뿐 아니라 그분에 대한 지식에 토대를 둔다. 우리의 기도는 항상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향한다. 기도에 대한 이런 정의는 바오로의 기도 구절에서 그의 영성의 영적 배경으로 암시적이거나 명시적으로 표현된다.

 

바오로는 우리에게 기도서를 남겨 주지 않았고, 시편에 나오는 것처럼 기도 유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지도 않았다. 그의 서간에서 기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서두 인사, 감사, 청원, 동족의 미래에 대한 근심과 선교 여행에 대한 걱정과 희망, 하느님에 대한 찬미 등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활동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 언어로 전달된다. 바오로는 자신이 기도한다는 표시로 신자들을 위해 바치는 간접적 기원 기도, 규칙적으로 바치는 감사 기도, 중재 기도, 서간에 자주 등장하는 하느님에 대한 찬미와 하느님의 강복을 구하는 기도를 보여 주었다.

 

 

유다교의 기도

 

바오로의 기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를 중시한 유다교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이 된 뒤 기도를 배운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마스쿠스에서 회심하기 전에 이미 전통에 충실한 유다인으로서 진지하게 기도한 사람이었다. 유다인에게 셰마(Shema: 신명 6,4-9; 11,13-21; 민수 15,37-41 참조)는 가장 근본이 되는 기도이다. 신앙 고백인 셰마는 대개 기도로 소개된다. 유다인에게 중요한 기도는 ‘축복 기도문 18조(셰모네 에스레, Shemone Esre)’이다. 100년경 라삐 가말리엘 2세가 최종 편집한 이 기도문은 탈무드에서 단순히 기도, 곧 ‘터필라(Tefillah)’라고 불린다. 유다교 회당에서는 이 기도문을 매일 바친다. 바오로 시대에 회당과 연결된 기도 전통이 이미 확립되었는데, 바오로의 기도 구절은 그가 이 기도문을 잘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유다인의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발성이다. 히브리 현자들이 기도에 대해 내린 가장 적절한 정의는 ‘마음의 봉사’다. 그들은 기도를 하느님 앞에 선 사람이 지닌 마음의 ‘자발적 표현’으로 이해했다. 의무가 아니라 하고 싶어 하는 것, 또는 그것을 하도록 마음이 저절로 움직여지는 것이다. 나아가 유다교 배경은 바오로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에 응답하는 데 두 가지 이해를 제공했다. 하나는 하느님의 창조, 계시와 구속(셰마 안에서처럼)을 확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배, 탄원, 감사로써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셰모네 에스레 안에서처럼)이었다.

 

유다교 기도의 이 모든 요소가 로마서의 기도 구절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바오로는 이스라엘의 전통에 따라 유다인으로서 기도했다. 예를 들어 성전 예배, 희생 제사, 자선, 종교 관습의 준수 등 유다인으로서 기도하며 살았다. 또 그는 유다교에서 기도하는 공동체의 전통뿐 아니라 기도는 내적인 것,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이 모든 기도 체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다마스쿠스에서 만나 그리스도와 계속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워진 기도를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다마스쿠스 체험

 

유다인 바오로는 다마스쿠스 체험으로 새로운 방식에 따라 기도하게 된다. 이는 그의 새로운 영적 체험과 일치한다. 사도행전 본문(사도 9,1-19; 22,3-16; 26,12-18 참조)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바오로의 만남이 어떤 방식으로 그의 기도 생활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찾기 힘들다. 그러나 바오로 서간의 본문(필리 3,7-15; 1코린 9,1; 13,8-10; 2코린 4,6; 갈라 1,15-16 참조)은 기도 생활에 대해 바오로가 긴 성숙과 변화의 여정을 거쳤다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마스쿠스 체험이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옮아가는 개종이 아니라 회개라는 것이다.

 

바오로는 다마스쿠스 체험을 한 후에도 유다인이자 이스라엘인으로 남았다. 바오로의 기도는 유다 전통과 이어져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의 빛에 따라 변형되고 심화된다. 바오로가 사용하는 다양한 기도 용어는 그가 거친 신앙의 해석 과정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잊을 수 없는 다마스쿠스 체험에 토대를 두는데, 이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오로가 바치는 기도의 뿌리가 된다. 유다 세계의 기도 구조는 바오로가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로 변형되었다.

 

 

그리스도 신앙의 내면화

 

바오로의 기도는 그의 영적 진보를 보여 준다. 바오로는 자신의 기도 체험을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치는데, 그 기도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하신 인류 구원에 대한 ‘감사’다. 바오로의 기도 생활이 주님의 활동에 대한 의식을 내면화하기 위한 여정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기도는 인간의 계획을 넘어서는 ‘신비로운 들음’이 된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이 된다. 바오로에게 기도는 기도 정식을 되풀이하거나 예식을 거행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일관되고 영속된 자세’로 하느님 앞에 머무르는 것이다. 바오로는 하느님 앞에 머무르면서 ‘기억’을 통해 사람들과의 생생한 관계, 하느님과 하느님의 은총을 중재하는 자신과 신자들의 삼각관계 안으로 들어간다.

 

* 임숙희 님은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로마서의 바오로 기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회의 신앙과 영성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11월호(통권 452호), 임숙희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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