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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과 영성5: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948 추천수0

성경과 영성 (5)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리스도교의 발생지는 동양일까? 아니면 서양일까? 오순절에 사도들이 성령을 가득 받고 설교하여 삼천 명가량에게 첫 세례를 베푼 예루살렘 도성이 속한 유다 지방은, 오늘날 중도 지역의 팔레스티나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동양에서 출발한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라고 여긴다. 아마도 그리스도교가 초세기 중반,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에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전 세계에 존재를 각인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중세에 이슬람교가 출현하여 중동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리스도교가 동서로 나뉘면서 세력이 약화되기 전까지 동방 지역에서도 그리스도교의 활동과 영향력은 대단했다. 동방 지역에서 그리스도교의 중심 역할을 한 곳을 꼽으라면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플을 언급할 수 있다. 그중에서 그리스도교의 발생지로서 상징성을 가졌던 예루살렘과 동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어 뒤늦게 주목받았던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하고,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두 도시는 여러 면에서 사뭇 다른 특성을 지니면서 그리스도교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는 기원전부터 이미 그리스 문화권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다.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몇백 년 전부터 유다교인이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면서 유다교의 영향을 받은 곳이었고, 안티오키아는 초세기부터 사도 바오로를 비롯한 그리스도교인이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곳이었다. 두 도시는 서로 다른 종교적 배경을 지니고 있었기에 성경 해석, 신학 발전, 영성 생활 등 교회 활동에서 다른 모습을 보였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경과 율법을 해석하는 데 우의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알렉산드리아는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역본인 칠십인역이 출간된 도시로 유명하다. 이 도시에서는 기원전부터 그리스 문화가 성행했으며, 플라톤 철학을 비롯한 그리스 철학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 중에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유다인 필론은 플라톤 철학과 유다교 사상을 잘 조화하여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보존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필론은 성경과 율법을 해석하는 데 문자적(leteral) 의미뿐 아니라, 철학의 언어를 수단으로 한 문자 이상의 우의적(寓意的, allegorical) 의미를 살펴 그 분야에 크게 공헌하였다. 즉 성경의 문자적 의미는 그림자에 불과한 잠정적이고 부차적인 것이므로 우의적 해석을 적용하여 상징적이며 영적인 의미를 찾아야 성경에 담긴 본래의 심오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고대부터 근세까지 오히려 그리스도교인들이 유다인 필론을 기억하고 전해 주었다는 것이다. 정작 유다인들은 최근까지 그를 잘 모르고 있다. 그만큼 필론의 사상과 업적은 그리스도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2-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라고도 불리는 필론식 그리스도교 학교, 알렉산드리아 학교가 설립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운영한 이 학교는 오리게네스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다. 알렉산드리아 학교는 필론을 따라 우의적 성경 주석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오리게네스는 그 방법을 완성시켰다.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문자적 의미도 우의적으로 해석해야 참뜻을 알아들을 수 있다. 또 성경에는 단순한 사람들을 위한 문자적 의미와 배운 사람들을 위한 윤리적 의미,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다.

 

오리게네스는 자신의 저서 《아가 주해》 서문에서 성경에 담긴 삼중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우의적 접근 방식을 언급하였다. 그는 그리스 철학의 윤리학, 자연학, 형이상학을 언급하면서 구약성경에서 솔로몬 임금의 작품으로 알려진 잠언, 코헬렛, 아가를 언급하였다. 이때 윤리학은 덕으로 키우는 습관의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자연학은 본성에 역행하지 않으면서 창조주가 마련하신 개별 사물의 본성을 고려하며, 형이상학은 거룩하고 천상적인 것을 관상한다. 또 간결한 격언을 가지고 삶의 규범을 마련하는 윤리학은 잠언에, 헛되고 하찮은 것과 유익하고 필요한 것을 구별하여 취사선택하는 지혜를 얻는 자연학은 코헬렛에, 그리고 형이상학은 신랑과 신부의 형상을 가지고 거룩하고 천상적인 것에 대한 사랑이 영혼에 스며들게 하는 아가에 담긴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를 탐구하는 데 노력하였다

 

알렉산드리아 학교가 있던 지역에는 중기 플라톤 사상 및 신플라톤 사상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중기 플라톤 사상 및 신플라톤 사상에서는 절대적 신으로 여겨지는 일자(一者)의 차원과 인간이 속한 물질적 차원을 로고스가 연결해 준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런 까닭에 알렉산드리아 학파 신학자들은 인간과 하느님을 이어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플라톤 사상에서 말하는 로고스와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생각하였다. 즉 신학자들은 철학적 사고에 기반을 둔 로고스를 통해 그리스도를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서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신성의 특징만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고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를 탐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신 로고스가 육화하여 로고스의 신성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인 로고스가 인간을 신성화(神性化)했다는 것이다. 이 점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 학파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드러내 놓고 적극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지만, 신성만 강조하다 보니 인성이 축소되어 왜곡된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4세기에 들어 알렉산드리아 학파 신학자들이 삼위일체 논쟁에서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당시 중기 플라톤 사상 및 신플라톤 사상의 영향으로 일자와 로고스의 관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삼위의 관계에 그들의 주장을 무리하게 적용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그러나 성부에게만 신의 본질을 인정하고 성자의 본질은 피조물에 가깝다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속한 카파도키아의 교부들이 반박하면서 본질과 위격을 구별하여 삼위일체론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하여 성경을 우의적으로 해석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상징적이며 영적인 의미의 초월적 차원을 다루던 플라톤 사상과 만나면서 믿을 교리에 약간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결국 교의신학을 정립해 가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알렉산드리아의 교부들은 그리스도교인의 영성 생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모든 결론을 연역적으로 풀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그리스도론은 ‘위로부터의 하강 그리스도론’이라고 불린다. 이 특성은 그리스도교 계시의 초자연적 영역을 풍요롭게 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하느님과의 합일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신플라톤 사상의 배경을 가진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교부들은 우의적 성경 해석과 함께 인간 영혼과 하느님의 합일을 살피는 신비 체험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교인의 영성 생활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예를 들어 오리게네스는 인간 세상에서 더 높게 올라가 하느님을 만나는 영적 여정을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일곱 단계로 묘사하였다. 그가 쓴 《아가 강론》 서문에 따르면 인간 영혼이 영적 여정을 시작하는 출발점은, 이스라엘 백성이 갈대 바다를 건너면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났듯이 갈대 바다를 건너는 행위가 예표하는 ‘세례’이다. 그렇게 시작된 영적 여정은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에서 어려움을 겪었듯이 잠정적으로 통과하는 시련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듯이 인간 영혼은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여 신랑과 신부가 함께 아름다운 영혼의 노래인 아가를 부르는 것처럼 환희의 노래를 부르면서 하느님과 합일하는 신비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저서 《아가 강해》와 《모세의 생애》에서 인간 영혼이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 중에 지나게 되는 빛, 구름, 어둠의 세 가지 길을 구약성경에 묘사된 모세의 삶과 함께 설명하였다. 첫째,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느님의 현현을 체험한 모세는 진리의 빛이신 하느님을 알기 시작하였다. 둘째, 광야에서 구름 기둥을 쫓아온 이스라엘 백성과 구름에 둘러싸인 산으로 오르는 모세는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을 점점 관상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좀 더 깨닫게 되었다. 셋째, 모세는 산 위 더 높은 차원에 올라서야 어둠 속에 계신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 영혼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둠 한가운데 들어가야만 암흑 속에서 하느님을 뵐 수 있게 된다.

 

결국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플라톤 사상을 배경으로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탐구하던 분위기에 힘입어, 교의신학 분야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그리스도론이 전개되었다. 이와 함께 성경을 우의적으로 해석하던 분위기였으므로 영성신학 분야에서 하느님과 합일하고자 하는 인간 영혼의 영적 여정인 신비 체험도 갈망하게 되었다. 이러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특성은 그 후에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성경 해석과 영성 생활 분야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 전영준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2년 5월호(통권 434호), 전영준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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