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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과 영성11: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은 어떻게 발전되었을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927 추천수0

성경과 영성 (11)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은 어떻게 발전되었을까?

 

 

누르시아의 베네딕도(480?-547년경) 성인 하면 대부분 ‘서방 교회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고 기억한다. 베네딕도가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모아 정주(定住) 수도회를 설립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답은 초급 수준이다. 혹자는 베네딕도를 ‘기술자와 건축가와 개간자의 주보 성인’으로 기억한다. 베네딕도 수도회와 베네딕도 수도 규칙을 따르는 후배 수도자들이 사회를 안정되게 이끈 그의 공적을 기리면서 그렇게 별칭을 붙였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베네딕도를 ‘유럽의 주보 성인’으로 기억한다. 베네딕도 수도 규칙서를 지키는 많은 수도회가 중세 중기까지 유럽 전역에 정치적 안정뿐 아니라 문화유산의 보존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베네딕도와 베네딕도 수도회

 

누르시아 시골에서 베네딕도가 태어날 때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유럽 대륙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기 한 세기 전부터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서로마 제국은 정책과 정치의 실패로 국력이 쇠약해져 갔으며, 게르만족 출신 용병과 갈등을 겪다가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켜 476년에 멸망하였다. 그 후 오도아케르는 동로마 제국의 총독으로서 이탈리아를 잠시 다스렸다. 그러나 10여 년 후에 동쪽에서 게르만족의 하나인 동고트족이 이탈리아를 침입하여 오도아케르를 제압하고 493년에 동고트 왕국을 세웠다. 동고트 왕국은 553년에 동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되고, 이탈리아는 다시 동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이렇게 이탈리아 전역에 통치 세력이 느슨해지자 또 다른 게르만족인 랑고바르드족이 북쪽에서 내려와 568년에 이탈리아 북부에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웠다. 랑고바르드족은 577년에 이탈리아의 주부까지 침입하여 로마를 위협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어수선한 시기에 베네딕도는 성장하였다. 그는 청년 시절에 로마에서 수학하면서 사회의 모순과 백성의 고단함을 목격하였다. 권력자의 사리사욕에 입각한 조세 정책은 백성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었다. 이민족의 잦은 침입은 백성이 미래를 설계하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피난살이를 하게 했다. 베네딕도는 로마 남쪽에 위치한 수비아코에 가서 3년 동안 은수 생활을 하면서 수도자의 삶을 시작하였다. 마침내 베네딕도는 뜻을 같이하는 형제들과 한 곳에 정착하여 생활하는 수도히를 설립하였다. 기도 생활뿐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다시 조명할 수 있도록 욕체노동을 함께 강조하는 수도회였다. 그러므로 한 곳에 정착하여 노동의 중요성을 실천하던 수도원과 수도자들의 모범은, 안팎으로 나라가 어수선하여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재물을 탐하며 일확천금을 기대하던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일하며 기도하라(Ora et labora)

 

위에서 살펴본 이유 때문에 베네딕도 성인과 베네딕도 수도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바로 ‘일하며 기도하라(Ora et labora)’이다. 지금까지 노동과 기도는 베네딕도 수도원의 상징으로 모든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만 기억한다면, 베네딕도와 베네딕도 수도원을 절반 정도 이해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베네딕도 수도 규칙서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정해진 시간에 육체노동을 하고 또 정해진 시간에 성독(聖讀)을 할 것이다”(《수도 규칙》 48,1). 물론 이 표현이 베네딕도 수도 규칙서에 딱 한 번 언급되었지만, 오늘날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라고 일컫는 성경 독서가 언급된 것이 특이할 만한 점이다. 이것은 베네딕도가 동·서방 수도자들이 성경 독서를 중요하게 여긴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게다가 베네딕도는 거룩한 독서를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독서를 매일 적어도 2-4시간 정기적으로 실천하라고 권고하였다. “부활절부터 10월 1일까지는 아침에 ‘제1시기도’를 끝낸 다음 제4시까지 필요한 노동을 하고, 제4시부터 ‘제6시기도’를 바칠 때까지 독서에 전념할 것이다. 10월 1일부터 사순절 시작까지는 제2시 끝까지 독서에 전념하고, 제2시에 ‘제3시기도’를 바칠 것이다. 그리고 제9시까지 모든 이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할 것이다”(《수도 규칙》 48,3-4.10-11). 또 베네딕도는 육체노동과 균형을 맞추어 독서를 게을리 하지 말고 꾸준히 실천하라고 강조하였다. “식사 후에는 개인의 독서나 시편 (공부에) 전념할 것이다. 특별히, 형제들이 독서에 전념하고 있는 시간에 한두 사람의 장로들에게 책임을 맡겨 수도원을 돌아다니게 하여, 혹시라도 한가함이나 잡담에 빠져 독서에 힘쓰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무익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방해가 되는 게으른 형제가 있는지 살피게 할 것이다. 주일에도 여러 가지 직무를 맡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이들은 독서에 전념할 것이다”(《수도 규칙》 48,13.17-18.22).

 

 

거룩한 독서(Lecio Divina)

 

그런데 수도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성경 독서를 실천하였을까? 베네딕도에 앞선 동·서방 수도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성경을 읽고 난 후, 은수처에서 성경 말씀을 되뇌면서 암송하였다. 베네딕도 수도 규칙서에는 베네딕도 수도자들이 어떻게 거룩한 독서를 실천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제6시기도’ 후에 식사를 마치면 자기 침대에서 안전한 침묵 중에 쉴 것이지만, 만일 누가 혼자 독서를 하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수도 규칙》 48,5). 이때 각자 자기 방에 머물고 있으면서 다른 방에서 쉬는 형제에게 방해가 될 정도라면 큰 쇠를 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당시에는 독서할 때 크게 소리 내어 읽는 것이 보편된 방법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다른 형제에게 방해가 되는 상황에서는 작게 소리 내어 독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크게 소리 내어 읽든 작게 소리 내어 읽든, 이는 오늘날 우리가 침묵한 채 눈으로만 책을 읽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그렇다면 베네딕도 수도자들은 거룩한 독서 시간에 주로 무엇을 읽었을까? 베네딕도는 그것을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거룩한 독서 시간에 주로 성경을 읽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뿐 아니라 다른 교부의 저서들도 읽으라고 베네딕도 수도 규칙서에 제시되어 있다. “수도 생활의 완덕을 향해 달려가려 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거룩한 교부들의 가르침이 있으니, 이것을 지키는 사람은 완덕의 절정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권위로 (쓰인) 신·구약성서의 어느 면이나 어느 말씀이 인간 생활의 가장 올바른 규범이 아니겠는가? 또한 거룩한 가톨릭 교부들의 어느 책이 우리 창조주께 바른 길로 나아가라고 소리치고 있지 않는가? 또한 교부들의 담화집이나 제도서나 그들의 전기나 그밖에 우리의 거룩한 사부 《바실리우스이 규칙서》는 착하게 살고 순종하는 수도승들의 덕을 닦기 위한 도구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수도 규칙》 73,2-6) 그러나 다른 모든 수도자에게 성경이 핵심이었고, 그들이 수도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책들은 결코 읽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면, 베네딕도 수도자들에게도 성경이 거룩한 독서의 1차 자료였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중심으로 한 거룩한 독서가 육체노동과 기도와 더불어 베네딕도 수도회의 근본을 이루는 실천 사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 베네딕도와 베네딕도 수도원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교황 대(大) 그레고리우스 1세(540?-604년)에 의해서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랑고바르드족의 침략 위협 속에서 일생을 늘 불안하게 살았다. 따라서 북방 민족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정되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교황 재임 기간에 유럽 전역의 게르만족을 개종시키고자 선교 활동을 활발히 계획하고 지원하였다. 교황은 베네딕도 수도자를 30-40명씩 무리지어 유럽 전역에 파견하였다. 그들은 그곳 대도시 주변에 수도원을 짓고 생활하면서 지역 주민에게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래서 베네딕도 수도자들은 유럽 전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새로 입교한 신앙인들은 수도자들의 영향을 받으며 영성 생활을 실천할 수 있었다.

 

거룩한 독서를 실천하는 수도자들의 수가 서방 교회 전역에 자연스럽게 늘어나면서 성경 독서와 묵상을 중심으로 한 수도 생활과 영성 생활이 후대에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이 거룩한 독서를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베네딕도 성인의 공헌이 참으로 크다.

 

* 전영준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2년 11월호(통권 440호), 전영준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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