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를 처음 읽는데요] 십계명, 명령이 아닌 기도 첫영성체반 어린이들은 교리를 배우는 동안 기도문 찰고(擦考)를 합니다. 아이들은 성호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까지는 술술 잘 외웁니다. 사도신경에 이르러서는 몇몇이 고전하는데, 기도문이 길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을 외울 차례가 되면, 순서가 기억나지 않아 자꾸 버벅거립니다. “사람을 죽이지 마라” 다음이 “간음하지 마라”인지, “도둑질하지 마라”인지 헷갈립니다. 그럴 때 교사는 십계명의 첫 글자를 딴 ‘한하주부사간도거남남’으로 외우면 쉽다고 일러 줍니다. 그런데 그렇게 외워도 아리송한 부분은 남습니다. ‘남의 아내가 먼저일까, 남의 재물이 먼저일까?’ 십계명은 기도가 아닌 것 같아요 어느 똑똑한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십계명이 기도예요?” 잠시 당황하는 사이에 아이가 계속 말을 건넸습니다. “다른 기도문은 우리가 하느님에게 말하는 건데, 십계명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뭐는 하고 뭐는 하지 말라고 한 거잖아요. 기도가 아닌 것 같아요.” 뜻밖의 문제 제기에 십계명이 기도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하고, “당연히 기도지” 하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의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았습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신 ‘규범’이고 ‘율법’이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드린 ‘열 가지 기도’는 아니니까요. 십계명은 정말 기도가 아닐까요? 탈출기의 중심인 십계명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광야에 도착한 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는 부분(탈출 19,1-20,21)은 탈출기의 중심이요 절정의 시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십계명으로 개화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예전에 노아,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계약을 맺으셨지만, 십계명을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를 당신의 품 안으로 맞아들이십니다. 그래서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탈출 19,4)고 말씀하십니다. 어미 독수리가 연약한 새끼를 자기 날개에 태워 보호하듯, 당신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자유를 위해 기꺼이 계약을 맺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렛소리, 번개 뿔 나팔 소리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기 위해 몇 가지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고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셋째 날 아침이 되자 우렛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뿔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 위로 내려오셨다는 표징입니다. 진영에 있던 백성은 모두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 백성을 모세가 진영에서 데리고 나오자 백성은 산기슭에 섰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이르신 대로 그들은 산에 오르지 않고 모세만 산봉우리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너를 해방시켜 자유를 준 하느님이다 그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탈출 20,2). 그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십니다. “나는 너를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준 하느님이다. 이제부터 너에게 하는 말은 자유와 생명을 줄 말이다.” 그런 다음 하나하나 세세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탈출 20,3).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탈출 20,4).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탈출 20,7).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탈출 20,8).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탈출 20,12).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 “간음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4).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5).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6).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탈출 20,17). 십계명은 일반 법률이 아니다 계명의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를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법률로 이해합니다.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와 부정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계명은 재판에 적용하는 일반 법률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어기면 처벌한다’는 규정이 전혀 없습니다. 모세는 두려워 떠는 백성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시험하시려고, 그리고 너희가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녀 죄짓지 않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다”(탈출 20,20). 이 말에서 십계명을 주시는 그분의 뜻이 드러납니다. 죄지으면 벌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죄짓지 않게 하겠다는, 당신의 자유와 생명 안에 계속 머물러 ‘거룩한 민족’이 되고 ‘당신의 소유’(탈출 19,5 참조)가 되게 하겠다는 지극한 사랑입니다. 십계명이 ‘신앙 다짐’으로 바뀔 때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 나타나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려가서 백성에게, 주님을 보려고 밀려들다 많은 이들이 죽는 일이 없게 경고하여라”(탈출 19,21). 그분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모세만 보자고 한 뜻은 당신을 보려고 밀려들다 많은 이들이 죽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그 뜻을 곡해하여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랬다가는 우리가 죽습니다”(탈출 20,19) 하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요? 십계명은 우리를 못살게 하고 급기야 죽이는 올가미가 아닙니다. 십계명이 ‘신앙 다짐’으로 바뀔 때 명령이 아니라 기도가 된다는 것을 비로소 느낄 것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겠습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겠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겠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겠습니다. 간음하지 않겠습니다. 도둑질하지 않겠습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않겠습니다. 남의 아내를 탐내지 않겠습니다. 남의 재물을 탐내지 않겠습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8월호(통권 449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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