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속 풍습과 친해지기] 씨 뿌리는 사람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마태 13,3-8). 유목민에서 농경민으로 창세기는 노아가 포도밭을 가꾸는 첫 사람이었다(창세 9,20 참조)고 전합니다. 실제 이스라엘의 농경 생활은 팔레스티나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목축과 농경을 겸한 혼합 영농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리하여 천막 대신 영속적 가옥에 사는 주거 생활이 시작되고 인구는 증가했으며,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도 향상되었습니다. 팔레스티나의 농업 풍토 팔레스티나는 건기와 우기의 강우량 차이가 매우 심한 지중해의 아열대성 기후권에 속합니다. 때문에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수목 위주의 농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석회암 땅이 오랜 풍화 작용으로 부식질(腐植質)을 함유한 롬(loam)질(質) 토양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밀과 보리를 재배하기에 적합한 땅이었습니다. 그 외에 좁쌀, 콩, 녹두 등의 잡곡과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올리브, 대추야자나무 등의 과실수와 오이, 수박, 마늘, 파, 부추, 치커리 같은 채소가 재배되었습니다.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한 유프라테스 강, 나일 강 유역의 국가들과 달리 이스라엘의 농사는 강이 아니라 비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신명 11,14; 예레 5,24; 요엘 2,23; 야고 5,7 참조). 10월 중순(이르면 9월 중순)부터 12월 초순 사이에 이른 비(가을비)가 내리면, 농부들은 밭을 고르고 씨를 뿌렸습니다. 늦은 비(봄비)는 3월 초순에 시작해서 4월 중순까지 내리는데, 그 비가 너무 늦게까지 내리면 곡물의 수확에 치명적인 손실을 끼쳤습니다. 한편 우기에 지중해에서 자주 발생하는 폭풍은 우박을 동반하여 해안 평야의 농사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환절기(9월부터 10월 중순, 3월 중순부터 5월 말)에 부는 ‘시로코’(sirocco: 사하라 사막 지대에서 지중해 주변 지역으로 부는 온난 습윤한 바람)나 수백만 마리씩 떼 지어 날아다니는 메뚜기도 농작물에 큰 손해를 입혔습니다. 씨 뿌리는 방식 팔레스티나 지역은 농토가 부족하기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밭으로 개간하였습니다. 비로 토사가 유실되지 않도록 가파른 언덕에 돌을 줄지어 쌓아 만든 밭은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 파종 방식은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흙으로 덮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한 사람이 앞서 가면서 씨앗을 손으로 흩뿌리면 뒤따라가는 사람이 쟁기질해서 덮는 식이었습니다. 또 밭과 길이 구분된 우리나라의 농토와 달리 이스라엘에는 길이 따로 없는 곳이 많아 건기에는 사람들이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다녔습니다(루카 6,1 참조). 그러다 보면 밭에 없던 길이 나게 되는데, 농부들은 굳이 그 길을 갈아엎지 않고 우기까지 둘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길에 떨어진 씨를 새가 와서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7월 셋째 주일은 한국 천주교가 정한 ‘농민 주일’입니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생명 경시 풍조와 개인주의, 합리적 농업 정책의 부재로 농민의 삶이 힘겹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언제나 생명의 가치를 먼저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묵묵히 땅을 일구고 하루하루 생명과 노동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농민의 소박하고 청빈한 삶의 자세를 배워야겠습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7월호(통권 448호),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