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 걷는다 – 시편] 어떻게 찬양의 노래를 올려야 할까요? “할렐루야!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시편 149,1). 오래전에 어떤 분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상담을 하고 싶다고 저를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고통이 너무 커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들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야기를 끝낼 무렵 그분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 고맙다고 한 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며 기쁘게 돌아갔습니다. 희한하게도 주님께 마음의 고통을 다 털어 내고 나면 감사할 일이나 찬미할 일이 생기나 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비유하여 노래한 우리나라의 시조 가운데 김삿갓(김병연)의 ‘상경(賞景)’이 있습니다. 一步二步三步立(일보이보삼보립)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가 서니 山靑石白間間花(산청석백간간화) 산은 푸르고 흰 바위 사이사이 꽃이 피었네 若使畵工模此景(약사화공모차경) 화공에게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其於林下鳥聲何(기어림하조성하) 숲 속의 새소리는 어찌 하려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웅장한 자연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사람의 감성은 다르지 않나 봅니다.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거대한 하느님의 화폭에 담긴 아름다운 자연은 절로 탄성을 자아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에 대한 열렬한 마음으로 자연스레 나오는 외침이 “할렐루야!”입니다. 이것은 장엄하고 놀라운 위엄과 거룩하신 하느님을 자랑하고 칭찬하는 환호 소리입니다. ‘할렐루야’의 기본 의미는 하느님께 받은 영광과 사랑을 하느님께 반사하여 거울처럼 비춰(shine) 다시 올려 드리는 것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찬양을 드리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 ‘할렐’과 같은 의미를 지닌 동사는 ‘터힐라’인데, 그 밖에도 약간씩 의미상 차이가 있는 ‘야다, 바락, 자마르, 쉬르’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할렐루야’는 165회, 시편에는 모두 99회 나옵니다. 시편에는 찬양 시편이 35편 있으며 113-118, 135-136, 146-150편과 같이 할렐루야가 나오는 시편을 ‘할렐 시편’이라 부릅니다. 찬양 시편의 주제는 매우 다양합니다. 창조주 하느님을(8; 19; 104; 148 참조),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역사의 주님을 찬양하며(33; 103; 113; 117; 145; 146; 147 참조), 구원에 대하여(100; 111; 114; 149 참조), 왕권에 대하여(93 참조) 찬양하는 것 외에도 짧은 영광송(Doxology)이 있습니다. 그리스어의 doxa(영광)와 logia(말)에서 유래한 Doxology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을 일정한 격식에 따라 만든 글입니다. 찬양 시편은 대개 찬양으로 여길 수 있는 본문 곧 노래, 신앙고백, 기도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찬양 시편의 구조를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서론(주제), 본론(주요 부분), 결론(종결)으로 구분합니다. 찬양 시편의 중요한 특성은 공동체의 전례(제의祭儀)에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8,4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5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앙생활에서 찬양은 경외심을 가지고 사랑과 정성으로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아 주님을 높여 드리는 도구입니다. 시편 8에서 시인은 하느님의 창조 세계인 우주가 너무 광대해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다다를 수 없고 거기에서 오는 주님의 뜻을 다 헤아릴 길이 없기에, 다만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초라한지를 노래합니다(8,4.10 참조). 따라서 저자는 그저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8,5)라고 노래합니다. 그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영광으로 인간이 창조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상기시킵니다(8,6 참조). 이 시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아이들이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라고 외쳤기 때문에 수석 사제와 율법 학자들이 불쾌해하자, “아기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습니다”(마태 21,16)는 말씀으로 대답하신 시편이기도 합니다(8,3 참조). 33,1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2 비파로 주님을 찬송하며 열 줄 수금으로 그분께 찬미 노래 불러라. 3 그분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환성과 함께 고운 가락 내어라. 시편 33은 자연계를 창조하며 인간의 역사를 지배하시는 분으로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33,1)는 구절은 찬양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알게 합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전례 때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곧이어 나오는 34편과 차이가 있지만 알파벳 순으로 이루어진 시로 시편의 독특성을 보여 줍니다. 또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판관 5장 참조)와 유사하기 때문에 무척 오랜 역사를 지닌 시편으로 간주합니다(P. C. 크레이기). 33,2에는 ‘비파와 열 줄 수금’이라는 두 가지 악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수금은 히브리어로 ‘키노르’라고 하며, 비파는 가죽으로 만든 통에 줄을 엮은 옛날 악기로 ‘네벨’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열 줄(아소르) 비파(네벨)’로 나옵니다. 공교롭게도 수금이 열 줄이고 비파가 보통 네 줄이기에 번역에 문제가 생깁니다. 두 악기는 시편에서 찬양 반주에 사용되는 모든 악기를 상징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두 악기의 차이를 영성적으로 해설합니다. 즉 열 줄 비파는 아래에 울림통이 있고 수금은 윗부분에서 울리기 때문에 각각 세상에서 살면서 겪는 고통스러운 시기와 평화로운 시기를 의미하며, 인간은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모두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석합니다. 100,1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2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으로 나아가라. 3 너희는 알아라, 주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그분께서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이어라. 4 감사드리며 그분 문으로 들어가라. … 그분을 찬송하며 그 이름을 찬미하여라. 5 주님께서는 선하시고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며 그분의 성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히브리어에는 ‘감사하다’는 말이 따로 없고 ‘찬양하다(야다)’는 말에 그 뜻이 완전히 내포되어 있습니다(C. 베스터만). 따라서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에는 감사도 담겨 있습니다. 시편 100은 시편 자체에 감사하다는 말이 없어도 ‘감사(토다)를 위한 시편’(100,1)이라는 표제가 달린 찬양 시편입니다. 히브리어로 ‘토다’는 ‘감사의 희생 제사’도 의미하는데, 훗날에 희생 제사를 드리는 ‘찬양의 노래’가 되었다고 추측합니다(F. 크뤼제만).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100,1-2)로 시작하는 이 짧은 시편은 하느님께 드리는 7중의 흠숭과 찬양을 요청하고 있으며, ‘주님이 임금’이심을 노래한 90-99편의 후속편으로 보기도 합니다. 시편 89에서는 다윗 왕실의 멸망과 주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잃었던 불행이 주님 탓이 아니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며 그분의 성실은 대대에 이르신다”(100,5)는 마지막 구절에서 ‘하느님의 성실(에무나토)’이 얼마나 확실하신지 알려 줍니다. 이 시편에서 ‘성실(에무나)’은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아마도 시편 100에 실린 일곱 편의 찬양은 89에 일곱 번 드러난 하느님의 성실함에 대한 응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을 섬겨라”(2,11; 106,32 참조)는 권고에서 주님을 섬기는 일은 종이 주인을 섬기는 일, 신을 섬기는 일,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느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즉 주님만을 하느님으로 알고 받아들이라는 요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올곧고(33,1 참조) 성실하게 섬기는 이들(100,2 참조)을 통해 찬미와 찬양을 받으십니다. ‘주님께 드리는 새로운 노래’(149,1)는 제2이사야(이사 42,10 참조)가 노래한 것처럼 하느님의 성실한 사랑으로 구원된 백성이 지극한 감사를 올려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주님께 우리의 새 노래를 들려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론이 나왔네요. 바로 올곧고 성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진정한 찬양을 드리도록 애써야 하겠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시편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어떻게 지금 여기에서 살아 있게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김경랑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삶의 현장인 수지 가톨릭성서모임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성서와 함께, 2013년 4월호(통권 445호), 김경랑 귀임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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