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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시편 - 그럼에도 하느님의 자비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304 추천수0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시편] 그럼에도 하느님의 자비가!

 

 

3·1, 6·25, 8·15. 이 숫자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한국 사람이라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독립 운동과 해방, 쓰라린 동족상잔의 비극을 기억하는 날이라는 것을 압니다. 어느 민족도 고통스러운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한유(韓愈)는 “사람으로서 고금의 도리에 통하지 않는 자는 의복을 입은 소나 말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다짐하고 준비하는 일은 개인이나 민족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특히 하느님 안에서는.

 

《이스라엘 역사》를 기술한 존 브라이트가 “이스라엘 민족은 종교와 관련 없이 역사를 생각할 수조차 없다”고 하였듯이, 그들의 역사는 특이하게도 하느님 안에서 살펴봐야 그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의 구석구석에는 역사의 반추가 담겨 있습니다. 존 브라이트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끊임없이 하느님 안에서 되새겨 본 흔적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언자는 과거이다.”

 

시편에서도 이스라엘의 역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 예가 시편 78; 105-106; 135-136 등입니다. 78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 열거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을 곱씹는 회고적 반성이 나옵니다(78,33-39.65-72 참조). 격언이라는 뜻의 ‘마스킬’이라는 표제가 달린 이 시편에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시편은 이집트에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능력과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실패를 노래합니다. 광야 사건을 통한 불신앙의 회고는 또 다른 하느님의 구원 계획인 시온과 다윗의 선택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시편 전체는 오경의 전승과 광야 전승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러한 내용이 신명기의 정신과 엮여 담긴 때는 북왕국이 멸망하고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라고 추측합니다.

 

 

78,1 내 백성아, 나의 가르침을 들어라. 내 입이 하는 말에 너희 귀를 기울여라.

 

귀를 기울이도록 촉구하는 ‘가르침’(78,1.5.10)은 토라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법이자 규정입니다. 시편 저자는 하느님께서 주신 토라의 명령들을 소개하고 이스라엘의 지난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주고자 합니다(78,6 참조). 하느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보여 주신 순수한 은총을(78,12-16.23-28.44-55 참조)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거부하고 반항했는지 전해 줍니다(78,17-20.30-43.56 참조).

 

시편 저자는 자기네 역사에 휘몰아친 불행이 하느님께서 내리신 마땅한 심판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78,33-35.58-67 참조). “이에 주님께서 들으시고 격노하시니 야곱을 거슬러 불길이 타오르고 이스라엘을 거슬러 분노가 솟아올랐다”(78,21). 그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고 그분의 도우심에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78,22)입니다. ‘도우심에 의지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아만’인데 ‘신뢰하다, 확신하다, 의존하다’는 뜻을 지닙니다.

 

 

78,24 그들 위에 만나를 비처럼 내려 먹게 하시고 하늘의 곡식을 그들에게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여정 중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만나를 비처럼, 고기를 먼지처럼, 날짐승을 바다의 모래처럼 내리셨다”(78,24.27 참조).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마타르’는 ‘비가 오다’는 뜻으로, 주님께서는 가나안의 신 바알처럼 풍요로운 ‘비’를 내려 주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은총이 비처럼 내릴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시험하였고(78,18.41.56 참조) 그분께서는 그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내리셨습니다(78,31. 33.60-62 참조). ‘기억하다, 생각나게 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자카르’입니다. 하느님의 기억은 은총과 구원으로 드러나지만(78,39 참조) 인간의 기억은 망각으로 드러납니다(78,11.42 참조). 광야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을 적에게서 구하신 그날”(78,42)의 하느님을 기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드러집니다.

 

시편 저자는 이집트에서 일어난 하느님의 기적과 표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억되지 않는’ 지워진 역사처럼 되어 버렸다고 기술합니다. 따라서 가나안 정착 초기에 하느님의 심판을 피해 갈 수 없었음을 시사하며, 주님의 장막이 세워졌던 ‘실로를 버리셨다’(78,60 참조)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시온과 다윗을 선택하시어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구원하시려고 잠에서 깨어나셨다고 합니다(78,65 참조). 죄의 역사에도 하느님께서는 자비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시편 저자는 이 점을 잊지 말라고 하며 믿음으로 계명을 지키라고 권고합니다. 불신앙의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하니까요. 78편은 신약성경에도 복음과 서간에 여러 번 인용되거나 암시되었습니다(마태 13,25; 1코린 10,7.18; 1요한 1,1-4; 요한 6,31; 묵시 16,4 참조).

 

 

106,1 주님을 찬송하여라, 선하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긴 회개의 기도로 이루어진 106편도 역사적 서술의 교훈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찬양과 애가의 형식이 혼합된 이 시편은 이스라엘 패망의 역사와 유배기 이후의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명령형으로 나오는 첫 절의 성격으로 보아 이 시편의 저자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대표자로 보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이 시편을 여러 차례 인용하였습니다(로마 1,23-28 참조). 106편은 의도적으로 105편 다음에 놓습니다(W. Zimmerli). 105편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에레츠)’에 대한 하느님 약속의 진실성을 드러내고 있다면, 106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불성실했음을 전하며 다시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희망을 두자고 노래합니다. 두 시편을 대조해 보면, 당신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게도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을 확실히 깨닫고 주님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6,2 누가 주님의 위업을 말할 수 있으며 그 모든 찬양을 전할 수 있으리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찬양할 처지가 못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지 못했기에 조상들처럼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106,3.6 참조). 그리고 이스라엘이 바빌론으로 끌려가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해 징벌을 내리신 것이라고 합니다(106,6-46 참조). 이 역사 시편은 하느님께서 현재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상황을 바꾸어 주시고 다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해 주신다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선한 것, 좋은 것, 누리는 것’을 뜻하는 ‘토브’는 1절과 5절에서 미래를 향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06,47ㄴ의 ‘찬양’ 또한 하느님의 용서로 미래에 이루어지리라고 암시됩니다(Leslie C. Allen). 시편 저자는 하느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숭배하여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인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고, 주님의 용서만이 그들이 다시 찬양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합니다(106,1.47 참조). 그러기에 136편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1-26절 참조) 이스라엘 역사를 구원과 자비로 이끄신 주님을 다음과 같이 노래할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136,1). ‘자애(헤세드)’는 주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묘사할 때 쓰이는 용어로 ‘은총, 변함없는 사랑’의 의미가 있습니다.

 

역사 시편을 통해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죄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미래를 알려거든 먼저 지나간 일을 살펴라.” 명심보감의 말처럼 내 삶의 은총을 돌아보는 일은 주님 안에서 앞날을 도모하는 뜻 깊은 일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지혜 시편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새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 김경랑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삶의 현장인 수지 가톨릭성서모임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성서와 함께, 2013년 5월호(통권 446호), 김경랑 귀임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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