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 걷는다 – 아가] 천사들이 부르는 노래 아가(雅歌)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아가의 제목을 ‘노래 중의 노래(Song of songs)’, ‘최고의 노래’, ‘가장 아름다운 노래(쉬르 핫쉬림)’라 했습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아가를 묵상하면서 자신이 천사 무리 가운데 섞인 채 기쁨에 넘쳐 때때로 “당신의 향유 내음은 싱그럽고 저는 당신을 쫓아 달려갑니다”(아가 1,3-4 참조) 하며 노래하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아가는 모두 8장입니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합창단이 번갈아 노래하는 형식인데 다섯 번에 걸친 만남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아가는 우여곡절 끝에 연인이 사랑을 이루는 과정을 노래한 책입니다.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1,1)인 아가는 구약의 다섯 축제 두루마리(머귈로트) 중 하나로 파스카 축제 때 낭독되었습니다. 그러나 아가에는 하느님 이름이나 규정, 계명 또는 율법과 같은 구약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의 중요한 축제 때에 읽힌 까닭은 아가에 드러난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해석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품은 뜻을 설명하는 우의적(allegory)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아가의 독특한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는 몇 가지 해석 방법이 있습니다. 가나안의 풍요 제의로 사용한 신들의 혼인을 노래한 제의(祭儀)-신화적 방법이나 드라마 또는 극적(劇的) 방법, 고대 근동에서 널리 유행한 혼인식 축가나 사랑 노래의 수집물로 보는 문자적 방법 등입니다. 아가의 노래들을 고대 근동의 수집물로 여기는 이유는 아가의 표현 중 사랑의 심부름꾼인 ‘비둘기’(1,15; 4,1; 5,12)와 여신처럼 ‘산 위의 사자들 사이에 머무르는 애인’(4,8 참조)이 시리아-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나리꽃’(2,1-2; 5,13; 6,2-3; 7,3)과 ‘나리꽃 사이에서 풀을 뜯는 사슴’(4,5 참조)이 이집트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L. S. 쇤베르거). 4,13의 ‘정원(파라다이스)’과 3,7의 ‘가마(클리네)’ 같은 어휘는 페르시아에서 차용한 말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이 있어 어느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리 알아들을 수 있기에 균형 잡힌 시각과 풀이가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교회의 전통과 교부들이 선호한 우의적 방법이 아가를 이해하는 데 좀 더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1,7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여, 내게 알려 주셔요. 당신이 어디에서 양을 치고 계시는지 아가의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사랑의 내면에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아가에서 여인은 남자를 가리킬 때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사랑’은 히브리어로 ‘아하브’라고 하는데 구약성경에서 208회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헤세드’와 달리 인간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영혼’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네페쉬’입니다. 이는 단순히 영혼을 의미하기보다 인간 모습 전체와 인간의 호흡을 총망라한 뜻입니다(H. W. 볼프). 따라서 아가의 여인이 자신의 전 존재로 사랑하는 이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주님을 찾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2,8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며 ‘연인의 소리’를 예민하게 듣습니다. 그리워하는 사람을 기쁨에 차서 산을 뛰어오르고 넘어오는 가젤이나 영양으로 묘사합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예언자가 유배지에서 이스라엘에 회복의 희망을 알리는 소식을 전하는 모습과 유사합니다(이사 52,7 참조). 교부 대(大) 그레고리우스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뛰어오른다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뛰어오르신 것이며, 하늘에서 태(胎)로, 태에서 구유로, 구유에서 십자가로, 십자가에서 무덤으로, 무덤에서 하늘로 오르신 것이고, 진리께서는 우리도 당신을 뒤따라 달리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뛰어오르셨는지를 알려 주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뛰어오르셨듯 우리도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 주님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갈 수 있습니다. 2,11 자,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12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 꽃은 생명과 행복을 상징하고, 겨울이 지나고 장마가 걷힌 것은 죽음과 불모를 이기고 생명이 승리한 것을 나타냅니다(H. 링그렌).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낸 뒤, 새 생명이 소생하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것은 사랑의 힘 덕분입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회개와 새 삶을 예언한 호세아서와 이스라엘의 귀향과 행복을 노래한 제1이사야서에도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호세 14,6).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이사 35,1-2). 3,1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아가는 세 번째 만남(3,1-5,1 참조)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는 이들이 마침내 만납니다(3,4 참조). 혼례가 성사되고(3,6-11 참조), 남자는 여인의 아름다움에 반해 신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4,1-7.11 참조). 이 아가의 서사시는 히브리인들이 지닌 미(美)의식의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H. W. 볼프). 또 이 시는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호세 2,21)든가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이사 62,5)와 유사합니다. 6,9 나의 비둘기, 나의 티 없는 여인은 오직 하나 그 어머니의 오직 하나뿐인 딸 그 생모가 아끼는 딸. 그를 보고 아가씨들은 복되다 하고 왕비들과 후궁들은 칭송한다네. 이 노래는 사랑의 관계가 얼마나 유일한지 깨닫게 해 줍니다. 그뿐 아니라 서로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이제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 그리워하고 있을 때나(2,16 참조) 만났을 때에도 “나는 내 연인의 것, 내 연인은 나의 것”(6,3)이라고 노래합니다. 사도 바오로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대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코린 3,23)라고 말합니다. 또 주님과 우리의 사랑에 대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갈라놓을 수 없다’(로마 8,35 참조)고 하며,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20)이라고 말합니다. 마침내 아가에서 드러난 여인의 아름다움은 천상의 무리(별들)를 거느린 위엄 있고 장엄한 모습과 경이로움으로 드러납니다. “새벽빛처럼 솟아오르고 달처럼 아름다우며 해처럼 빛나고 기를 든 군대처럼 두려움을 자아내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6,10) 아가에서 여인을 가장 화려하게 칭송한 이 표현을,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돌려 드립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정열은 저승처럼 억센 것”(8,6). “큰 물도 사랑을 끌 수 없고 강물도 휩쓸어 가지 못한답니다”(8,7). 보잘것없는 인간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죽음처럼 강합니다. 주님이신 그분은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기꺼이 세상에 오셨습니다(필리 2,6-11 참조). 예수님께서 세상의 무엇으로도 휩쓸어 가지 못하는 위대한 사랑으로 기꺼이 오시기에, 우리 안에서는 날마다 거룩한 탄생(聖誕)이 이루어집니다. 교부 카루스의 테오도레투스는 솔로몬의 세 작품인 잠언, 코헬렛, 아가가 계단이 셋인 층계와 같다고 했습니다. 먼저 잠언 말씀에 따라 옳은 행실로 마음을 정화하고, 코헬렛에서 항구하지 못한 것의 덧없음을 깨달은 다음, 아가를 통해 영원한 것들을 약속하는 신랑을 갈망하며 마침내 그에게 날아오른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 아름다운 천사들의 노래를 날개 삼아 주님께 훨훨 날아가면 좋겠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지혜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김경랑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삶의 현장인 수지 가톨릭성서모임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성서와 함께, 2013년 12월호(통권 453호), 김경랑 귀임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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