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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소예언서 읽기: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때문에(아모 2,6)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827 추천수0

[소예언서 읽기]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때문에(아모 2,6)

 

 

‘문서 예언자’라는 표현이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편의상 사용한다면, 구약성경에서 시대 순으로 첫 번째 문서 예언자는 아모스가 됩니다. 자기 이름으로 된 예언서를 가진 최초의 예언자가 기원전 8세기의 인물 아모스인 것입니다.

 

 

“트코아의 목양업자”(아모 1,1)

 

아모스에 대해 하나씩 짚어 봅시다. 아모 1,1에서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먼저, 아모스는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의 아들 예로보암 시대에” 이스라엘에 관한 환시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로보암은 솔로몬 사후 기원전 930년에 다윗 왕국에서 떨어져 나가 북부에 왕국(북이스라엘)을 세운 예로보암 1세가 아니라, 기원전 787-747년에 북이스라엘을 통치한 예로보암 2세입니다. 그가 통치할 때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관한 환시를” 보았다고, 즉 북부 왕국에 관해 예언했다고 전합니다. 아모 7장에도 그가 북부 왕국의 성소인 베텔에서 예언하다가 사제 아마츠야에게 쫓겨난 일이 기록되어 있지요.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언 운동이 먼저 발달한 곳은 사실 북이스라엘이었습니다. 아모스 이전의 예언자 가운데 가장 대표적 인물이 엘리야와 엘리사인데, 그들은 모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최초의 문서 예언자인 아모스와 호세아 역시 같은 예로보암 2세 시대의 북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 후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므로, 열두 소예언자 가운데 그 둘을 제외한 열 명의 예언자와 대예언자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은 모두 남부 왕국 유다의 예언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아모스는 ‘트코아의 목양업자’였다고 합니다. 트코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7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몇 킬로미터가 문제가 아니라, 북부에서 활동한 아모스는 본래 북부 출신이 아니라 남부 출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북부 왕국까지 가서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예언을 하고, 쫓겨나기까지 했을까요? 또 그가 ‘목양업자’였다면 왜 평탄하게 그 일을 계속하며 자신의 가축 떼를 돌보지 않았을까요? 어쩌자고 양 떼를 내버려 두고 갔을까요? 그도 유배 전 예언자로서 심판과 멸망을 선고했습니다. 유다 출신의 예언자가 이스라엘까지 가서 멸망을 선포해야 하는 상황은 무엇이었을까요?

 

 

“여호아스의 아들 예로보암 시대에”(아모 1,1)

 

예로보암 2세의 통치에 대해서는 2열왕 14,23-29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단 전반적인 평가는 좋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열왕기에서는 북이스라엘의 임금들은 모두 예로보암 1세의 뒤를 따랐기에 주님의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베텔과 단에서 경신례를 드리도록 했기에, 신명기계 역사가의 판단 기준에 따르면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은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사실대로 전해집니다. “그는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영토를 되찾았다”(2열왕 14,25). 예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선에 맞대고 있던 시리아(아람)와 전쟁을 했고, 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없도록 몰아낸 것입니다. 아버지 여호아스 시대에 시리아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아 거의 다윗 시대만큼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장한 그때는, 어느 면에서 안정과 번영을 누린 시기에 속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를 침입하던 시리아는, 점차 세력을 키우는 아시리아의 영향으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을 괴롭힐 여력이 없었습니다.

 

좀 더 범위를 좁혀 보면, 아모스서에 언급된 정치 상황을 볼 때 아모스는 기원전 760년경 짧은 기간에 예언 활동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그 기간은 몇 달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모스서에는 예언자에 관한 전기적 사실이 거의 나오지 않아 그의 일생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는 남부 출신으로 잠시 북부에 가서 활동했을 것입니다.

 

760년, 그럼 이제 계산을 해 봅시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때가 기원전 722년입니다. 멸망하려면 40년이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로보암 2세의 통치가 끝난 747년은 멸망하기 25년 전입니다. 그런데 안정과 번영을 누린 시기라고요? 그 안정과 번영은 분명 일시적이었습니다. 예로보암이 세상을 떠날 때 나라가 오래오래 지속되리라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그는 혼자 40년간 통치했지만, 그가 죽은 뒤 25년 동안 여섯 명이 왕위에 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섯 명이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대부분 살해되거나 폐위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정국이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웠다는 뜻이지요. 주된 이유는 아시리아의 팽창에 있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양면성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영토가 확장되고 외적의 침입이 없고 경제가 발전하여 부가 축적됩니다. 아무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중병에 걸려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환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진단이 내려지듯, 태평한 북부 왕국에 남부 왕국 출신의 예언자가 파견됩니다. 이 예언자의 몫은, 누구도 멸망을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멸망을 향해 간다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세 가지 죄 때문에”(아모 1,3; 2,6)

 

아모스서의 첫 부분에서는 일정한 형식으로 다마스쿠스, 가자, 티로, 에돔, 암몬, 모압에 대한 심판이 선고됩니다(아모 1,3-2,3 참조). “다마스쿠스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아모 1,3). 다마스쿠스는 시리아의 수도로서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고, 가자는 필리스티아의 도시 가운데 하나로 티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서쪽에 있습니다. 에돔, 암몬, 모압은 모두 이스라엘의 동쪽에서부터 남동쪽 방향에 있습니다. 아모스는 이 나라들이 국제 관계에서 저지른 불의와 폭력을 비판합니다.

 

이렇게 주변 나라들에 대한 심판이 선고될 때 이스라엘은 그 심판의 날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주님의 날을 갈망한다고 말합니다(아모 5,18 참조). 주님의 날, 심판 날에 다른 민족들은 멸망하고 이스라엘은 구원되리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는 않으시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주변 나라들에 대한 심판 선고가 끝난 다음 예상 밖의 선고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아모 2,6). 다른 민족들에 대한 선고와 같은 시작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선고는 다른 어느 나라에 대한 선고보다 더 깁니다. 결국 아모스의 주된 관심은 다른 민족들의 죄악을 고발하거나 그들에게 심판을 알리는 것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려왔음을 상기시키시면서, “나는 이 땅의 모든 씨족 가운데에서 너희만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죄를 지은 너희를 나는 벌하리라”(아모 3,2) 하고 선언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계시다고 해서 이스라엘을 벌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아시는 이스라엘에게는 그 특별한 관계만큼 무거운 책임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셨지만, 이스라엘이 그 선택에 합당하게 살아가지 않을 때 그 선택은 이스라엘이 벌을 면할 이유가 되지 않고 오히려 더 엄한 심판을 받을 이유가 됩니다.

 

평화롭다고, 아무 문제없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멀리서 갑자기 찾아온 예언자. 그는 북이스라엘의 안정된 나날을 교란시키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귀기울이는 것이 이스라엘의 마지막 회생의 길임을 이스라엘은 몰랐습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루카 19,42)이라는 예수님의 탄식이 들리는 듯합니다. 쓴소리하는 예언자야말로 평화의 길을 알려준다는 사실을, 어리석은 백성은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등을 썼고, 《약함의 힘》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4년 2월호(통권 455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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