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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소예언서 읽기: 그날은 분노의 날(스바 1,15)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133 추천수0

[소예언서 읽기] 그날은 분노의 날(스바 1,15)

 

 

1392년 조선 건국, 1592년 임진왜란. 거의 매달 새로운 소예언자를 만나면서 시대적 배경을 따라가다 보면 어지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워낙 중요한 일이 벌어진 시대는 연도만 들어도 어떤 시대였는지 압니다. 그래서 저는 예언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 책의 첫 구절에 표시된 기본 사항에서 출발합니다. 스바니야의 경우, 활동 연대만 정확히 기억하고 있으면 무슨 내용을 선포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답부터 말씀드리면, 스바니야가 활동하기 시작한 때는 기원전 630년경입니다.

 

 

“아몬의 아들”(1,1)

 

스바 1,1에 “아몬의 아들, 유다 임금 요시야 때에 스바니야에게 내린 주님의 말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신명기계 역사서(열왕기)에 따르면 요시야는 다윗 다음으로 훌륭한 임금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덟 살에 임금이 되었기에 어린 시절에는 이렇다 할 업적이 없습니다. 그때에는 요시야의 업적보다 이전 임금들의 잘못이 더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스바니야가 활동한 것도 그 시대입니다. 그래서 굳이 “아몬의 아들” 요시야 때라고 밝혀 놓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 요시야가 임금이 되었을 때의 상황을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기원전 8세기, 유다 임금 아하즈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떠오르는 신흥 강국 아시리아에 도움을 청했습니다(이사 7장 참조). 약한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강대국에 도움을 요청한 결과는 빤합니다. 강대국이 거저 도와주지 않지요. 유다는 멸망을 면하지만 아시리아에 종속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하즈 다음에 즉위한 히즈키야는 아시리아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려고 했지만, 므나쎄 통치 때 유다 왕국의 상태가 최악에 이릅니다. 다윗 왕조에서 가장 나쁜 평가를 받는 므나쎄는 55년이나 왕좌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 히즈키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짓고, 바알 제단들을 세웠다”(2열왕 21,3). 이 시기에는 아시리아에서 들어온 각종 우상과 이교 관습이 만연했습니다. 므나쎄는 영매와 점쟁이들을 두었고, 자기 아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했으며, 자기가 새겨 만든 아세라 목상을 주님의 집 안에 세우기까지 했습니다(2열왕 21,3-9 참조). 다윗 왕조의 임금이라는 인간이 말입니다. 그래서 열왕기에서는 하느님께서 므나쎄 시대에 이미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셨다고 말합니다.

 

므나쎄의 아들 아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재위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므나쎄만큼 온 나라를 벌집으로 만들어 놓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아니 므나쎄가 다 해 놔서 할 일이 별로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아몬에 대해서는 그저 자기 아버지와 마찬가지였다고만 말합니다. 그래서 “아몬의 신하들이 임금을 거슬러 모반하여 궁전 안에서 그를 죽였다”(2열왕 21,23)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임금이 된 이가 요시야입니다(기원전 640년).

 

하느님께 충실한 요시야는 기원전 622년에 신명기의 가르침에 따라 개혁을 단행할 것입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종교 영역에만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히즈키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교 풍습을 없애고 야훼 신앙에만 충실하려는 노력은 정치적으로 외세(아시리아)의 영향을 벗어나려는 시도와 늘 병행합니다. 정치적으로 독립하지 않고서는 아시리아의 신들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율법을 충실히 지키며 살고자 한다면 사회 개혁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시야의 개혁은 종교와 정치 등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스바니야가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짐작할 수 있지만, 활동을 마친 시기는 짐작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스바니야서에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멸망 후의 희망까지 말하는 점을 보아 어떤 이들은 스바니야가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까지도 살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석 성경》 입문에서도 그렇게 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스바니야가 니네베의 멸망을 앞으로 다가올 일로 예고하고, 열왕기에 기록된 요시야 임금의 개혁 때 스바니야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스바니야는 요시야 임금 초기에만 활동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석 성경》 입문에서는 스바니야가 예루살렘 함락까지 “직접 겪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하지만, 저는 의심하는 편에 속합니다. 사실 스바니야서에서 어느 부분이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작성되었고, 어느 부분이 후대에 첨가되었지 가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스바니야가 활동을 시작한 시기만 기원전 630년경으로 잡아 놓고 활동을 마친 시기는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이 문제는 다음 달에 다시 제기할 것입니다.

 

 

“유다 임금 요시야 때에”(1,1)

 

어쨌든 스바니야가 활동을 시작한 때는 요시야가 개혁을 단행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에게 심판을 선고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사람들처럼 “지붕 위에서 하늘의 군대를 경배”하고, 암몬 사람들처럼 “밀콤을 두고 맹세”(1,5)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적 불의도 만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스바니야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미카 예언서에서,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미카 6,8)고 했지요.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가는 세상을 보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말할 용기가 있느냐,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이것이 문제지요. 스바니야가 선포한 내용은 지금까지 길게 묘사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상황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그는 이 구체적 상황에 대해 말을 합니다.

 

이전의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스바니야는 하느님을 거스른 죄와 이웃을 거스른 죄를 고발합니다. 그는 우상 숭배를 고발하고, 교만하게 “주님은 선을 베풀지도 않고 악을 내리지도 않으신다”(1,12)고 생각하면서 폭력과 속임수를 저지르는 이들을 비판하며, 심판이 다가왔다고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힌 “모압은 소돔처럼 되고 암몬 자손들은 고모라처럼”(2,9) 될 것이며, 니네베는 폐허가 되리라고 선포합니다(2,13 참조). 특히 비판을 받는 것은 교만입니다. 암몬과 모압은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자기들의 국경에 서서 으스대었다”(2,8)고 하고, 니네베는 “나야, 나밖에 없어!”(2,15) 하며 희희낙락했다고 합니다. 니네베가 멸망한 것이 기원전 612년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임박한 몰락을 알지 못하고 자기 세력을 자랑하는 이들!

 

아모스와 나훔이 선포한 ‘주님의 날’이 스바니야서에서도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그날에 대한 스바니야의 묘사는 다른 예언자의 묘사보다 무섭습니다. 득달같이 달려오는 그날은 “분노의 날 환난과 고난의 날 파멸과 파괴의 날 어둠과 암흑의 날 구름과 먹구름의 날”(1,15)이 될 것이라 예고합니다. 그날은 다른 민족들과 유다를 모두 덮칠 분노의 날입니다. 아모스가 선포한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만 구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도 그날이 어둠의 날이 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도 그분을 거슬러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자는 수치를 모르는구나”(3,5)

 

스바니야서가 심판 선고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무서운 심판 선고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어렸을 때 미술 시간에 하던 ‘데칼코마니’가 떠오릅니다. 종이를 반으로 접고 펼친 뒤 한 쪽에 여러 색깔의 물감을 짜고 다시 접은 다음 종이를 문지릅니다. 종이를 열면 양쪽에 똑같은 모양이 찍혀 있습니다. 이처럼 스바니야의 심판 선고는 당대의 죄악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 시대를 알면 스바니야가 무슨 말을 했을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스바니야와 같이 용기 있게 말을 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요? 율법을 알고 있으면서, 그 시대의 죄악을 알고 있으면서 많은 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움과 수치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스바니야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요시야의 개혁을 위한 길이 마련된 것입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월호(통권 466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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