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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 말씀 피정3: 탈출기는 선조들의 신앙이 담긴 이야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178 추천수0

탈출기 말씀 피정 (3) 탈출기는 선조들의 신앙이 담긴 이야기

 

 

지난 호에서는 1,1-14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뒤, 탈출기를 읽는 데 중요한 몇 가지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호에서도 탈출 1,15-22의 내용을 잠시 묵상한 다음, ‘탈출기의 역사성’, ‘역사와 이야기’라는 주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시프라와 푸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자손들을 혹독하게 부립니다. 그리고 히브리 산파들을 시켜, 해산을 도울 때 밑을 보고 아들이거든 모두 죽여 버리고 딸만 살려두라고 명령합니다. 두 살 이하의 아이를 모조리 죽인 마태오 복음서의 헤로데 임금처럼 ‘잔혹한 임금’이라는 불명예를 쓰기 싫었는지, 힘없는 두 산파를 시켜 몰래 살인을 저지르려는 파렴치한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히브리 산파 두 사람의 이름이 시프라와 푸아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집트 임금이 명령한 대로 행동하지 않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두었다고 전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 곧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단지 그분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존중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집회 1,14은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지혜의 시작이라고 말하는데, 구약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이란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주님을 두려워하던 시프라와 푸아 앞에 떨어진 파라오의 명령은 분명히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약속을 완전히 뒤엎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수없이 많은 자녀를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프라와 푸아는 참으로 지혜롭게 주님의 뜻대로 행동하여 히브리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살려줍니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챈 파라오가 산파들을 불러들입니다. 파라오는 그들에게 왜 아이들을 살려 두었는지 따져 묻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기지를 발휘해 “히브리 여자들은 이집트 여자들과는 달리 기운이 좋아, 산파가 가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1,19) 하고 답합니다. 두 여인의 지혜로운 처신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더욱 번성하여 강해집니다. 그러자 파라오는 몰래 처리하려던 계획을 바꿔 본색을 드러냅니다. 헤로데처럼 잔혹한 피바람을 직접 몰고 옵니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게 하고, 딸만 살려두게 만듭니다.

 

잠깐! 오늘날 새로운 파라오가 등장하여 아직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교육비가 많이 든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세상의 시선이 두렵다 등 여러 이유로, 곧 돈과 자유와 시선이라는 파라오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 갑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시프라와 푸아 같은 지혜로운 산파가 많이 필요합니다. 국가와 교회, 여러 사회단체 모두 지혜로운 산파가 되어 낙태가 일어나지 않는, 아니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탈출기의 역사성

 

이번 호에서도 탈출기 전체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두 가지 주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탈출기 이야기가 가진 역사성을 잠시 다루겠습니다.

 

두 산파 이야기만 놓고 봐도 탈출기 이야기의 역사성에 대해 약간 의구심이 듭니다. 이집트를 빠져 나온 이스라엘 사람이 장정만도 육십만 명가량 되었다고 하는데(12,37 참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산파가 두 명밖에 없었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라면 파라오는 왜 다른 산파들을 남겨 두고 굳이 두 산파만 불러 이야기했을까요? 그렇게 해서 언제 이스라엘 백성이 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성경 저자는 파라오가 은밀히 마음먹은 생각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요?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신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탈출기 이야기가 실제 벌어진 사건을 고스란히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호에서도 이미 다루었지만, 탈출기는 여러 신앙 선조의 체험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장되거나 포장된 이야기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탈출기의 여러 이야기에는 역사적 요소가 존재합니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원전 13세기경 라메세스 2세가 피톰과 라메세스를 고센 땅에 건설했는데, 탈출기는 이 역사적 사건을 전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출기는 역사상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사건들을 경험한 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기 시작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이야기를 통해 자기 민족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깨달아 알아 왔고, 당신의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신 하느님께서 백성이 부르짖을 때 그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점을 배워 왔습니다. 탈출기의 이야기는 단순히 전설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신원을 일깨워 주는, 또 그들을 믿음의 백성으로 만들어 주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역사와 이야기

 

‘설화 분석’, 또는 ‘이야기 분석’이라는 읽기 도구가 있습니다(장 루이 스카, 염철호 · 권연진 옮김, 《우리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 - 구약성경의 설화 분석 입문》 참조). 탈출기 말씀 피정에서 이 읽기 도구를 자주 사용하게 될 텐데, 여기서 ‘역사’는 시간 순서대로 일어난 일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역사와 다릅니다. 이야기는 경험한 바를 자기 나름대로 엮어서 전합니다. 일어난 일을 모두 이야기하지도 않거니와 어떤 부분은 줄여서 이야기하고, 어떤 부분은 늘여서 이야기합니다. 대개 중요한 부분이 나오면 매우 길게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으면 완전히 건너뛰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려 들면 흥미가 떨어져 아무도 읽지 않는 글처럼 지루해집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설화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전지전능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등장인물의 마음을 읽기도 하고, 앞뒤에 일어난 일의 원인과 결과와 관계를 모두 꿰뚫고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합니다. 있던 그대로의 역사와 달리 이야기에는 해석이 첨가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과장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이야기 자체를 통해 메시지가 잘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호에서 함께 읽은 1,15-22에서도 하느님의 계획에 역행하는 파라오와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는 두 산파를 대조시켜, 두 산파도 이기지 못한 파라오의 어리석음을 분명하게 부각합니다. 성경 저자는 파라오가 생각한 의도와 계획까지 모두 꿰뚫고 있는 듯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설화자는 훨씬 전에 일어난 일을 나중에 이야기하기도 하고, 나중에 일어난 일을 먼저 알려 주기도 합니다. 곧 시간 순서를 뒤바꿔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산파들이 하느님을 경외하였기에 하느님께서 그들의 집안을 일으켜 주셨다는 1,21의 내용은 시간상 1,22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1,22은 파라오가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난 아들을 모두 강에 던지라고 명령하는 대목인데, 그 전에 하느님께서 산파들의 집안을 일으켜 주시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산파들의 집안을 탈출 이후에도 계속 번성하게 해 주셨음이 분명합니다. 시간 순서를 바꿔 이야기하는 것이 모든 이야기의 특징입니다. 역사에서는 시간 순서가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탈출기에 담긴 이야기를 읽을 때 이 모든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곧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며 계시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여 성경 글자 하나하나를 역사적 사실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탈출기는 선조들의 신앙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게 됩니다. 또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고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요, 글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거룩한 이야기책입니다.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탈출기 전체를 읽기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점들을 소개하면서 1장을 읽어 보았습니다. 다음 호부터는 본격적인 성경 이야기 세계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때까지 1장과 2장을 꼼꼼히,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읽어 보세요.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3월호(통권 456호), 염철호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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