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 말씀 피정 (16) 주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가? 갈대 바다에서 떠나 광야로 나아간 이스라엘은 사흘 동안 물을 찾지 못합니다. 마라에 다다라 겨우 물을 발견하지만 마실 수 없는 물이었습니다. 마라의 쓴 물 오늘날 이집트의 성지를 순례할 때 시나이 산을 향하는 길목에서 ‘마라’라는 곳을 들릅니다. 바닷물이 스며들어 마실 수 없게 된 물이 여러 웅덩이에 고인 모습을 그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곳이 탈출기의 마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광야의 뙤약볕을 버티며 사흘을 걸은 뒤 겨우 물을 발견한 이스라엘에게 그런 물웅덩이가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 주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한단 말이오?”(15,24) 탈출기를 읽는 독자들 또한 마실 수 없는 물을 두고 불평하는 백성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탈출기는 백성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계속 ‘불평’했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언급합니다. 어려움에 빠졌다는 사실보다 어려움에 빠졌을 때 보인 반응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들이 초조하고 두려워하여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그분의 일에 계속 불평을 터트린다는 점을 강조합니다(15,24; 16,3.7-9 등 참조). 결국 마라의 쓴 물 이야기와 이어지는 이야기의 초점은 이스라엘이 겪은 어려움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느님께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탈출기는 어려움을 겪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일에 반대하여 이집트로 되돌아가고자 했다고 전합니다. 성경은 하느님 외의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을 우상 숭배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15,26에서 하느님의 말을 잘 듣고,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며, 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규정을 지킬 것을 강조합니다. 물론 그분의 말씀과 일, 계명과 규정이 당장 불편과 어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힘듦을 토로하고 도움을 청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이 잘못되었다고 불평불만을 터트리고 그분의 계획을 틀어버리면 문제가 됩니다. 15,25은 목마름의 상황을 하느님의 시험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백성이 진정 당신의 뜻에 따라 사는지 하느님께서 확인하고자 하셨다는 말입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좋은 것만 베푸셨다면 백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백성이 진정 하느님을 찬양하며 그분만을 하느님으로 섬겼을까요? 편안해지면 더 편안해지려고 하는 존재가 인간이기에, 하느님께서 아무리 편안한 길을 마련해주셨다 해도 백성은 불평불만을 터트렸을 것입니다. 이는 태평성대를 누렸던 다윗과 솔로몬 임금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만 살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결국 목마르고 배고픈 처지든 그렇지 않은 처지든 우리 앞에 놓인 모든 상황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며 사느냐 살지 못하느냐를 결단해야 할 시험 상황이 됩니다. 하느님께 왜 이런 상황을 마련하셨는지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느님의 뜻을 추구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단의 순간에 백성은 모세를 찾아가 불평불만을 터트립니다. 모세는 백성의 불만을 듣고 하느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주시고, 모세는 그 나무를 물에 던져 쓴 물을 마실 수 있는 단물로 만듭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백성이 시험에 걸려 넘어져도 분노하지 않으시고, 처음의 편안한 상태로 되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또 다른 시험을 준비하십니다. 이를 통해 당신과 계약을 맺게 될 민족을 준비시켜 주십니다. 탈출기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준비시키시는지 잘 알려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백성이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 ‘교육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밋더바르(광야)’가 ‘다바르(말씀)가 있는 곳’을 의미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목마름에 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또 다른 시험이 주어지는데, 배고픔과 관련된 시련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시련 앞에서 다시 하느님께 불평을 터트립니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16,3) 백성이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세와 아론은 그 불평이 주님을 향한 것임을 분명히 지적합니다(16,8 참조). 자신들을 구해 새로운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고자 하는 주님의 뜻을 정면으로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백성에게 진노하지 않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십니다. 모든 이가 충분히 먹을 음식을 마련해 주십니다. 물론 더 가지려 하는 사람의 욕심을 알고 계시기에 매일 일용할 양식만 거두어들이라고 명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일부는 주님의 계명을 어기고 더 많이 가지려 합니다. 결국 모세가 화를 냅니다(16,20 참조). 하느님을 대신해서 그들을 질책합니다. 하느님께서도 분명히 이야기하십니다. “너희는 언제까지 내 계명과 내 지시를 지키지 않으려느냐?”(16,28) 잠깐!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를 가든 계약의 궤를 매고 갔습니다. 계약의 궤는 솔로몬 임금이 성전을 지은 뒤에 지성소에 보관되었습니다. 궤 안에 아론의 지팡이, 십계명 돌판, 만나가 담긴 항아리를 보관했다고 전해집니다. 16,33은 이러한 점을 가리킵니다. 마싸와 므리바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를 떠나 시나이 산 쪽으로 옮겨 갑니다. 그런데 또 물을 찾지 못합니다. 백성은 “우리가 마실 물을 내놓으시오”(17,2) 하면서 모세와 시비합니다. 불평불만이 점점 커져 시비까지 붙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도 백성은 하느님이 아니라 모세에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17,3) 하고 따집니다. 그러자 모세는 백성의 불평이 자신뿐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어째서 나와 시비하려 하느냐? 어째서 주님을 시험하느냐?”(17,2)라고 말합니다. 성경 저자는 백성이 왜 불평했는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 줍니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목마름 때문에 불평했다고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마름 자체보다 목마름 때문에 하느님께 불평을 터트리며 모세와 시비까지 붙은 모습을 강조합니다. 그들의 불평불만이 얼마나 컸던지 모세는 이렇게까지 이야기합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17,4). 급박한 상황에서 모세가 하느님께 부르짖자 하느님께서 또 해결책을 내놓으십니다. 나일 강을 친 지팡이로 바위를 치자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 물을 마시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모세는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17,7) 하면서 주님을 시험했다 하여 그곳을 ‘마싸’와 ‘므리바’라고 이름 짓습니다. 마싸는 시험, 므리바는 둘 간의 논쟁이나 시비를 뜻합니다. 마싸와 므리바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주님께 ‘당신은 어디에 계시는가? 당신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 달라’고 따져 물은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어디 계신가? 이번 달도 ‘주님은 과연 계신가?’라는 주제로 귀결됩니다. 이 주제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그분께서는 창조 때부터 언제나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이끄십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부딪히면 ‘주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가?’ 하고 묻곤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표징으로 당신이 우리와 항상 함께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임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을 때 하느님께 불평불만을 터트리기보다 그런 어려움에 담긴 주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묻고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살아갑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부활에 이르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영원한 생명의 물을 가져다 주는 바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1코린 10,4 참조)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위이신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을 먹고,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영원히 목마르지도 배고프지도 않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공역)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4월호(통권 469호), 염철호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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