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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 말씀 피정21: 정의의 실현과 십계명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259 추천수0

탈출기 말씀 피정 (21) 정의의 실현과 십계명

 

 

지난 호에서는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가톨릭의 십계명은 탈출기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을 한 계명으로 엮고, 열 번째 계명을 두 가지 계명으로 나누고 있기에 탈출기의 십계명 순서와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내용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혀 둡니다.

 

 

제8계명: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남의 재물을 탐내어 도둑질하는 짓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허용되지 않습니다. 탈출기도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며, 도둑질한 이들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소나 양을 도둑질해서 잡아먹거나 팔았을 때에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를 배상하게 합니다(21,37 참조). 또 집에 들어갔다가 들킨 도둑의 경우 주인이 그를 때려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까지 말합니다(22,1 참조). 물론 해가 뜬 뒤에는 도둑이더라도 때려 죽일 수 없도록 규정합니다(22,2 참조). 도둑질한 사람은 자신이 도둑질한 것을 배상하되 그것이 아직 살아 있을 경우에는 갑절로 배상하게끔 규정합니다(22,2-3 참조). 이처럼 탈출기는 도둑질을 아주 엄중하게 처벌합니다.

 

성경에서 재물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이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재물을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 써야 합니다. 재물을 소유한 이도 따지고 보면 하느님의 것을 관리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여기에는 땅도 해당합니다. 모두가 이 점만 인정하면 도둑질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 욕심을 부려 남의 것을 더 차지하려 하고, 또 남의 것을 탐내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도둑질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점은, 욕심을 부려 다른 사람의 몫을 착취하고 빼앗는 것 역시 도둑질에 해당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탈출기는 백성 가운데 이방인, 고아와 과부, 가난하여 남에게 돈을 꾼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22,20-26 참조). 안식년에는 땅을 놀려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이 그 소출을 먹을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23,10-11 참조). 이는 그 땅의 본래 주인인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몫입니다. 성경이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부유함을 하느님의 강복으로 여기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브라함 이야기나 욥기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산을 자신의 소유로만 여기며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계속 축적하려고 하는 자세는 가난한 이를 배려해야 한다는 율법 규정을 어기는 큰 잘못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제8계명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줍니다.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눌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난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모두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배울 점이 참 많습니다.

 

 

제9계명: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민족은 재판에서 사람들의 증언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사형에 해당하는 재판의 경우, 반드시 둘이나 세 명의 증인이 필요하다고 규정하였습니다(신명 17,6 참조). 그만큼 재판에 신중을 기하기 위함입니다.

 

재판에서 올바른 증언을 하는 것은 억울한 이를 풀어 주고, 죄인을 심판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증언은 여러 목숨을 구한다(잠언 14,25 참조)고까지 말합니다. 반면에 거짓 증언으로 이웃을 해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다니엘서의 수산나 이야기(다니 13,1-64)에서 그 예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산나 이야기에서 원로 두 명은 수산나를 탐하던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 거짓 증언으로 수산나를 모함하여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기지로 그들의 거짓 증언이 밝혀져, 수산나에게 가하려던 벌을 그들이 대신받게 됩니다.

 

거짓 증언은 단순히 재판과 관련된 내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탈출기는 거짓 증언의 예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헛소문을 퍼트리는 것, 악인과 손잡고 거짓 증인이 되는 것, 다수를 따라 정의를 왜곡하는 증언을 하는 것, 뇌물을 받아 눈이 멀어 잘못된 송사를 하는 것 등이 모두 거짓 증언에 해당합니다(23,1-9 참조).

 

또한 마태오 복음서는 거짓 맹세하는 것 자체가 거짓 증언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서는 그것이 이웃에게 불리하든 아니든 관계없이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아예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말하라고 권합니다(마태 5,33-37 참조).

 

정직하게 사는 것이 바보처럼 보이는 요즘입니다. 속여야 살 수 있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거짓 증언, 거짓 맹세와 관련된 제9계명을 상대화시키려는 시도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9계명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거짓 위에 서 있는 공동체는 결코 존립할 수 없다는 점을 말입니다. 거짓 맹세와 거짓 증언이 판을 치는 공동체는 반드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제10계명: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 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과 잘 연결됩니다. 하느님께 받은 소유물을 잘 관리하여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웃을 위해 쓰며, 공동선에 부합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받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웃의 집과 아내,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등을 탐내는 것, 그것은 결국 공동체를 깨트리는 죄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제10계명을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와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두 계명으로 나눕니다. 이는 신명 5,21이 집 대신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말을 먼저 이야기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남의 것을 탐내게 되는데, 그런 마음 자체를 갖지 말라는 것이 바로 제10계명입니다.

 

제10계명이 이웃의 것을 빼앗지 말라는 데 머물지 않고, 내적으로 그것을 탐내지도 말라고 강조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결국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말인데, 욕심이 큰 화를 불러온다는 점을 지적하는 듯합니다.

 

요즘 같은 경쟁 사회에서 남이 차지한 자리, 남이 가진 재산 등을 탐내지 않는 사람은 도태되고 좌절하며 실패를 거듭할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탐내지 말라는 제10계명은 참으로 지켜 내기 어려운 가르침인 듯합니다. 하지만 남의 것을 탐내고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그런 세상은 결코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참으로 하느님 나라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려면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개자 모세

 

모세가 십계명 말씀을 받고 있을 때 백성은 우렛소리와 불길, 뿔 나팔 소리와 연기에 싸인 산을 멀찍이 서서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언제나 두려운 존재였기에 스스로 하느님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은 모세에게 하느님을 대신해서 말해 주기를 청합니다. 직접 하느님을 대면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게 되면 죽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모세의 말을 꼭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여기서 모세의 역할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사람, 곧 예언자의 역할입니다.

 

신명기는 모세를 가장 이상적인 예언자로 소개합니다(신명 34,10 참조).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전달해 준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모세보다 위대한 분으로 그립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느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고, 또 그렇게 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세 역시 하느님의 뜻을 전해 주던 예언자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모세만큼 하느님의 뜻을 잘 전달한 예언자는 없었습니다. 예언자 모세가 하느님의 뜻으로 전한 율법을 담은 책이 곧 오경입니다.

 

모세는 두려움에 떨고 있던 백성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시험하시려고, 그리고 너희가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녀 죄짓지 않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다”(20,20). 구약성경의 지혜 문학에 속한 책들은 한결같이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 곧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는 사람이니, 탈출기의 관점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모세가 전하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계약의 책

 

중개자 모세는 백성에게 십계명에 이어 여러 규정을 전해 줍니다. 계약 법전이라고도 부르는 이 “계약의 책”(20,22-23,33)은 십계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장한 규정들을 담고 있습니다. 계약 법전은 이스라엘의 가장 오래된 법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명기 법전(신명 12,1-26,16 특히 20,22-23,33)과 성결 법전(레위 17-26장)과 분명한 차이점을 보입니다. 그 차이점은 다음 호에서 자세히 살펴보겠고, 이번 호에서는 세 법전의 공통점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세 법전은 모두 사회적 약자인 고아와 과부, 가난한 이, 이방인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는 더 오래된 함무라비 법전과 큰 차이점을 보여 줍니다. 당시 함무라비 법전은 주로 사회의 지배 계층인 지주나 노예의 주인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인간의 생명보다 재산권을 더 중시하였기 때문에, 재산과 관련된 범죄를 저지르는 이를 중형에 처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율법은 달랐습니다. 계약의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율법은 사람의 생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재물에 대한 소유권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우리는 채무자의 인간다움을 보호하도록 규정하는 계약의 책(22,24-26 참조)에서 이 점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공역)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9월호(통권 474호), 염철호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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