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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 말씀 피정22: 약자를 위한 하느님의 법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938 추천수0

탈출기 말씀 피정 (22) 약자를 위한 하느님의 법

 

 

오경에는 계약 법전(20,22-23,33), 신명기 법전(신명 12,1-26,16), 성결 법전(레위 17-26장)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세 법전을 간략히 살펴보고 그중 ‘계약의 책’이라고 불리는 계약 법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세 법전의 차이점과 그 의미

 

오경이 한 시대, 한 저자의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은 세 가지 다른 법전이 오경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세 법전이 어떤 면에서 다른지 그 예를 하나만 들어 보면 이렇습니다.

 

21,2-11에는 히브리인이면서 종이 된 이에 관한 법이 나옵니다. 이 법에 따르면 남종과 여종의 경우 처우가 다른데, 남종의 경우는 일곱째 해에 자유로운 몸으로 풀려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종은 남종이 풀려 나가듯 나가지는 못합니다. 또 남종의 경우 결혼을 하였다면, 아내와 자식은 데리고 나갈 수 없습니다. 만약 그가 아내와 자식과 함께 살고자 한다면, 종신토록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명 15,12-18에도 히브리인이면서 종이 된 이에 관한 법이 나옵니다. 이 율법 규정을 대충 살펴보면 탈출기의 내용과 동일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유심히 살펴보면, 탈출기와 달리 남종과 여종에 관한 규정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명기의 규정에 따르면 여종 역시 남종과 동일하게 여섯 해 동안 종살이를 하고 나면 풀려 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신명기는 종이 되는 이들을 두고 ‘너희 동족’, 곧 ‘너희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종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주인의 형제들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신명기의 시각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누구나 형제자매이며, 남자든 여자든 구분 없이 동등하게 율법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 규정은 탈출기의 율법 규정보다 더 진일보한 규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레위 25,39-55을 보면 종에 관한 율법이 또 언급됩니다. 그런데 이 규정을 읽어 보면 히브리 출신 동족의 경우는 아예 종으로 부릴 수 없도록 규정하는 듯합니다. 레위기는 가난하여 자신을 판다 하더라도 그를 종부리듯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레위 25,39 참조). 레위기는 마치 이스라엘에서 노예 제도 자체를 없애 버리는 듯합니다.

 

이처럼 종에 관한 법률만 살펴보더라도 오경에는 세 가지 다른 규정이 존재합니다. 학자들은 세 대목의 법전을 구분하여 각기 다른 이름을 붙여 부릅니다. 탈출기에 나오는 율법 모음은 계약 체결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여 ‘계약 법전’이라 부르고,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 모음은 신명기 정신에 입각하여 만들어졌다 하여 ‘신명기 법전’이라고 부릅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율법 모음은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 거룩해져야 한다’(레위 11,44 참조)는 레위기의 정신을 드러낸다 하여 ‘성결聖潔 법전’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 법전은 각기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 다릅니다. 계약 법전이 가장 오래된 이스라엘의 율법 규정이라고 한다면, 신명기 법전은 요시야 임금 시대를 전후로 새로운 시대에 맞게끔 율법 규정을 발전시킨 것이고, 성결 법전은 유배 이후 사제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공동체에 적합한 규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역사에서 새롭게 드러나게 된 하느님의 뜻이라면 어느 것도 제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종에 대한 법률에 관해 다른 시각을 가진 법 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성경은 그것들을 모두 품어 다 담아 둘 뿐만 아니라, 동일한 권위를 부여합니다. 물론 전체의 일관성은 흐트러질 수 있겠지만, 성경 저자들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규정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의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 규정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 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이야기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하느님의 뜻, 곧 새로운 계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동태복수법

 

계약 법전(20,22-23,33)에는 예배와 축제 관련 규범과 일상생활에 관한 규정이 다양하게 언급됩니다. 이 규정들을 일일이 다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지만, 지면 관계상 신약성경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동태복수법과 약자 보호법에 관해서만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유명한 동태복수법 규정은 이러합니다.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21,23-25). 얼핏 보면 잔인한 원시의 법처럼 보입니다. 손을 다치게 한 이의 손을 해하거나 눈을 다치게 한 이의 눈을 해하는 것. 생각만 해도 끔찍한 복수 행위처럼 보입니다. 오늘날의 보상 제도, 곧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금전으로 보상하는 것이 더 문명화된 제도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계약 법전에도 다양한 벌금형 제도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곧 동태복수법은 잔인한 고대 사회의 법이 아니라, 벌금형 제도를 보완하는 제도였습니다(21,22 참조). 그렇다면 왜 굳이 동태복수법을 만들었을까요?

 

이 점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태복수법이 생겨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다툼이 대부분 피를 부르는 복수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폭력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기원전 18세기 바빌론 제국의 함무라비 임금은 개인의 복수를 형법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생겨난 것이 동태복수법입니다. 함무라비 임금은 특히 상류 계급이 피해자일 때 이 법을 적용했는데, 상류 계급이 조금만 해를 입어도 과도한 복수를 자행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곧, 손을 다쳤는데도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다거나 하는 짓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동태복수법은 약자를 보호하고 정당한 복수의 범위를 정하기 위한 법이었지, 잔인한 복수를 허용하는 법이 아니었습니다.

 

계약 법전은 이런 동태복수법을 받아들여, 복수의 범위를 제한합니다. 그런데 계약 법전의 경우는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과 다소 다릅니다. 상류 계급이든 하류 계급이든 똑같이 이 법을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신명기는 이 법을 거짓 증언자에게도 적용하도록 확장합니다. 곧, 거짓 증언한 “그가 자기 동족에게 하려고 작정하였던 것과 똑같이 그에게 해야 한다”(신명 19,19)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동태복수법은 정의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 안에서 잘못된 악을 제거하기 위한 규율로서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복수 자체를 하지 말라고 권하십니다(마태 5,38-42 참조). 그러면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이르십니다(마태 5,43-48 참조). 진정한 정의로움은 용서에 있음을 특별히 강조하신 것입니다.

 

 

약자 보호법

 

대표적인 약자 보호법은 22,20-26에 언급됩니다. 돈을 꾸어 주면 돌려받는 것이 정의이지만, 계약 법전은 “가난한 이에게 돈을 빌려 주었을 경우에는 채권자처럼 행세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물려서도 안 된다”(22,24)고 권합니다. 또한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다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합니다(22,25 참조).

 

이 율법은 돈을 꾸어 준 사람에게 불공평한 규정인 듯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계약 법전은 다음과 같이 약자를 보호해야 할 이유를 제시합니다. 본래 우리 모두가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고 약자였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분노하시면 우리 아내와 아들들도 과부나 고아가 되어 약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처럼,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곧, 그분은 약자의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올바로 대하지 않는 힘 있는 자들을 치시고,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 약한 이들에게 나눠 줄 수도 있는 자비하신 분입니다(22,26 참조).

 

굳이 이런 이유들을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제 동일한 규정을 적용할 때 항상 피해를 보는 편은 약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사회 교리는 약자들을 먼저 선택할 것을 권합니다.

 

 

계약 체결 과정

 

하느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오직 한 분인 당신을 섬기고, 이방신들과 계약을 맺지 말라고 경고하신 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과 시나이 산 위에서 계약을 맺으십니다(24,1-11 참조). 이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주님의 말씀과 법규를 일러 줍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24,7)라고 약속합니다.

 

이어서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한 뒤, 산기슭에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기념 기둥 열둘을 세워 본격적인 계약 체결 예식을 준비합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함께 모여 있는 자리에서 예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제물을 송두리째 태워 바치는 번제를 올립니다. 이 번제는 그들이 하느님께 완전히 봉헌된 민족임을 드러냅니다. 번제를 올린 뒤, 젊은이들은 소를 잡아 주님께 친교 제물로 바칩니다. 이때 그들은 주님께 속하는 기름기만 태워 바치고 나머지 고기를 주님 앞에서 나눠 먹는 친교 예식을 행하여, 하느님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도 친교를 도모합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소의 피 절반을 제단에 뿌려 하느님께서 계약을 수락하셨음을 드러내고, 백성에게 다시금 다짐을 받은 뒤 그들에게 남은 피를 뿌려 계약이 맺어졌음을 선언합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백성 편에서 전적으로 동의했다는 사실입니다. 백성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피를 뿌린 뒤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24,8). 고대의 계약 관습에 따르면, 수송아지를 잡아 피를 반씩 나누어 뿌리는 예식은 계약을 어길 경우 수송아지와 동일한 처벌을 받겠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므로, 생명으로 되갚겠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처럼 피로써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은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이 계약 역시 우리의 전적인 동의로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과연 목숨을 걸고 그 계약을 지키고 있는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공역)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0월호(통권 475호), 염철호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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