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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의 고별 담화 묵상3: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뜻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056 추천수0

요한의 고별 담화 묵상 (3)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뜻은

 

 

요한 13장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저녁에 행하신 신비스러운 행위를 보도하고 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하신,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요한 13,12)는 질문은 우리에게도 해당한다. ‘예수님께서 한 일을 우리도 깨닫는가?’

 

 

신앙인들은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어 그들이 제자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가르치시려 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돕는 존재이므로 제자들도 서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가르침이 당시에 어떤 상황과 연관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에 저녁 식사에 초대된 사람은 식사하러 가기 전에 몸을 씻고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그는 맨발에 샌들을 신고 갔기 때문에, 나귀를 탈 수 없을 때는 가는 도중에 발이 금방 더러워지고 말았다. 이렇게 더러워진 발로 초대받은 곳에 도착하면, 오늘날처럼 식탁에 앉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누워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깨끗하지 못한 발이 드러나 그만큼 품위가 손상되었다. 그래서 초대한 집의 종이 문 앞에서, 입장하는 손님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 하지만 제자들의 공동체에는 그런 봉사를 하는 이가 없었다. 그들 중 한 명이 그 일을 해야 했는데, 제자 중에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신앙인들이 어떤 태도로 서로 대해야 하는지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 당신이 나서서 발을 씻어 주는 일을 수행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예수님께서 직접 세족례를 하신 이유로 충분하지 않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설명이 예수님의 본래 의도가 아니라고 즉시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이런 실천적 삶의 지혜를 주시려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다른 이들을 섬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본래 의도하셨던 의미를 밝히기 위해 복음서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추측건대 예수님의 제자 무리에서, 누가 다른 이보다 스승에게 더 가까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한 번뿐 아니라 여러 번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 같다. 이는 ‘하느님 나라’라는 말에서 표현된, 다가오는 새로운 질서에서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상황을 마태오 복음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마태 20,20-21).

 

그리고 루카 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누가 더 높으냐? 식탁에 앉은 이냐, 아니면 시중들며 섬기는 이냐? 식탁에 앉은 이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22,24-27).

 

두 복음의 내용으로 볼 때, 요한 복음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그분의 행동은 제자들이 스스로를 높다고 여기지 않아야 하며, 어떤 존경도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 이들을 섬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이 겸손에 대한 가르침이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지만, 그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 스승이 보여 준 모범이 제자들에게 항상 남아 있게 하려고 그분은 모든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종이기를 자청하시어 당신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표현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앞선 설명보다 심화된 이 표현은 아직 예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의미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발 씻김은 신비 예식이다

 

그렇다면 이제 세 번째 가능성을 살펴보자. 우선 이 사건에 대해 오랫동안 숙고하고 본문을 반복하여 읽는다면, 불현듯 분명해지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비 예식’이다. 발 씻김 사건의 전체 과정은 앞서 본 것처럼 단순히 윤리적 가르침을 각인시킬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어떤 신비를 계시한다. ‘이 사건의 내용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이 신비의 답이 있다.

 

사도 바오로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는, 이 행위에 대한 주석처럼 예수님에 대한 인상을 표현하는 본문이 등장한다. 이 구절은 매우 의미심장하여 이 본문이 원래 그 사건을 향해 쓰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필리 2,5-9).

 

* 로마노 과르디니(1885-1968년) 신부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성장하고 활동한 신학자요 종교 철학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글은 그의 책 《Johanneische Botschaft》(Herder, 1966)의 일부를 김형수 신부가 옮긴 것이다.

 

[성서와 함께, 2013년 9월호(통권 450호), 로마노 과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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