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 하느님 나라 이야기 -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를 시작하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마르 4,2). ‘왜 비유인가?’ 예수님의 공생활을 상상하면, 수많은 기적과 치유 사화, 용서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마태 13,34)고 전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에는 이솝 우화처럼 동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교훈을 주려는 목적이 아닐뿐더러, 동기나 목적이 대부분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시지 않자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이 따로 여쭈었을 정도입니다(마태 13,10-17 참조). 예수님만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2사무 12장을 보면, 나탄 예언자가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잡아 자신을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한 부자의 비유를 들어 다윗을 꾸짖습니다(2사무 12,1-4 참조). 나탄의 비유는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2사무 12,7)라며 부도덕한 ‘행위’를 꼭 집어 꾸짖고 교훈을 제공합니다. 에이미 웰본(Amy Welborn)에 따르면, 예수님 시대와 그 후의 라삐들도 비유로 이야기한 흔적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비유의 고유한 특징은 성경을 해석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아주 구체적 상황에서 구체적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 응답하는 형태를 띤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100자 내외의 단어로 이뤄졌을 정도로 대단히 짧습니다. 도덕적 교훈이 목적이 아니라면, 비유로 말씀하고 싶은 목표 지점은 무엇일까요? 가장 간단히 말하면 ‘하느님 나라’를 알려 주시려는 것입니다. 비유를 통하지 않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느님 나라를 지각할 수 있도록, 볼 수 있는 세상의 익숙한 방식과 비교합니다. 이것은 윌리엄 스폰(William Spohn)이 저서 《Go and Do Likewise(가서 그렇게 하여라)》에서 설명하는 유비적 상상력과 비슷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이야기의 형태로 더 쉽게 퍼져 나갈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현대의 독자가 똑같이 복사할 수 없지만, 시공간을 넘어선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유비적 상상을 통해 알아채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같으나 다른 공간에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실천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리차드 굴라(Richard Gula)는 영성과 윤리가 교차하는 지점을 설명하면서, 하느님 체험의 여섯 가지 통로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 감성, 영혼, 마음, 심지어 몸을 매개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그중 하나가 ‘유비적 상상력(analogical imagination)’입니다. 사회적·문화적 상황은 다르지만, 상상력을 통해 예수님 시대의 가르침을 현장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성삼위 하느님을 닮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용하십니다.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익숙한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전해 주십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에서 나누게 될 여섯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까?(마르 4,1-20) (2) 자비로우신 하느님(마태 20,1-16; 루카 15,1-10) (3)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루카 11,5-10; 18,1-14) (4) 이들 중에 누가 구원받은 자입니까?(마태 21,28-32; 루카 10,25-37) (5) 하느님의 부르심(마태 25,14-30; 루카 14,15-24) (6) 주님을 향해 깨어 있으십시오(마태 25,1-13; 루카 12,35-48). 공교롭게도 요한 복음은 하나도 없습니다. 신약성경 곳곳에서 주제별로 비유를 뽑되 일상의 질문과 연결할 것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연재한 ‘일상에서 맺는 야고보서의 열매’를 읽어 보신 분은 익숙할 수 있습니다. 케빈 페로타(Kevin Perrotta)가 편집한 성경 6주간 시리즈는 세 가지 종류의 질문으로 구성됩니다. ‘시작 질문’, ‘주의 깊은 독서를 위한 질문’, ‘적용 질문’입니다. 시작 질문은 일상의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가르치지 않으셨듯이, 일상의 질문이 아니면 성경 나눔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다음 달부터 시작할 ‘비유’ 1주차 시작 질문은 대략 이렇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꽃은? 나무는? 작은 화초 중에 좋아하는 식물은 무엇입니까?” 한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참나무를 좋아하는데 숯불갈비가 떠오르네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답일지라도 놀랄 것이 없습니다. 비유 1주차 성경 본문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묵상하다 보면 일상의 이야기가 놀랍게도 그분의 이야기와 닮았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이야기는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드러낼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같이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려 주기 위한 ‘뒤틀림’이 숨어 있습니다. 케빈 페로타의 성경 6주간도 일상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뒤틀림’을 시도할 것입니다. 교재에는 성경 본문이 나온 후 간단한 질문이 뒤따릅니다. 성경 본문 자체를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 질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독서 안내’와 ‘적용 질문’이 뒤따릅니다. 적용 질문을 풀어 가다 보면 윤리적 실천 방법뿐 아니라 영성 훈련을 위한 한 주간의 이정표를 갖게 되고 성경 나눔은 완성됩니다. 일상에서 열매 맺는 비유를 시작하려니, 신학생 시절 읽은 책이 떠오릅니다. 대만 신학자 송천성 박사의 저서 《아시아 이야기 신학》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혀 모르던 동양의 옛이야기 속에도 삼위일체 교리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일상 이야기에 하느님 사랑의 흔적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만날 열한 꼭지의 예수님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습니다. 지난해에 함께 기도한 모라토리움 신학생들의 생활 나눔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여름 피정 때 만난 청년들의 사연도 포함됨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대화 구조와 관계성이 중요한 시대에,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함께 엮어 묵상해 나가는 일은 참 소중한 열매일 듯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그리스도교 신앙 함양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에 함께 작용하시는 성령께서 다른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통해 만남을 주선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최성욱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1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성윤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역서로 리처드 M.굴라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의 삶과 제자 됨의 영성》(2015)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월호(통권 466호), 최성욱 토마스 아퀴나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