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성경은 합리적이어야만 하는가?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토착화를 위해 받아들인 그리스-로마 문화는 영지주의나 마르치온주의 같은 이단을 낳는 부작용도 일으켰다. 그리스 철학이나 세속의 지식을 기준으로 성경을 재단(裁斷)하고, 제 입맛에 맞는 내용만 선택하려는 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단이 널리 퍼져 나가는 상황에서 초창기 교회를 지키기 위해 소위 ‘아프리카 학파’가 등장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 학자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55?-245?년)다. 순교자들의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교에 귀의한 테르툴리아누스 테르툴리아누스는 북아프리카의 대표적 항구 카르타고의 이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 후 총독 관저의 백인대장이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률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고향 북아프리카 지역에는 작열하는 태양만큼 신앙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지닌 이가 많았다. 그 지역의 신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본받아 순교의 영광을 얻으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테르툴리아누스도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에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의 모습을 보고 195년경 그리스도교에 귀의했다. 혹독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그리스도인의 영웅적 행동이 그를 감동시킨 것이다. 출세를 포기한 그는 평신도로서 사제나 주교보다 더 열정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했다. 불같은 열정으로 그리스도교를 수호하는 하느님의 전사(戰士)였다. 신앙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을 지닌 테르툴리아누스는 영지주의나 마르치온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지적 능력을 뽐내는 사람들을 경멸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은 부끄러워할 일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하느님의 아들이 죽으셨다는 사실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것이다. 묻히신 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확실한 것이다”(<그리스도의 육신론> 5,4). 그리스도교 신앙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믿는 것 테르툴리아누스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전달된 신의 계시를 온전히 믿고 그 길을 따를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지식을 아무리 많이 가졌다 해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신앙이다. 마르치온이나 영지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십자가의 수치가 그리스도인에게는 지혜와 희망과 구원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너는 신앙에 필수적인 이 수치를 없애려 드느냐? 네가 하느님께 부당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다 나에게는 유익한 것이다”(<그리스도의 육신론> 5,3). 이렇듯 테르툴리아누스는 순수한 신앙의 가치를 보존하고 싶어 했다. 지식을 자랑하는 신앙인은 오만함으로 인해 위험과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Credo, quia absurdum est)”라는 명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테르툴리아누스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신앙과 그리스도의 지혜만으로 충분하다. 그에게 철학이란 진리를 가르칠 능력이 없는 인간적 지혜만 대변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 철학을 이용해서 그리스도교를 설명하려는 일체의 계획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아테네와 예루살렘 사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교도와 그리스도교도 사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 ‘스토아적’, ‘플라톤적’ 또는 ‘변증법적’인 그리스도교의 모든 계획을 파괴시켜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는 어떤 미묘한 이론도 원하지 않으며, 복음을 위하여 우리는 어떤 날카로운 탐구도 원하지 않는다”(<이단자들에 대한 항고> 7). 여기서 아테네란 이교도, 그중에서도 세속의 철학으로 잘난 척하는 사람을 말한다. 예루살렘이란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대표하는 그리스도교인을 지칭한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아테네와 예루살렘 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물었다. 호교론자나 철학적 이단처럼 수사학·법학·철학적 부분을 끌어오려는 시도를 스토아적이자 플라톤적 계획,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의미하는 변증법적 계획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러한 모든 계획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철저히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왜 철학의 수용을 이토록 강하게 반대했을까? 이단의 위험에 빠질 것을 두려워한 것도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입교 체험처럼 순교 등을 통한 신앙의 증거가 철학적 논변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순교자들의 모습에 감동받고 회심했기에 신앙의 힘을 확신했다. 더욱이 이러한 믿음의 증거가 확실한 선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늘어난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교의 씨앗이기 때문이다”(<호교서> 50,13). 이 말은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다면 그것을 보고 감화받은 사람들이 신앙을 이어 갈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극단의 박해 상황에서는 정교한 논변보다 신앙의 순수성이 더욱 우선시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의 내용을 순수한 신앙으로 받아들여 실천해야 테르툴리아누스는 성경 읽기가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거나 지적 허영심을 증가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이 읽고 받아들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방인의 축제에 참여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이방인의 축제는 우상 숭배의 온상이고, 그리스도교 신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호교서> 42 참조). 그에게는 ‘그리스도인과 다른 사람을 구별시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리스도교를 관통하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이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성찬례와 함께 행해진 저녁 애찬(아가페)도 이교인 조합의 떠들썩하고 무절제한 모임과 달리 소박하고 검소하게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식사는 그 명칭으로 이미 그 본질과 규정을 제시합니다. 그 식사는 그리스어로 사랑(아가페)을 뜻하는 명칭으로 불립니다”(<호교서> 39,17). 테르툴리아누스는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 14,13)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라고 요구했다. 굶주린 이들도 공동으로 식사하고 마시고 노래하고 기도하며 가르침을 받을 때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나아가 이러한 사랑의 실천이 그저 공동체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 행위로 연결되어야 했다. 동정심을 지닌 그리스도인이 신전에 돈을 내는 이교인보다 더 많은 돈을 거리의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사랑 실천을 부각했다(<호교서> 42 참조). 특히 재앙이 일어나고 역병이 돌 때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기꺼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성경의 내용을 인간의 이성에 부합하는 합리성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순수한 신앙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점을 일깨웠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배척하려는 신자들에게 그의 열정은 빛이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로마 제국의 다신교 문화에 대한 비방이나 박해에 대한 응답으로 적절했던 순수한 신앙에 대한 강조가 테르툴리아누스와 교회에 깊은 어둠을 드리우게 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3월호(통권 468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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