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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문자적 해석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영적 해석 - 오리게네스의 원리론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345 추천수0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문자적 해석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영적 해석


오리게네스의 <원리론>

 

 

켈수스나 포르피리오스 같은 이교도 사상가들은 성경에 나타난 모순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를 신랄하게 공격하였다. 이러한 비판을 막는 주된 방법은 ‘영적 해석’을 통해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리아학파의 대표자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년)는 호메로스의 작품 등을 해석하며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널리 사용하던 영적 해석을 그리스도교에 적극 활용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나 신앙의 순수성과 열정을 지니고 자랐다. 201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로 아버지 레오니데스가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사춘기의 오리게네스는 아버지를 격려하는 편지를 보냈다. “저는 배교를 하고 살아남아서 우리한테 빵과 무엇을 마련하시는 아버지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럽게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더 존경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순교한 후 성인(成人)이 된 그가 아버지의 뒤를 따라 순교하려 하자, 이를 반대한 어머니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옷을 숨기고 나서야 순교를 열망하는 그의 혈기가 가까스로 꺾였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살았으며 그로 인한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마태 19,12)는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스스로 거세去勢를 감행했다. 훗날 자신의 행동을 ‘주석의 오류’ 중에 대표적인 것이라고 뉘우치면서 성경의 ‘영적 해석’이 반드시 필요함을 절감했다.

 

 

영적 해석의 필요성

 

신구약 성경의 몇몇 저서나 특정 부분만 집중하여 해석한 이전의 주석가들과 달리 오리게네스는 신적 진리를 인식하고자 성경의 모든 책을 주해했다. 이때 동시대의 문법학자들에게 배운 본문 주해 방법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문자와 정신, 상징과 진리 간의 긴장감을 해결하기 위한 철학적 방법이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거기에서 필론(기원전 25?-기원후 50년)은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성경을 알레고리로 해석하였다. 스승 클레멘스를 통해 필론의 영적 해석 방법을 잘 알고 있던 오리게네스는 <원리론(De Principiis)>에서 성경 해석을 위한 다양한 지침을 제공했다.

 

그는 그리스어로 쓰인 성경 해석에 관한 문헌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인정받는 제4권에서 문자적 해석에만 머무를 경우 두 가지 근본 오류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유다인은 예언의 문자를 배타적으로 고집해 오류에 빠진다. 마르키온과 영지주의 이단자들은 신을 인간에 비유한 구약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나아가 한 분이신 하느님을 악한 창조자와 완전한 하느님으로 구분하는 오류에 빠진다(<원리론> 4.2.6 참조).

 

원시 그리스도교는 구약에서 유용하게 보이는 예언서 · 시편 · 도덕적 품행에 관한 규범과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여겨지는 의례나 예식 규범을 구별해 오류에 대항했다. 그러나 다른 이단들도 각자가 정한 기준에 따라 성경을 선택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는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이나 구약의 보편 타당성을 주장할 수 없었다. 따라서 불변의 가치를 지닌 규범을 선별하는 규칙을 발전시켜야 했으며, 시대 상황에 따라 쓰인 구약을 영적 의미로 해석하는 작업이 새롭게 요구되었다.

 

 

성경 말씀에 담긴 다양한 의미

 

오리게네스에 의하면 성경 말씀은 문자적·도덕적·영적이라는 삼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인간이 육체와 영혼과 영(靈)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그리스 철학에 근거한다. 이 구분을 토대로 사람들은 각자의 수준에 맞게 교화되어야 한다.

 

“더 단순한 사람은 말하자면 성경의 육으로 교화될 수 있다. 반면 어느 정도 진보를 이룬 사람은 말하자면 성경의 영혼으로 교화될 수 있다. … 완전한 사람은 ‘앞으로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를 지니고 있는 영적 율법’으로 교화될 수 있다”(<원리론> 4.2.4).

 

그렇지만 이 삼중적 의미가 성경에서 항상 규범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많은 성경 구절에 문자적 의미가 없고 영적 의미만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원리론> 4.2.5 참조). 구약에서 하느님을 의인화하는 구절, 독수리를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규정, 독수리 머리와 날개에 사자 몸을 한 동물을 먹으라는 규정이나 ‘오른 눈이 죄짓게 하거든 빼어 버려라’는 복음서의 말씀 등이 그러하다.

 

또 삼중적 의미가 모든 성경 본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기에 문자적 의미와 영적 의미로 나누는 이분법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오히려 영적 해석 방법에 도덕성에 관한 단순한 훈계, 유형에 따른 인간학적 해석, 가장 흔히 사용되는 전통적 예형론 등 여러 유형을 구분할 필요가 생기기도 한다. 잘 알려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영적으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담, 남자,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지 않음으로써 타락한 남자의 운명을 본다. 예루살렘은 천국 또는 천상 예루살렘이다. 예리코는 이 세상이다. 강도들은 적의를 가진 마귀들과 그리스도 이전에 이 세상에 들어온 거짓 사상들을 상징한다. … 사제는 율법을, 레위는 예언을 상징하며, 사마리아인은 마리아의 태중에서 육체를 취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여관은 교회를 상징하며, 여관 주인은 사도들과 사제들의 후계자, 즉 주교들과 교회의 교사들을 상징한다. … 다시 오겠다는 사마리아인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상징한다”(<루카 복음 강해> 34,2-3).

 

오리게네스는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영적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문자적 의미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반드시 지고至高한 영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적 해석을 통해 드러난 구약과 신약의 긴밀한 연관성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가 성경 전체에 나타나므로 구약의 사람과 사건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그의 성사와 교회를 예언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나팔 소리에 요새 담벼락이 무너진 여호수아의 예리코 점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견한 사제들이 복음을 통해 우상 숭배를 없앤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여호수아기 강해> 7 참조). 그는 바오로가 율법을 영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을 받아들여 더 완성된 방식으로 교회에 정착시켰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사도의 약속에 따라 모든 것에서, 신비 안에 감추어져 있는 지혜 - ‘하느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 의로운 이들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며 이 세상의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깨닫지 못한 지혜’(1코린 2,7-8 참조) - 를 찾아야 한다”(<원리론> 4.2.6).

 

오리게네스의 주장에 따르면, 구약은 그림자이며 완전한 진리의 이미지는 신약에서 나타난다. 그가 제시한 영적 해석을 통해 구약을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지만, 이것이 곧 자의적恣意的 해석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오히려 그는 문자적 의미를 무시하지 않고, 더 높은 차원의 이해로 갈 수 있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는 영적 의미를 통해 깊은 이해로 완성되어야 한다.

 

오리게네스가 자의적 해석에 빠질 위험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또 영적 해석의 놀라운 창의성을 살려 이후 모든 성경 해석의 귀감을 어떻게 제시했는지는 다음 호에서 살펴보겠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6월호(통권 471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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