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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선한 신이 어떻게 악을 창조할 수 있는가? - 마니교의 도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117 추천수0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선한 신이 어떻게 악을 창조할 수 있는가?


마니교의 도전

 

 

마니교의 등장

 

요즘에도 다양한 신흥 종교 또는 사이비 종교가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종교 집단으로 유인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성경 내용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자신들의 교리를 통해 이를 해명함으로써 그들 종교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향 중에서 소위 ‘종교혼합주의(syncretism)’ 형태를 지닌 집단은 종종 매우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 그만큼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종교혼합주의는 기존의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다른 종교의 장점 등으로 대체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종교의 교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보았을 때에는 여타의 종교보다 더욱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나타난 종교혼합주의적 이단 중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던 것은 바로 ‘마니교’라고 할 수 있다.

 

마니(Mani, 215?-274?년)는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활동했던 인물로, 기존의 종교들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이론을 모두 차용했다. 예를 들어 불교, 조로아스터교, 그리스도교 등에서 발견되는 주요 요인들을 혼합하여 극단적 이원론을 발전시켰다. 마니교가 비판한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는 바로 전지전능하고 전선(全善)한 창조주가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마니교는 이 세상에서 날마다 체험하는 악과 고통을 바탕으로 ‘전선한 절대자가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도대체 악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는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만일 신이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없앨 수 있으면서도 이를 방치하고 있다면 선한 신이라고 할 수 없고, 인간이 겪는 고통과 악 때문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이를 없앨 수 없다면 전능한 신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신과 악신이라는 이원론적 사고

 

이 난제(아포리아)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니교는 영지주의에서 선의 원리인 ‘정신’과 악의 원리인 ‘물질’ 사이의 이원론을 더욱 심화시켰다. 마니교에 따르면,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악은 모든 선의 원인인 신에게서 유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니교의 스승들은, 세상의 선은 선한 신(Ohrmuzd)에서 유래하며, 악은 악한 신(Ahriman)에서 유래한다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이 세상에서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의 끊임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며, 정통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선한 신이 악을 제압하는 능력은 항상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악의 원천 역시 최고 실재자, 즉 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한 신이 승리하면 세상에는 정의와 평화가, 악한 신이 더 큰 힘을 얻으면 세상에는 불의와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니는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이 오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악신이 선한 인간들을 괴롭힐 때면 선신이 꼭 사자(使者)를 파견한다는 것이다. 선신의 사자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이는 보리수 밑에서 득도하고 세상을 구원하고자 한 부처, 싯다르타이다. 두 번째로 유명한 사자는 바로 그리스도교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예수라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이 악신의 세력을 잠시 몰아내긴 했지만, 다시 악신은 그 세력을 뻗쳐 선신의 영역을 침범하여 맹위를 떨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예수가 죽은 지 200년 만에 가장 강력한 선신의 사자, 마니 자신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마니는 이렇게 여러 종교의 지도자와 이론을 다 불러들여 훨씬 더 체계적인 신학 이론을 만들어 냈다. 더욱이 마니는 전에 다룬 바 있는 마르치온의 이론도 들여왔다. 마르치온의 주장과 같이 복수와 공포의 신에 대한 묘사로 가득한 구약은 가치가 없다 하여 구약성경 전체를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마니는 온 우주의 창조 질서와 그것을 창조한 창조주가 선하다고 보는 구약성경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이나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신약 중에서도 구약의 권위나 영감을 인정하는 구절, 곧 우주의 질서와 선하신 창조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구절은 모두 삭제해 버렸다. 이 부분들은 원작이 아니라고 여겼고, 의도적 편집 작업을 통해 모두 삭제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정화한’ 신약성경만을 건전한 책으로 인정했다. 그곳에 마니는 자신의 ‘행전(行傳)’, 즉 자신이 활동한 내용을 첨가했다. 구약의 인용이 삭제되어 사랑과 자비의 신에 관한 내용만 나오는 신약과 마니 자신의 활동 내역이 담긴 행전, 이 두 가지가 구원을 가져다 주는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마니 자신을 신격화하고 이에 도움이 되는 모든 근거를 종합해서 새로운 체계로 만든 것이 마니교인 셈이다.

 

 

종교혼합적인 신흥 종교의 문제점

 

마니교 교리의 장점이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이끄는 하느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 의지의 충돌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악은 죄가 아니라 운명이며, 윤리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육체 안에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마니교의 구원은 계시자 마니나 예수를 통해 가르침을 받은 인간이 빛의 섬광을 모아 자신을 억압하는 물질 세계에서 해방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마니교에서는 엄격한 금욕과 성적 절제는 물론 매우 복잡한 단식 규정을 요구했다. 예를 들어 고기와 피같이 거무스레한 음식은 피하고 그 대신에 빛을 많이 받은 멜론, 호리병박 열매, 과일과 같은 신선한 음식을 먹어야 했다.

 

마니교에서 벌어진 ‘혼합주의적’ 행태는, 현대의 여러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다. 더욱이 선신과 악신의 싸움이라는 이원론적 사고의 틀은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만화 영화에서 항상 보아 왔고,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무수한 할리우드의 영화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날 정도로 친숙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일반적으로 종교혼합적인 신흥 종교의 문제점은 각 종교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핵심 교리나 이에 바탕을 둔 윤리 규정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니는 성경의 몇몇 구절이나 주제를 인용하면서 예수가 구속자임을 인정하기는 했다. 다만 예수를 지상에서 살다가 십자가형을 당한 역사적 인물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곤궁(困窮)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보았다. 신과 유사한 신성을 지닌 구속자는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죽임을 당할 수 없으므로 십자가형은 현실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조건인 고난을 상징할 뿐이라는 것이다. 예수를 이렇게 이해할 경우 신약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전체가 무력화된다. 따라서 마니교는 그리스도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새로운 종교로 등장한다.

 

더욱이 그들은 기존 종교의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신화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교리나 창시자에 대해서는, 이성에 근거한 비판을 철저히 차단한 채 유사 과학적 설명을 통해 정당화한다. 예를 들어 해와 달이라는 두 가지 크고 선한 빛을 중시한 마니교의 신화는, 일식이란 해와 달이 우주에서 벌이는 비참한 싸움의 광경을 가리기 위해 사용한 특수한 베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추상적 정당화에도 불구하고 마니교나 유사한 사고 체계에 바탕을 둔 후대의 이단분파(카타리파, 보고밀파)들은 기존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안으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교혼합적 입장의 위험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놀랍게도 무려 9년 동안이나 마니교도로 활동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나왔다. 그가 왜 마니교에 빠졌으며, 어떻게 이를 극복했는지는 다음 호에서 다루어 보겠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9월호(통권 474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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