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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마니교에 빠졌던 아우구스티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791 추천수0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마니교에 빠졌던 아우구스티노

 

 

새 영세자들이나 유아세례를 받은 후 오랫동안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다 새로운 마음으로 성경을 접한 이들은 큰 기대감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다. 그런데 실제로 성경을 읽으면서 당혹감에 빠지거나 오히려 신앙의 위기를 겪는 이들이 매우 많다. 특히 지적 능력이 뛰어나거나 자기 생각이 뚜렷한 사람들이 오히려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곤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 이러한 의심과 회의를 묻어둔 채 신앙생활을 이어 가지만, 때로는 성경 이해에 대한 어려움이 그리스도교를 떠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멘토 역할을 해 줄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그리스도교 최고의 스승’으로 존경받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이다.

 

아우구스티노의 부모는 재능 있는 아들이 고향 타가스테의 강압적인 교육에 실망하여 방황하자, 가정 형편이 어려운데도 그를 카르타고로 유학 보냈다. 그러나 사춘기에 들어선 아우구스티노는 그곳에서도 방황하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아들 아데오다투스를 낳은 뒤에야 비로소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 공부에 매진했다. 그 무렵 아우구스티노는 키케로의 저서 《호르텐시우스》를 통해 지혜 탐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행복을 가져다줄 지혜를 찾기 위해 아우구스티노는 어머니 모니카가 애독하던 성경을 펼쳐 들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성경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선 그가 읽었던 라틴어 성경(vetus latina)은 제대로 교육도 받지 않은 2세기 무렵의 선교사들이 번역한 것이라 문체가 저급하고 조야했으므로, 위대한 정치인 키케로(기원전 106-43년)의 웅변적인 어투나 로마 최고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문장에 익숙해 있던 아우구스티노는 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더욱이 창세기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주하는 온갖 모순된 내용들이 눈에 거슬렸다. 해와 달과 별이 나흘째 창조되었다면, 그 이전에는 어떻게 날을 셀 수 있었을까?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노아의 방주 등의 이야기는 그에게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황당한 이야기로 들렸다. 더욱이 모니카가 좋아하던 성조 아브라함마저 이집트의 파라오한테 갔을 때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아내 사라이를 누이라고 거짓말한다(창세 12,10-20 참조). 아우구스티노가 보기에 구약성경은 이와 유사한 성조들의 비도덕적인 이야기, 롯과 두 딸의 근친상간, 야곱이 거짓말로 에사우에게서 장자권을 빼앗는 사건 등 죄로 얼룩져 있었다.

 

키케로가 가르쳐 준 경건한 지혜를 찾던 아우구스티노는 구약성경에 실망하고 신약성경으로 넘어갔지만 거기에도 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약성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마태 1,1-17 참조)는 루카 복음서에 한 번 더 나오는데(루카 3,23-38 참조), 이를 비교해 본 아우구스티노는 두 족보가 서로 맞지 않음을 발견했다.

 

예수님의 신성함을 이야기하기 위한 기록인 족보조차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 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아우구스티노는 성경을 던져 버리고 말았다.

 

아우구스티노가 처음 지녔던 철학적 욕구들을 그나마 만족시킨 것은, 지난 9월호에서 다룬 ‘마니교’의 이론이었다. 악의 기원과 같은 문제에 대한 마니교의 ‘합리적’ 답변은 그를 사로잡았다. 악으로 기울어지는 자기 내면의 경향에 대해 고민하던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무마할 수 있는 그럴듯한 핑계를 발견하게 된다.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인간의 마음에 들어와 자기 쪽으로 끌어들인다면, 인간은 이를 거스를 힘이 없기에 자신의 행위를 책임질 필요가 없게 된다는 이론이 그것이다.

 

아우구스티노는 마니교를 선택함으로써 어머니의 영향으로 항상 마음을 짓누르던 종교적 죄책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마니교 안에서 극단적인 금욕 생활을 해야 하는 ‘선택된 이들(elécti)’이 되기보다는 훨씬 더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된 ‘청종자(auditóres)’의 역할에 만족했다. 그는 21세가 되던 374년에 고향 타가스테로 돌아와 1년 넘게 문법과 라틴 문학을 가르치면서 마니교의 교사 역할을 맡게 된다.

 

아우구스티노는 카르타고와 로마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9년 간 마니교도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 그리스도교 성경에 대해 비판했던 것과 같이, 자기 눈에 비친 마니교 체계의 모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지고의 선한 빛이 어둠과의 싸움에서 약하고 무능하다는 마니의 주장은 옳은가? 힘없고 비천한 신성을 우리는 어떻게 예배할 수 있는가? 마니교도는 그리스도교를 신화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자신들의 교리를 위해서는 - 지난 호에서 밝힌 - 신화적 요소를 도입했다. 이미 천문학적 기초 지식을 지니고 있던 아우구스티노는 이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마니교의 교리 전반에 대해 점점 더 큰 의문을 품게 되었다.

 

 

마니교를 떠나다

 

마니교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교리에 대한 아우구스티노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 채 그들의 지도자인 파우스투스 주교에게서 대답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만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로 아우구스티노가 29살 때 카르타고를 방문한 파우스투스를 만날 수 있었지만, 아우구스티노는 부풀었던 기대만큼이나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언변은 매우 뛰어났지만 학문적 지식이 부족한 파우스투스는 아우구스티노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해 주지 못했다. 나아가 극도의 금욕적인 태도로 온전히 흠 없이 살고 있다고 자부하던 ‘선택된 이들’조차, 그가 기대했던 것처럼 독신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결국 아우구스티노는 실망이 최고조에 달해 마니교를 떠나게 된다.

 

아우구스티노는 마니교에 대해 실망했지만, 곧바로 그리스도교로 돌아올 수 없었다. 자신이 성경을 읽었을 때 느꼈던 실망과 회의를 전혀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그의 전기 작가들은 이 청년기를 단순히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불필요한 방황기로 취급한다. 나중에 그는 그 당시 자신의 통찰력으로는 성경의 내적 의미까지 꿰뚫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고백록》 Ⅲ, 5,9). 그러나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는 그의 태도는 젊은 아우구스티노가, 단순히 어머니가 원하는 길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교를 믿기 위해 고심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열심한 신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동료에게 종종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어라’라고 강요한다. 이런 경우는 ‘성경만으로’와 ‘신앙만으로’를 외치는 개신교뿐 아니라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그러나 무조건적 신앙만을 강요하는 태도로는 ‘가라지’처럼 교묘한 형태로 위장해 있는 사이비 종교의 위협에서 신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 일반 신자들은 자신이 가진 의문을 손쉽게 해결해 줄 것 같은 마니교식 교리에 쉽게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성경이나 신앙의 권위에만 의존하는 태도에서는 마찬가지의 권위를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의 주장과 정통 신앙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성경이 실제로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인간의 구원이 달려 있다면,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를 위해 필히 수반되는 정당한 질문은 기피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성찰할 대상이다.

 

안타깝게도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이 살던 북아프리카에서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줄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도, 마니교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일체의 진리를 의심하는 깊은 ‘회의론’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가 어떻게 성경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는지 다음 호에서 다루어 보겠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0월호(통권 475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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