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두 짐승 “그리고 용은 바닷가 모래 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12,18). 묵시 12장의 마지막 구절은 하늘 전투에서 패한 용이 지상에 있는 여인의 후손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12,17)과 싸우기 위해 바닷가에 자리 잡았다고 말합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바다는 악의 세력이 머무는 곳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이어지는 환시 역시 바다를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묵시 13장에 나오는 두 짐승에 대한 환시는 다니 7,2-7에 언급된 네 짐승의 환시를 떠올려 줍니다. 다니엘서의 네 짐승은 네 제국(신바빌로니아, 메디아, 페르시아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 묵시록의 두 짐승 역시 당시의 정치 세력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첫째 짐승의 정체 첫째 짐승은 뿔이 열이고 머리가 일곱입니다. 그의 외형은 사자의 입을 가진 표범 같다고 묘사됩니다. 이러한 묘사는 그 짐승이 용과 관련되어 있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용의 권력을 대신하는 악의 세력임을 드러냅니다. 첫째 짐승의 일곱 머리는 로마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로마가 현재에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일곱 개의 언덕(아벤티노Aventino, 캄피톨리오Campidoglio, 첼리오Celio, 에스퀼리노Esquilino, 팔라티노Palatino, 퀴리날레Quirinale, 비미날레Viminale)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뿔 열 개는 로마를 통치하던 황제 열 명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짐승의 “머리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은 것 같았지만 그 치명적인 상처가 나았습니다”(13,3)라는 구절은 로마 황제 중 한 사람에 대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황제에 대한 상징만 언급될 뿐 그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표현은 네로 황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요한 묵시록이 쓰일 당시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던 전설 중 하나는 “네로의 귀환(Nero Redivivus)”입니다. 네로는 68년 6월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전설은 황제권을 지키기가 어려워진 네로가 자살한 것처럼 꾸미고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파르티아(페르시아)로 도피했다가 군대를 이끌고 다시 로마로 돌아올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죽은 것 같아 보였던 머리’(13,3)라는 표현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암시하는데, 이 상징적 표현과 “살해된 어린양”(13,8)에 대한 묘사는 상반됩니다. 요한 묵시록 저자는 이처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표현을 사용해 두 가지 상징을 서로 비교하여 반대되는 의미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이 첫째 짐승은 용, 곧 사탄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지상에서 하느님을 반대하는 세력의 우두머리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이 용뿐만 아니라 이 짐승에게도 경배했다는 표현에서 이것들이 우상숭배의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누가 이 짐승과 같으랴? 누가 이 짐승과 싸울 수 있으랴?”(13,4) 하고 말합니다. 이 표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는 이미 묵시 12장에서 보았던 미카엘 대천사입니다. 그의 이름이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는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주님, 신들 가운데 누가 당신과 같겠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거룩함으로 영광을 드러내고 위엄으로 두렵게 하며 기적을 일으키겠습니까?”(탈출 15,11)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을 수행하는 이 첫째 짐승은 지상에서 활동하는 악의 세력의 우두머리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기간은 단지 마흔두 달 곧 3년 반을 의미하며, 완전을 나타내는 7의 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완전하지 못한 다시 말해 곧 지나갈 시간을 의미합니다. 둘째 짐승의 정체 그다음으로 둘째 짐승이 등장합니다. 이 짐승은 땅에서 올라오는데, 이후 거짓 예언자로 드러납니다(16,13; 19,20; 20,10). 둘째 짐승이 “어린양처럼 뿔이 둘”이었고 “용처럼 말”(13,11)을 했다는 묘사에서 어린양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적, 곧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는 거짓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짐승의 가장 큰 활동은 첫째 짐승의 권한을 받아 사람들이 경배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재위 중인 황제가 선임 황제를 숭배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나타내고, 이를 위해 소아시아 지방에 압력을 가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짐승이 표징을 통해 사람들을 속였다는 요한 묵시록의 내용은 신약성경에서 ‘종말에 나타날 거짓 예언자’를 언급한 표현과 비슷합니다(마르 13,21-23; 2테살 2,2 참조). 상징적인 의미와 내용에서도 둘째 짐승은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 예언자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을 경배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부여합니다. 이 표는 이미 앞에서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이 이마에 받은 인장(7장)과 반대되는 표현입니다. 이렇듯 요한 묵시록 저자가 두 짐승의 모습과 활동을 지속적으로 묘사할 때 사용하는 표현은 하느님과 어린양에 대해 사용한 표현과 비슷합니다. 이를 통해 두 짐승이 용의 대리자로 어린양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활동하지만,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느님께 반대하는 그리스도의 적대자임을 강조합니다. 둘째 짐승이 부여하는 표는 육백육십육으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네로 황제를 지칭하는 숫자로 이해합니다. 히브리어로 ‘네로 황제’를 쓰고 그 철자가 나타내는 수를 더하면 666이 됩니다. 고대 사회에서 알파벳의 각 철자는 고유한 수를 나타내는데 이것을 통해 네로 황제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는 완전함을 나타내는 7이라는 숫자와 연관시켜 단순하게 이해하기도 합니다. 7에 하나 모자라는 6은 보통 불완전함을 의미하고 이것이 세 번 중복된 숫자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숫자가 상징적으로 네로 황제를 지시하건, 아니면 악의 세력의 불완전함을 강조하는 의미이건,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적대자를 나타내는 숫자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월호(통권 478호), 허규 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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