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일곱 대접 “나는 또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15,1). 여기 나오는 “마지막 일곱 재앙”은 세상에 대한, 하느님을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대접(16장)에 의한 환시 전체를 요약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 일곱 재앙의 예고 일곱 대접의 환시는 가장 먼저 결과를 소개합니다. 이미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한 이들을 소개함으로써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하느님의 분노와 심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미리 알려 줍니다. 이와 함께 승리의 노래, 곧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15,3-4)가 소개됩니다. 이 노래는 두 가지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우선 ‘어린양의 노래’는 어린양인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되는 승리를 암시하며 구원 역사를 완성하시는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노래는 탈출 15,1-18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를 떠올려 줍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 내신 것을 찬양하는 모세의 노래는, 어린양을 통한 구원이라는 점에서 요한 묵시록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 곧 승리의 노래는 마지막 재앙을 통해 궁극적으로 드러나게 될 하느님의 심판과 그분의 정의로운 업적을 미리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승리의 선취(先取)’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구체적인 재앙을 소개하기 전에 이미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것이 요한 묵시록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승리의 노래 이후에는 일곱 대접의 재앙을 실행할 천사들이 소개되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 담긴 금 대접”이 주어집니다(15,6-7 참조). 하느님으로부터 전해지는 일곱 대접은 하느님의 권한이 위임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성전이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에서 나오는 연기로 가득 찼다(15,8 참조)는 표현은 하느님의 분노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재앙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하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15,8 참조)는 것 역시 하느님의 계획은 반드시 완성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느님의 진노가 담긴 일곱 대접의 재앙들 이전의 재앙과 비교할 때 일곱 대접의 재앙이 강조하는 점은 더 이상 공간적으로 제한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땅의 1/4(일곱 봉인)이나 1/3(일곱 나팔)과 같은 표현이 없다는 점에서 마지막 일곱 재앙은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재앙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재앙이 지속되면서 재앙의 강도는 더욱 강해지고 확장됩니다. 첫째 재앙(16,2)은 종기가 생기는 것으로 이집트에 내린 여섯째 재앙(탈출 9,8-12)을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짐승의 표를 지닌 사람들과 그 상에 경배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이 재앙들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재앙의 대상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반대하고 지금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이들입니다. 둘째 재앙(16,3)은 바다에, 그리고 셋째 재앙(16,4)은 강과 샘에 내려집니다. 물이 피처럼 되었다는 점에서 이집트에 내린 첫째 재앙(탈출 7,17-21)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셋째 재앙 이후(16,5-7)에는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찬양이 자리합니다. 이 찬양에서 강조되는 것은 ‘의로우신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찬양 중에 하느님의 심판을 초래한 적대자들의 악행도 표현됩니다. “저들이 성도들과 예언자들의 피”를 쏟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저들’은 앞에 언급된 “짐승의 표를 지닌 사람들과 그 상에 경배한 사람들”(15,2)입니다. 제단 역시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을 찬양합니다. 이 제단은 살해당한 이들이 악인들의 심판을 촉구하는 내용(6,9-11)과 연관됩니다. 그들은 아직 심판의 때가 되지 않았다는 답을 받았지만, 이제 하느님의 심판이 의로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해의 뜨거운 열로 사람들을 불태우는 넷째 재앙(16,8-9)은 선택된 이들에게 했던 약속(7,16)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들에게 어떠한 열기도 내리쬐지 않으리라는 약속은 악인들에게 열기를 내림으로써 실현됩니다. 다섯째 재앙(16,10-11)은 짐승의 왕좌, 곧 황제의 자리에 내린 재앙입니다. 그의 나라에는 어둠이 내리고 그들이 겪는 괴로움이 커서 혀를 깨물 정도라고 재앙의 고통을 묘사합니다. 여섯째 재앙(16,12-16)은 유프라테스 강에 내렸는데, 이 강은 로마와 파르티아(페르시아)의 경계입니다. 이집트 탈출 때처럼 강물이 말라 동쪽의 임금을 위한 길이 마련되었다는 것은 파르티아 군대가 로마로 진격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여기에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용, 짐승, 거짓 예언자가 다시 등장합니다. 이들은 재앙 마지막에 하느님의 심판이 다가왔음을 알고 ‘하느님의 중대한 날’(16,14; 요엘 2,11 참조)을 대비해 세상의 임금들, 곧 하느님을 반대하는 이들을 모아 전투를 준비합니다. 이들은 모든 임금을 하르마게돈에 모아들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하르마게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많은 사람이 에제 38-39장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마곡의 전투가 벌어지고 이스라엘이 승리한 ‘이스라엘의 산악지방’으로 이해합니다. 일곱째 재앙(16,17-21)은 큰 도성 곧 로마가 세 조각 나고, 우박으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고 표현합니다. 30-40kg에 해당하는 ‘한 탈렌트’의 우박은 물론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만큼 하느님의 재앙이 무섭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넷째 재앙부터 등장하는 ‘회개하지 않았다’는 언급은 이집트에 내린 재앙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된 파라오의 완고함과 닮았습니다. 하느님의 무서운 재앙에도 악의 세력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하느님을 모독할 뿐입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3월호(통권 480호), 허규 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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