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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17: 바빌론의 패망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002 추천수0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바빌론의 패망

 

 

대탕녀 바빌론의 심판 예고에 이어 나오는 내용은 바빌론의 패망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바빌론의 패망 과정은 전하지 않은 채 패망에 대한 반응만을 말해 줍니다. 천사가 외칩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18,2) 여기서 이미 심판 예고에 언급되었던 내용이 반복됩니다. 

 

“역겨운 것들의 어미”(17,5)로 소개되었던 바빌론은 ‘마귀들의 거처, 더러운 영들과 새들, 짐승들의 소굴’이라는 비유로 묘사됩니다(18,2). 그리고 이것은 불륜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불륜은 신약성경에서 성적인 죄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죄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뒤이어 하느님의 심판이 내리기 전에 몸을 피하라는 권고가 나옵니다. “내 백성아, 그 여자에게서 나와라. 그리하여 그 여자의 죄악에 동참하지 말고 그 여자가 당하는 재앙을 입지 마라”(18,4). 이 말씀은 바빌론으로 표상되는 로마에 내리는 심판과 벌이 도시 전체에 미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또한 여기서 바빌론 곧 로마가 지은 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진노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도시 전체에 내려질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 도시에 내려지는 하느님의 진노는 소돔과 고모라를 떠올려 줍니다(창세 19,12-29 참조). 요한 묵시록의 이 본문과 좀 더 직접적으로 연관된 구절은 예레미야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 백성아, 바빌론에서 나와라. 저마다 주님의 타오르는 분노에서 제 목숨을 구하여라”(예레 51,45).

 

천사의 선포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그 여자가 남에게 한 것처럼 되갚아” 주라는 말씀입니다(18,6).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실 때, 악한 행실을 그대로 되갚아 준다는 것은 구약성경뿐 아니라 신약성경에도 나오는 주제입니다. 특히 이러한 내용은 종말이라는 주제와 연관되어 자주 등장합니다. 요한 묵시록에는 사치를 누린 만큼 고통과 슬픔을 안겨 준다는 표현도 나옵니다. 또한 이미 심판 예고에서 언급된 것처럼 여러 재앙이 닥치고 결국 그 여자, 즉 바빌론은 불에 탈 것입니다.

 

다음에는 바빌론의 불륜과 사치에 동조하거나 이득을 본 사람들이 언급됩니다. 사치는 이미 구약성경에서부터 부정적으로 이해되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치는 특히 종교적 윤리와는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불륜과 사치로 요약될 수 있는 바빌론의 죄는 그에 동조하거나 그것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은 이들에게까지 확대됩니다.

 

 

억눌린 이들의 탄원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세 번 반복해서 표현되는 “불행하여라, 불행하여라, 저 큰 도성!”(18,10)이라는 외침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억압하는 이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짓눌리는 당신 백성의 탄원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억압하는 이들에게 불행을 선포하십니다. 같은 맥락에서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불행 선포 역시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이들을 향합니다. 그들은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며 하느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숭배한 땅의 임금들, 바빌론의 사치 때문에 경제적 이득을 보았던 땅의 상인들, 그리고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땅의 임금과 상인들은 이미 언급된 바 있지만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금방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이 표현이 에제 27,25-32을 배경으로 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습니다.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땅의 상인들이 육로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면,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바닷길을 통해 로마와 교역하여 이득을 얻은 상인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마가 우리나라처럼 반도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땅에서 살해된 모든 사람의 피가 바로 그 도성에서 드러났다”(18,24). 천사의 이 마지막 외침은 요한 묵시록 전체에서 언급되는 ‘피’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로마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로마는 신앙 때문에 피를 흘린 모든 이에게 책임을 져야 하며 그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이제 요한 묵시록에서 남은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이 실현되는 일뿐입니다.

 

 

다가오는 구원과 영광의 시간

 

그리스도의 재림 곧 종말을 나타내기(19,11) 직전에 마지막으로 전해지는 것은, 이 모든 업적을 이룬 하느님에 대한 찬미와 종말 때에 신앙인들이 누리게 될 영광입니다. 이제 곧 실현될 구원의 시간을 표현한 내용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19,7-8).

 

이 마지막 찬미가에서 두드러진 점은 ‘대탕녀 바빌론’과 대조되는 ‘신부’의 이미지입니다. ‘자주색과 진홍색 옷’으로 치장했던 바빌론과는 대조적으로 ‘어린양의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으로 몸단장을 했습니다. 여기서 뚜렷한 옷 색깔의 대조는 세상의 화려함과 천상의 영광을 각각 대비시키는 효과를 냅니다. 흰색을 연상시키는 고운 아마포로 단장한 신부의 모습은 승리와 구원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혼인 잔치는 종말이 신앙인들에게 주는 의미를 함축해서 표현합니다.

 

어린양을 신랑, 신앙인들을 신부, 그리고 마지막 때의 기쁨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는 것은 복음에도 나오기 때문에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러한 상징적 표현을 써서 책의 마지막에 신부로 표현되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의 환시(21,9-22,5)를 준비합니다. 거룩한 도시라는 상징은 하느님과 어린양과 영원히 머물게 될 구원받은 이들, 곧 신앙인들을 가리킵니다. 종말의 때가 오면, 하느님의 약속이 모두 실현되는 때가 되면 신앙을 굳건히 지켜온 이들은 마치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도시처럼,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5월호(통권 482호), 허규 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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