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요한 묵시록의 행복선언 신약성경에서 주로 예수님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행복하여라”는 말씀을 행복선언이라고 부릅니다.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예전에는 진복팔단이라 많이 불렀던 참행복에 관한 말씀(마태 5,1-12)이나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행복선언(루카 6,20-23)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도 이러한 행복선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에는 행복선언이 일곱 번 나옵니다. 그 행복선언은 요한 묵시록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7이라는 숫자가 갖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행복선언이 일곱 번 등장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시를 중심으로 한 내용에서 행복선언은 요한 묵시록의 목적을 잘 드러내기에 더 중요합니다. 1,3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14,13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 16,15 “깨어 있으면서 제 옷을 갖추어 놓아, 알몸으로 돌아다니며 부끄러운 곳을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19,9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 20.6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이는 행복하다.” 22,7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 22,14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빠는 이들은 행복하다.” 일곱 가지 행복선언의 내용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책의 머리말과 맺음말 부분에 담겨 있는 동일한 내용의 행복선언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합니다”(1,3)와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22,7)는 같은 내용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지키는 이들’에 대한 행복선언이 책의 시작과 끝에 반복되는 이유는 그것이 요한 묵시록에서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환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하여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약속을 신앙인들이 굳게 믿고 살아가도록 용기를 주며, 특히 박해받는 신앙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지켜가도록 격려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요한 묵시록의 행복선언은 중요합니다. 이 선언이 곧 요한 묵시록을 기록한 목적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죽은 이들”은 신앙인들이 처해 있는 박해 상황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복한 이유가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14,13)라고 합니다. 황제숭배 의식을 거부해서 겪게 되는 박해가 점점 더 심해지는 처지에서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고,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승리와 부활에 참여하는 이들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알몸’은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 두 표현을 동시에 사용합니다. 이미 3,18에서도 언급되었던 이 표현이 16,15에서는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구원을, 그렇지 못한 이들은 알몸이나 부끄러움으로 표현되는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옷과 관련된 행복선언은 두 가지입니다. 옷을 준비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는 이들(16,15)과 자기들의 옷을 빠는 이들(22,14)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옷은, 많은 경우에 정체성 곧 그 옷을 입은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옷을 준비하고 자신의 옷을 빠는 이들은 하느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을 나타냅니다. 자신의 삶에서 믿음을 지키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맞게 살아가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옷을 준비하고 옷을 빠는 이들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기도 합니다. 혼인 잔치는 기쁘고 충만한 구원의 모습을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제 박해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온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하고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이들”은 종말 이후에 올 ‘천 년 통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천 년 통치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냅니다. 종말과 새로운 창조 사이의 이러한 중간 시기는 요한 묵시록의 특징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신앙인들에게 더 이상의 죽음은 없습니다. 박해받는 신앙인들을 향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요한 묵시록은 환시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받고 그로 인해 순교하게 되는 당시의 상황을 때로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이미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당시 소아시아 지역의 상황이 신앙인들에게 힘겨웠음을 보여 줍니다. 이런 상황은 분명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라는 전통적인 믿음에 회의를 가져다줄 수 있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믿음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게 될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러한 상황에서 신앙인들이 믿음을 지키고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의탁하도록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희망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부터 전해진 하느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히 종말의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약속은 실현되고 하느님의 정의가 드러날 것입니다. 현재의 역사 역시 하느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커다란 구원 역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러한 점에서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보여 준 승리와 구원이 멀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믿음을 지켜 가는 신앙인들은 모두 그 승리와 구원에 참여할 것입니다. 비록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과 영광에 먼저 참여하는 것입니다. 종말은 곧 올 것이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실에 따라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1999년 수품)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신학박사),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6월호(통권 483호), 허규 베네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