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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와 거울 보기2: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813 추천수0

탈출기와 거울 보기 (2)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탈출기 1장의 세 번째 단락은 1장 15-21절입니다. 이 단락은 이집트의 강력한 파라오와 이 파라오의 살해 지시를 받은 히브리인 산파들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절대 권력을 지닌 파라오와 파라오의 명령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두 여인을 의도적으로 대조하면서 진정한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파라오보다 하느님을 경외한 산파들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인구 증가를 저지하기 위한 세 번째 억압 정책으로, 히브리인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들의 해산을 도울 때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여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산파들이 파라오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길을 찾아냅니다. 1장 17절에 의하면 산파들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파라오의 명령을 거부하고 아기들을 살려 줍니다. 산파들은 파라오보다 하느님을 더 두려워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파라오가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행하였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그 신앙에서 나온 용기는 아무리 감탄해도 다 감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파라오가 그들을 불러 따져 물었을 때도 그들은 지혜로 충만한 대답을 합니다. “히브리 여자들은 이집트 여자들과 달리 기운이 좋아, 산파가 가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1,19). 이 두 산파는 하느님의 돌보심을 받아 파라오의 처벌을 피하였고, 그들의 집안은 하느님의 복까지 받았습니다. 그들이 현명하게 처신한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 번성하고 강해졌습니다.

 

히브리인 산파인 시프라와 푸아는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은 ‘하느님이 아닌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본다면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하느님이 아닌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하느님을 제대로 두려워할 수 있는 은혜를 청합시다. 하느님이 아닌 것 때문에 하느님을 포기하는 삶을 살지 않을 지혜와 용기도 함께 청합시다. 어떤 분들은 이 거울을 바라보면서 히브리인 산파처럼 용감하고 지혜로왔던 삶의 한 순간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순간에 함께 해 주셨던 하느님을 기억하고 그분과의 추억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여성들의 연대

 

탈출기 1장의 마지막 절인 22절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려는 파라오의 네 번째 정책을 소개합니다. 히브리인 산파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아기들을 죽이려는 계획이 실패하자 파라오는 더욱 잔인한 명령을 내립니다. 앞으로 태어나게 될 이스라엘의 사내 아기들을 모두 강에 던져 버리라는 명령입니다. 모세의 탄생과 성장 배경을 알려 주는 탈출 2,1-10은 파라오의 이런 강력한 억압 정책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에 처한 아기였습니다. 그런데 거역할 수 없는 파라오의 명령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아기의 목숨을 구한 이는 약한 여성들이었습니다.

 

탈출 2,1-10의 주인공은 모두 여성입니다. 모세라는 아기를 제외하고는 어떤 힘 있는 남성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어머니와 누이, 파라오의 딸과 그의 시녀들, 이 모든 여성이 모세라는 한 아기가 생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사내 아기가 태어나자 삼 개월을 숨겨 기른 어머니는 더 이상 아기를 숨겨 기를 수 없게 되자 파라오의 명령대로 아기를 강에 내다 버

립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기가 살 수 있는 온갖 가능성을 찾아 실행에 옮깁니다. 아기를 담을 바구니에 역청을 발라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만들었고, 바구니가 떠내려 가지 않도록 갈대숲이 우거진 곳을 눈여겨보아 두었으며, 강가로 목욕하러 내려오는 파라오의 딸의 눈에 잘 띌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였습니다. 파라오의 딸은 울고 있는 아기를 발견하고 히브리인의 아기인 줄 알면서도 아기를 구합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두려워하기보다 아기에 대한 동정심에 더 크게 사로잡힌 것입니다. 아기의 누이 미리암은 멀찍이서 이를 지켜보고 있다가 때를 놓치지 않고 나타나 히브리인 유모를 불러 오겠노라고 자처합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자기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뗄 때까지 자란 후 파라오의 딸에게 입양됩니다. 이 사내아이는 자라서 훗날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킬 것입니다.

 

모세의 생존이 가능했던 것은 생명을 죽이는 일보다 살리는 일을 선택했던 용기 있는 여성들 덕분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였습니다. 그들은 파라오가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만큼의 힘은 결코 지니지 못했지만 그의 잘못된 명령을 지혜롭게 거역할 만큼 생명을 사랑하였습니다. 설령 그 생명을 지키는 일이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여인들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거울을 보며 생명으로 나아가기

 

모든 생명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살리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목숨은 주님의 것’이고, 주님은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에제 18,4.32 참조). 이제 모세의 누이와 어머니, 파라오의 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봅시다. 깨어 있는 동안 우리가 분주히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와 말이 주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인지, 혹은 다른 이들의 기를 꺾고 그들의 삶을 힘겹게 하는 일인지 살펴봅시다. 우리의 말과 행위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2월호(통권 479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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