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와 거울 보기 (16) 이스라엘의 새 이름 이스라엘의 기나긴 광야 여정의 제1부, 곧 첫 번째 광야 여정은 탈출기 19장에 이르면 끝이 납니다. 그들이 드디어 시나이 산 기슭에 당도한 까닭입니다. 이집트를 떠나서 시나이 산에 이르기까지는 약 2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제 이곳 시나이 광야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운명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19-24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체결한 계약에 대해 설명합니다. 먼저, 19,3-6에서 하느님께서 계약 체결을 제의하시면 백성은 이에 동의합니다(19,7-8). 백성이 사흘 동안 계약 체결을 위한 준비를 하고 난 뒤(19,9-15), 하느님께서 불과 연기와 우렛소리로 그들에게 나타나십니다(19,16-25). 이어서 계약의 조건인 하느님의 법규들, 곧 십계명(20,1-21)과 계약 법전(20,22-23,33)이 선포되고, 마침내 계약이 체결됩니다(24,1-11). 이 계약을 통상적으로 ‘시나이 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이 계약은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계약입니다. 이번 달에는 19,1-8의 내용, 곧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안하신 계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백성이 마침내 시나이 산이 보이는 광야에 이르러 그곳에 진을 쳤을 때, 모세는 하느님께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려는 의도를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고대 사회의 계약에는 동등한 두 상대가 맺는 상호조약이 있고, 주종 관계를 이루는 두 상대가 맺는 수호조약이 있었습니다. 시나이 산에서 체결될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계약은 수호조약 형식에 가깝습니다. 보통 수호조약에서는 종주국 임금이 종속국 임금에게 베푼 은혜가 나열되고 강조됩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19,4). 이 짧은 구절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구해 내셔서 이곳까지 데려오셨는지를 간략하지만 아주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독수리는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나는 연습을 시키기 위해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 떨어뜨립니다. 그런데 독수리 둥지는 보통 아주 높은 바위나 나무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새끼들은 하강할 때 겁을 먹고 맙니다. 혹시라도 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새끼라면 떨어져 죽고 말겠지요. 그래서 어미 독수리는 2미터가 넘는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펴서 새끼를 쫓아 하강합니다. 이런 독수리의 습성을 잘 아는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광야로 데려 내온 과정을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날개에 태워 날아오르는 것에 비유합니다. 광야를 지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은 자녀를 돌보고 지키기 위해 자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부모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셨는지요? 하느님의 보호가 늘 나와 함께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음에도 혼자 살아온 것처럼 외로워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느님은 내 사정 따위는 못 본 체하신다고 울부짖고 있지는 않은지요? 고단한 내 삶에 함께하셨던 하느님의 자취를 알아보고, 그 사랑에 눈물 흘리며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의 삶이 그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대 근동의 수호조약이라는 형식을 따르고는 있지만 이 계약은 법적인 구속력만을 갖는 무미건조한 계약이 아니라 사랑을 베풀고 그 사랑을 체험한, 사랑하는 이들이 맺는 사랑의 계약입니다. 이 때문에 첫 번째 광야 여정 전체는 하느님께서 얼마나 큰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보호하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는지를 부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가없는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었고, 이제 그들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상대자가 되었습니다. 계약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의 계약을 성실히 지키기만 한다면 그들은 이제 ‘하느님의 소유’가 되고, ‘사제들의 나라’가 될 것이며, ‘거룩한 민족’이 될 것입니다(19,5-6). 곧 이스라엘 백성은 이 계약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소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서굴라’는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귀한 보물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의 계약으로 하느님의 귀한 보물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느님과 다른 백성 사이를 중개하는 사제의 직분을 수행할 것이며, 하느님에게 속한(=거룩한) 민족, 곧 하느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계약을 통해 이름을 얻게 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제안에 ‘주님께서 이르신 모든 것을 실천하겠다’(19,8)고 응답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응답 안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를 그들은 더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사흘을 따로 떼어 내어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19,9-15).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계약을 통해 새 이름을 얻었다면 세례 때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해 우리 각자가 얻은 새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습니까? 혹시 새 이름을 얻고도 여전히 낡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나의 ‘새 이름’을 기억하고, 그 이름으로 새로워지는 한 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4월호(통권 493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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