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와 거울 보기 (20) 진실한 예배와 진실한 관계 계약법전은 ‘우상숭배와 제단에 관한 법’, ‘민법과 형법에 해당되는 일련의 규정들’ 그리고 ‘윤리적·종교적 권고 모음’과 후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윤리적·종교적 권고 모음’에 해당하는 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공동체에 관한 규정과 하느님에 관한 규정이 교차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약자보호법’(22,20-26)과 ‘정의 실현에 관한 법’(23,1-9)이 공동체에 관한 규정이라면, ‘하느님을 섬기는 법’(22,27-30)과 ‘안식년과 안식일, 삼 대 축제에 관한 법’(23,14-19)은 하느님에 관한 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공동체에 관한 규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법에는 당시 사람들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약자보호법의 규정에는 이방인, 과부, 고아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모두 그 사회에서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 낼 수 없는 약자였습니다. 약자보호법은 이 약자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또 왜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첫째,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방인들을 억압하거나 학대하지 말라고 규정하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았고, 따라서 이방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불이익과 결핍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아무도 보호해 줄 이가 없는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말라고 하는데, 그들이 하느님께 부르짖으면 고아와 과부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그들을 대신하여 복수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셋째는 가난한 이들에게 이자를 물리거나 채권자 행세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으면 해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규정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자보호법은 이런 규정들을 통하여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공동체 안에서 가장 약한 이들의 삶을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한 사회나 국가의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약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보장하는 장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할 때 비로소 그 사회나 국가는 진정한 안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약자보호법은 또한 하느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하느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못하는 분이십니다. 정의 실현에 관한 법 역시 공동체의 삶을 위한 규정입니다. 이 법은 무엇보다 관계에서 정의를 요구하는데, 관계 정의는 진실에 바탕을 둘 때에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법은 다양한 차원의 사실 왜곡을 금지합니다. 첫째, 있지도 않은 사실을 유포하거나 주장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따라서, 헛소문을 퍼뜨리거나 거짓 증언을 하는 것, 다수를 따라 정의를 왜곡하는 것이 금지되는데, 이는 모두 누군가의 생명을 해치는 두려운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둘째, 뇌물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래서 뇌물을 받고 정의를 왜곡하거나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명합니다. 부자라고 편들거나 가난하다고 편들지도 말며, 편파적인 재판으로 법적 정의를 왜곡하지 말라고 합니다. 정의 실현에 대한 요구는 인간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집짐승들에게도 해당됩니다. 비록 원수의 소나 나귀라고 하더라도 길을 잃거나 쓰러져 있을 때 외면하지 말고 돌보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관한 법률 역시 공동체를 위한 규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법은 하느님을 욕하지 말 것을 명령하는데, 이는 백성의 수장을 저주하지 말라는 규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백성의 수장은 하느님이 선택하셨기에 수장을 모독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또한 곡식의 맏물과 짐승의 맏배, 맏자식은 하느님에게 속한 것이므로, 주저하지 말고 기꺼이 그것을 하느님께 바쳐야 합니다. 거룩한 하느님에게 속한 거룩한 백성으로서 그들이 거룩함을 드러내는 한 방법은 맹수에게 찢긴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또 안식년의 휴경과 안식일의 쉼도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으로 제시됩니다. 안식일의 쉼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소와 나귀, 종과 이방인들 역시 쉴 수 있게 하려는 인도주의적 배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이외에 다른 신을 예배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또 적어도 일 년에 세 번, 무교절과 수확절, 추수절에는 모든 남자가 주님 앞에 나아와 그분을 예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나아올 때는 빈손으로 와서는 안 되며 땅에서 얻은 맏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고 누룩이 든 빵은 바치지 말라고 합니다. 축제에 관한 이런 규정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되는 것을 막아 줍니다. 함께 모여 하느님을 예배하면서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 이웃을 섬기는 일과 별개일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탈출기의 계약법전이라는 거울에 우리 공동체를 비추어 봅시다. 우리 공동체의 약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우리 공동체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들을 위한 어떤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나누는 관계는 진리에 바탕을 둔 것입니까? 우리 공동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는 어떠합니까? 하느님께서는 진실하게 예배드리는 이들을 찾고 계십니다(요한 4,23 참조).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8월호(통권 497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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