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와 거울 보기 (24) 모세의 빛나는 얼굴 모세의 빛나는 얼굴에 대한 성찰로 ‘탈출기와 거울보기’를 끝맺게 된 것은 하느님이 섭리하신 아주 적절한 마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탈출 33-34장이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 손상된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계약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를 보도한다면, 35-40장은 성막과 그 기물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25-31장)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성막 성전에 대한 내용은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으니, 이제 탈출 33-34장만 다루면 2년에 걸친 탈출기 전체의 묵상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보게 될 탈출 33-34장은 깊은 영적 의미를 가진 본문으로, 거듭하여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중요한 단락은 백성을 위해 바치는 모세의 중재 기도로 시작합니다. 앞서 모세는 주님께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청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을 주님의 책에서 지워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32,32). 하느님께서는 오직 죄지은 자만이 책에서 지워진다고 말씀하시며 모세에게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을 계속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분노로 인해 도중에 백성을 모두 없애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33,3.5). 함께 가시지 않겠다는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백성은 슬픔에 빠집니다. 모세는 진영 밖에 만남의 천막을 치고 다시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친구와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호의에 호소하며 간절히 말씀드립니다. “제가 당신 눈에 든다면, 저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을 알고, 더욱 당신 눈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33,13).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함께 가는 것에 동의하십니다. 모세는 두 번째로 간곡하게 그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주님께 청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모세의 간청을 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세의 간청과 기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고, 모세에게 그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당신은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모세는 하느님의 현존을 간절히 요청한 것일까요? 약속의 땅보다 하느님의 현존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왜 백성은 하느님께서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하실 때 슬퍼하였을까요? 모세의 간절한 중재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행복의 원천이라는, 역사를 통해 얻은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모세의 청원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하느님께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33,18)라고 청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하듯이 모세는 하느님께 당신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 모세의 요청은 하느님과 깊이 일치하고 싶은 갈망을 드러냅니다. 모세의 요청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거듭 묵상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대답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은 인간에게 선과 사랑을 베푸시며, 당신을 계시하시는 분입니다. 둘째, 하느님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분이어서 하느님의 자유는 인간의 조건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33,19). 셋째, 인간은 누구도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곧, 인간은 그분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없고, 다만 그분 영광의 효과, 곧 그분의 선과 은혜와 애정의 결과를 통해서 그분을 알게 될 뿐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등 뒤, 곧 그분이 지나가신 자취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 수 있을 뿐, 미리 그분이 무엇을 할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속성에 대한 이 중요한 말씀은 하느님에 대한 우리 자신의 편협한 이해를 교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모세의 간절한 중재를 통하여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계약 관계는 회복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다시 시나이 산에 올라 사십 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계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탈출 34,11-26에 소개된 십계명은 탈출 20,1-17의 십계명과 달리 전례와 의식(儀式)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의식 십계명’이라 불립니다. 모세는 이 두 개의 증언판을 들고 빛나는 얼굴로 시나이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의 얼굴 빛은 하느님과 함께한 시간의 결과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내외적으로 정화된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빛이었습니다.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거울삼아 우리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면의 어둠과 그림자는 우리 얼굴에 그늘을 만들기 마련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침묵과 고요, 하느님의 뜻에 맞갖지 않은 내적인 움직임들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변화하려는 한결같은 노력과 원의,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길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우리의 그늘을 벗겨 내어 본래의 빛나던 얼굴을 되찾게 합니다. 이 얼굴을 되찾기 위한 여정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결심하며, 이제는 역사와 함께 사라지게 될 <성서와함께>가 우리의 빛나는 얼굴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던 지난 시간들에 감사드립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12월호(통권 500호 감사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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