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 야고보 서간 (3) 하늘에서 오는 지혜 야고보서에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구원 등 교리와 관련된 내용보다 올바른 삶에 관한 윤리적 가르침이 많이 나온다. 그렇다면 야고보서는 다른 문서들에 비해 그리스도교 정경으로서 가치가 덜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야고보서는 신약성경의 문서 중 가장 철저히 구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야고보서의 관심사는 신앙의 신조나 교리 설파 이전에 하느님 백성으로서 올바르게 살아 완전하게 된다는 데 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예수님 역시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으며,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하게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이달에는 야고보서의 가르침 중 구약의 지혜 전통에 뿌리를 둔 내용에 귀 기울여 보자. 참 지혜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며, 그 지혜가 이끄는 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완전한 삶임을 가르치고 있다.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1,5)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지혜라는 말에는 두 가지 차원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실생활에서 어리석음을 피하고 좋은 결과를 맺게 하는,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지혜 곧 실용적 지혜이다. 이런 실용적 차원의 지혜는 건전한 상식과 관찰력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지혜로워지기 위해 반드시 하느님을 믿어야 할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지혜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차원의 지혜다. 지혜의 원천인 하느님의 법을 배우고 그것을 일상의 삶에 적용하여 살아가는 지혜이다. 야고보는 이러한 지혜를 하느님께 청하라고 권고함으로써, 참된 지혜는 인간의 이성적 관찰이나 경험을 넘어서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강조한다. 실용적 지혜와 하느님의 지혜가 무조건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의 가치관과 하느님 나라의 가치관이 다를 때는 서로 대립할 것이다. 야고보는 당시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을 시구 한 자락을 인용해 이를 깨우쳐 준다. “풀은 마르고 꽃은 져서 …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1,11) 실용적 지혜는 현세 삶의 성공을 돕는다. 그런데 구약의 지혜 전통에서는 삶이란 덧없는 것이며, 그 덧없음은 풀과 같다고 가르쳤다. 풀과 꽃은 한때 무성한 듯 보이다가도 결국 말라서 사라져 버린다(욥 24,24; 시편 37,2; 90,5; 이사 40,8 참조). 야고보는 많이 모아두면 둘수록 든든히 자신을 지켜 줄 것처럼 보이는 물질적 풍요도 결국은 말라 버릴 풀처럼 허무한 것임을 일깨워준다. 제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그 재산이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 죽음의 순간에는 “자기 일에만 골몰”(1,11)했던 시간이 하느님을 등한시하고 이웃에게 무자비했던 시간이 되어 오히려 화를 부를 것이다. 여기서 세상살이의 지혜와 하느님의 지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야고보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한 것에, 새로운 가치에 눈뜨라고 초대한다. 비천한 형제는 자신의 고귀함을 보고, 부자는 자신이 비천해졌음을 자랑하라고 한다(1,9-10). 이는 우리 삶의 중심에 하느님께서 자리 잡으시도록 할 때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물질적 가난의 삶은 언젠가 죽음과 더불어 종지부를 찍겠지만, 하느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은 영원히 지속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난하고 힘든 삶일지라도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물질적 부유함이 천상적 재화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을 때, 세상의 부귀영화도 하느님 앞에서는 비천할 뿐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하느님의 지혜에 눈뜬 것이다. 마음속에 하늘의 지혜를 품고서 살아가십시오(3,13-18) 이 세상에는 지혜롭고 총명하다고 인정받거나 본인 스스로 그렇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야고보는 그들을 향하여 자신들의 지혜가 어떤 열매를 맺는지 살펴보라고 권고한다. 지혜가 하늘의 가치를 향하지 않고 세속적 가치를 향해 있다면, 그 지혜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자기 자신의 일에만 골몰하는 지혜는 영악함과 교활함으로 변질될 것이다. 오늘 내가 지혜라고 여겨 실천에 옮긴 행동이 나 자신에게는 일시적으로 이득을 가져다줄지라도, 나의 주위에 혼란을 야기한다면 그 지혜는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3,15)이라고 야고보는 가르친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나 자신의 만족보다 자비와 사랑을 선택하도록 하며, 이러한 지혜야말로 나도 살리고 다른 이들도 살린다. 이러한 지혜의 삶은 달리 표현하자면 올바른 삶, 의로운 삶이다. 구약의 지혜 전통에서는 지혜로운 이와 의인을 동일시한다. 지혜가 하느님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이라면 지혜로운 이는 올바른 길을 걷는 자, 바로 의인이다. 그래서 지혜는 폭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평화를 통해서 일하며, 그 평화 속에 의로움의 열매가 맺어진다고 야고보는 가르친다(3,18 참조). 참된 지혜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야고보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라고 권고한다(4,8). 하느님께서 지혜의 근원이시니, 지혜를 구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은 그분께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면 놀랍게도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로 가까이 오신다. 그분을 향한 우리의 마음과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이 가까이 서로 만나면 우리는 하느님의 벗이 될 것이다. 세상의 그릇된 가치들을 멀리하고, 하느님의 진정한 벗으로서 살아가라는 초대, 이것이 야고보가 들려주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 강은희 님은 미국 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수학하였으며(성서학 박사),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와 동 대학교 신학원에서 성경 전반에 걸쳐 강의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4월호(통권 481호), 강은희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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