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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베드로 서간 (1)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희망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716 추천수0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 베드로 서간 (1)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희망을

 

 

야고보 서간에 이어, 이달부터는 여섯 회에 걸쳐 베드로의 첫째 서간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보고자 한다.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에는 주님을 따르려는 뜨거운 열정, 주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서투름, 예수님을 부인하기까지 하는 인간적 나약함이 섞여 있다. 사도행전으로 넘어가면 성령의 힘으로 변화된 베드로를 만날 수 있다. 숨어 있던 다락방에서 나와 용감히 그리스도를 전파하고(사도 2장), 보수적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바오로 사도를 중재함으로써(사도 11장, 15장) 이방인 선교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이방인 선교는 바오로 사도의 업적으로 여기지만, 그 선교가 가능하도록 교회의 문을 열어 준 이는 베드로였던 것이다.

 

신약성경은 베드로의 이름으로 두 권의 서간을 전한다. 베드로의 첫째 서간을 읽으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원숙해진 원로의 가르침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복음서의 베드로와 서간을 쓴 베드로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누가 누구에게?

 

전통적으로 베드로 서간은 베드로 사도가 직접 쓴 편지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비평적 성경 연구와 더불어 이 서간은 베드로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두 가지 증거가 자주 거론된다.

 

첫째는 이 서간의 저자가 자신을 원로 중의 하나로 언급한다는 점이다(5,1).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과 원로들이 한 자리에 있을지라도 이 두 그룹을 뭉뚱그려 원로들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자신을 “같은 원로”라고 칭하고 있다. 따라서 이 서간은 원로 중 한 사람이 베드로의 이름을 빌려 썼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증거는 ‘바빌론’이라는 지명이다. 신약성경에서 바빌론은 로마를 상징하는 일종의 암호이다. 기원후 70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뒤로 로마는 구약시대에 예루살렘을 파괴했던 바빌론과 연결되며 은유적으로 바빌론이라 불렸다. 그런데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 사도는 64년경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편지를 베드로 사도가 썼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학자들 대부분은 베드로 사도를 가까이 따르던 측근이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70–90년 사이에 로마에서 이 서간을 쓴 것으로 간주한다. 편지의 저자가 예수님과 함께했던 역사적 베드로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는 이 편지의 저자를 베드로라 칭하도록 하자.

 

이 서간의 수신인은 “폰토스와 갈라티아와 카파도키아와 아시아와 비티니아에 흩어져 나그네살이를 하는 선택된 이들(1,1)이다. 바오로 서간을 읽어 본 독자라면, 이 지역은 대부분 바오로 사도의 선교지였을 텐데 어떻게 베드로와 연결될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카파도키아, 폰토스, 아시아 등은 사도 2,9에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의 출신지로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오순절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머물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힘을 받아 여러 언어로 말하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사도 2,41). 따라서 소아시아 지역과 베드로 사이에는 그때부터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이들을 “나그네살이를 하는 선택된 이들”이라 부른다. 좁은 의미의 나그네살이란 이방인 가운데 사는 유다인들이겠지만, 베드로 서간의 다른 부분을 보면 개종한 이들도 편지의 수신인에 포함하고 있음이 드러난다(1,14; 2,10; 4,3). 따라서 이 편지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아직은 하느님의 나라가 구현되지 않은 세상에서 나그네살이를 하고 있는 모든 신자에게 들려주는 베드로의 가르침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희망을

 

베드로 서간의 주요 주제는 희망이다. 흥미롭게도 바오로계 서간에서는 희망이란 단어가 고르게 등장하지만, 가톨릭 서간에서는 희망이란 단어가 여섯 번만 나오는데, 그 중 다섯 번이 베드로의 첫째 서간에 나온다. 이는 당시의 수신자들에게 희망이 절실했음을 의미한다. 희망은 현실의 어두움을 방증하는 것이고,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어려움이라면 단연 박해가 으뜸이었을 것이다.

 

네로 황제의 박해는 64년경이고 그 뒤의 박해는 90년 이후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있었으며 이 서간이 기록된 시기는 그 사이이다. 다시 말해 이 서간은 이미 한 차례 대대적인 박해를 경험했고, 다시금 박해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쓰인 것이다. 대대적인 박해 법령이 공식적으로 없었다 할지라도, 당시에는 그리스도라는 이름만으로도 박해 대상자가 되기엔 충분했다(4,14).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신앙과 생활방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예전의 인간관계로부터 단절된 채, 배척 또는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의 이름으로 전해진 편지는 그들이 누리게 된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신분에 대한 자각, 그리고 비록 예전의 친지, 지인들로부터는 고립되었을지라도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에 속해 있다는 확신을 주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어둠 너머로 빛나고 있는 희망을 가리키며, 그곳을 향해 인내로이 전진하라고 용기를 북돋운다. 다음 달부터 베드로가 인도하는 그 희망의 길을 찬찬히 따라가 보도록 하자.

 

* 강은희 님은 미국 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수학하였으며(성서학 박사),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와 동 대학교 신학원에서 성경 전반에 걸쳐 강의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8월호(통권 485호), 강은희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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