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천국이란 어떤 곳인가요?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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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10-16 | 조회수533 | 추천수2 |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천국의 사전적 의미:1.천상에 있다는 이상적인 세계.
2.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이 직접 다스린다는 나라.
천당.
3. 어떤 제약도 받지 아니하는 자유롭고 편안한 곳,
또는 그런 상황.
1.2.하늘나라. <-> 지옥
보통 천국이라면 죽은 이후에 가서 사는 곳을 말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몸 담고 사는 동안 여러가지로 열악한 조건에서 힘겹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이 고통의 장소로 여겨지게 되었지요. 그런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기쁜소식(구원, 하늘 나라)을 전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통하여 묵상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제가 이해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 나누려고 합니다.
왜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의 사람들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었나?
창세기의 첫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저는 쫓겨났다는 표현보다는 인간이 하느님의 간섭(다스림)을 거부한 사건 또는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한 사건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거부하고 하느님 없이 인간이 제 멋대로 살면서 죄가 불어나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신 것까지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시는 일까지 일어납니다.(창세6,6)
하느님 없이 인간이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인지 카인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메는 신세가 될 것이다. 카인이 이렇게 아뢰었다.'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당신께서 오늘 저를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메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창세4,12-14)
인간이 죄를 짓고 죄의 상태에 있으면 세상을 파괴하는 일을 합니다. 자연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쓰면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자연 질서가 파괴됨에 따라 엄청난 재앙을 불러옵니다. 그러니 우리가 죄의 상태에서 땅을 부쳐도 그것이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며, 세상을 떠돌며 헤메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먹을 것은 없고 세상을 떠돌며 헤메는 신세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카인의 고백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라는 고백이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한 사람(아브라함)을 선택하시어 한 민족(이스라엘)을 이루어 주시며 그들이 빛과 소금이 되고 누룩이 되어 온 세상에 당신의 사랑을 알리길 원하셨으나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길을 제시하며 백성들의 삶은 삼중고를 겪게 합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10계명을 세분화하여 613가지의 율법 조항을 만들어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죄인으로 단죄 했으며, 로마의 식민통치 아래서 과중한 세금징수와 유다인들의 성전세 징수등 정말 어서 죽어서 저 천국에나 가고 싶었을 삶을 살고 있는 이렇게 비참한 현실 앞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정말 환하게 다 열어 보여주시려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당신의 참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시고 보여 주시려 하였으나 유다인들은 그초차도 거부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거부하고 하느님 없이 그 고통속에 살아 보았으면서도 왜 또 하느님을 거부했을까요? 내 생각과 다르기에.
결국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하느님 없이 사는 삶이 지옥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천국의 삶과 지옥의 삶을 맛보고 누리도록 주님께서 허락하셨음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4,17)고 말씀 하셨습니다. 곧 하느님께 돌아와 하느님과 함께 살면 거기가 하늘 나라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저 천국에 다녀 온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저 천국에서 내려오신 분이 그 하늘 나라를 설명해 주십니다. 직접 그곳의 주인이신 분의 증언이므로 참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신비에 관해서 비유로 알려 주십니다.
하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시는데 사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행복한 잔치가 혼인 잔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면 포도주를 새로이 만들어 주시어 혼인 잔치를 지속적으로 흥겹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시지요.(요한 2,1-12 참조)
지금의 우리들 교회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혼인 잔치는 전례를 통하여 베풀어 주시는 은총입니다. 전례헌장 2항(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4):을 소개합니다.
전례를 통하여, 특히 거룩한 성찬의 희생제사(미사성제)에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므로" 전례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생활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데에 가장 크게 이바지 한다. 교회의 특성은 인간적인 동시에 신적이며,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지니고, 열렬히 활동하면서도 관상에 전념하고, 세상 안에 현존하면서도 다만 나그네인 것이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인간적인 것은 신적인 것을 지향하고 또 거기에 종속되며,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활동은 관상을, 현존하는 것은 우리가 찿아가는 미래의 도성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전례는 교회 안에 있는 이들을 날마다 주님 안에서 성전으로,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집으로 세우며,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할 때까지 그렇게 한다.
전례헌장 3항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월절 양으로 희생되신"(1코린5,7) 십자가의 희생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시에 성찬의 빵을 나누는 성사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1코린 10,17참조) 신자들의 일치가 표현되고 실현된다.모든 사람이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와 이렇게 일치되도록 불리었으며,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며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있다.
전례를 통하여 실제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짐을 신앙으로 믿고 살아 갈 때 우리는 이곳에서 천국의 삶을 미리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이 삶이 하늘 나라를 누리는 삶이 아닌지요.
그러므로 저는 성경이란 하늘 나라 시민들의 안내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사랑으로 이끄시며 인간은 그 이끄심에 어떤 때는 순종으로 어떤 때는 불순종으로 응답하는 모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 모델들을 통하여 나를 돌아보고 회개 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주님의 애절한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서 형제를 내 몸 같이 사랑하며 사는 삶을 누리고 있다면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이미 천국의 삶을 맛보시는 것인데.
결국 이 한가지를 잘 살도록 이끌기 위해서 수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좀더 쉽게 이해시키려고.
저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이 세상에서 누리는 삶이 천국에서 누리는 삶과 그 가치가 절대로 떨어지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말씀을 소개합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태22,29-30)
보십시오! 하느님의 사랑을.
저 천국에 없는 것을 누리도록 허락해 주신 사랑을.
저 천국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답니다. 그곳에는 없고 이곳에만 있으니 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삶입니까? 저 천국이 우리들의 소망인데 그곳에 없는 귀한 것을 이곳에서 맛보도록 허락하셨음을 묵상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손수 우리들이 살아갈 때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장만해 놓으시고 천상병 시인의 고백처럼 행복하게 누리고 오라고 소풍을 보내주신 그 사랑을.
그런데 우리들이 이 귀한 삶을 불행하게 사니까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의 삶이 귀하고 소중하지 않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수난과 죽음을 당하실 이유가 있겠는지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상상해 온 그 이상으로 이 땅에서의 삶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이 세상의 삶을 허락하심은 하느님 당신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허락하심이라고 느낍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까지 우리를 위해서 내 놓으셨잖습니까.
그러므로 영원함 안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이 삶을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 천국은 이 세상 삶과 다른 별개의 삶이 아니라 계속 연결되는 삶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가?
저 천국에는 없는 귀하고 소중한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진실로 우리가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삶을 누린다면, 주님을 마주 뵈옵는 은총 속에 산다면, "주님께서 우리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다시는 죽음도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묵시21,4 참조) 하신 말씀을 지금 이곳에서 누리는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어린 이이가 엄마만 자기 곁에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은 아닐런지요?
"그래서 다윗도 하느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 의로움을 인정해 주시는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행복하여라,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지 않으시는 사람!'"(로마4,6-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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