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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이스라엘의 예언자, 오늘날의 예언자: 신명기계 신학자들(DtrG)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7 조회수8,094 추천수0

[이스라엘의 예언자, 오늘날의 예언자] 신명기계 신학자들(DtrG)

 

 

이번 호부터는 유배에서 활약한 예언자들을 살펴보겠다. 먼저 유배라는 상황을 좀 들여다보자.

 

 

울타리가 무너지다

  

예언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경고에도 이스라엘의 상류층은 하느님을 거역하였고 결국 유배를 겪어야 했다. 유배란 그동안 하느님 백성이 이룬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왕정도 군대도 성전도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다. 하느님 백성은 울타리 없는 양떼처럼 보였다.

 

하느님 백성의 신앙은 큰 위기를 맞았다. 하느님을 굳게 믿으면 예루살렘의 왕권이 영원하리라던 ‘시온 신학’은 위태로웠다. 급기야 일부 백성은 야훼 신앙을 공공연히 포기하기에 이른다.

 

예레미야에게 “당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든 우리는 당신의 말을 듣지 않겠소.”(예레 44,16)라고 대들었던 고향 사람들은 아마 이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하느님의 힘이 약하여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이사 50,2 참조).

 

지난 6월 호에 보았듯, 망국의 엘리트들은 백성들에게 배척받았다. 구약 성경은 유배 이후 이스라엘의 왕족이나 관리나 사제 등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난 중의 백성이 환대했던 사람들이 있으니 저항 예언자들과 그 후손들이었다. 그들은 왕국의 타락과 몰락을 경고했던 거의 유일한 집단이었고, 늘 가난한 백성들과 함께했던 하느님의 종들이었다.

 

 

근본적 성찰과 대화의 기회

 

유배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신학이 한 단계 발전하게 되는 큰 기회였다. 먼저 하느님 신앙을 전면적으로 다시 성찰하게 되었다. 그동안 하느님 백성이 외적으로 이룬 것과 왕국이 제공하던 종교적이고 세속적인 울타리는 무너져 버렸다.

 

이제 하느님 백성은 개인적 신심과 가정의 종교적 전통으로 버텨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마치 광야 시대가 돌아온 것 같았다. 백성은 박탈과 상실의 체험을 통해서 신앙이 심화되는 체험을 하였다. 어떠한 울타리도 없이 낯선 곳에 내던져졌을 때 비로소 하느님이 누구이시고 나에게 어떤 의미이며 존재인지 깨닫게 되지 않는가! 그런 체험을 하느님 백성이 집단적으로 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유배는 종교 간 대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이기도 했다. 백성들은 당대의 가장 선진국이었던 바빌론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들었을 것이다. 선진 문물을 접하는 그들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종교학적으로 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 낯선 신들과 낯선 종교를 마주쳐야 하는 체험을 통해서 백성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일상적으로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외부 세계에 동화될 것인지 아니면 고유한 하느님 신앙을 지켜 나갈 것인지 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것이다.

 

 

원로들

 

우리는 유배 중에 예언자를 모시고 하느님 백성을 이끈 주체는 원로들(םינקז)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마디로 원로들은 하느님 백성의 평신도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 성경은 원로들의 인상적인 역할을 끊임없이 전한다. 일찍이 하느님께서 불붙은 떨기 한가운데에서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당신을 드러내실 때, 그분께서는 “가서 이스라엘의 원로들을 모아 놓고”(탈출 3,16) 이집트 탈출 계획을 알리라고 명령하셨다.

 

이후에도 모세 곁에는 늘 원로들이 있었고, 이들은 약속한 땅에 들어가서도 다양한 소임을 맡았다. 이를테면 원로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재판에서도 능동적인 역할을 했다(신명 19,12; 21,2.19 등 참조).

 

임금과 군대, 장수, 사제 등이 사라진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저항 예언자들을 모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백성들을 추슬러 유배를 견딘 주역이 다름 아닌 원로라는 사실은 평신도 희년을 사는 올해에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박해받는 상황에서도 신자들을 추스리고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적극 벌인 우리 신앙 선조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신명기계 신학자들

 

알베르츠는 유배 중에 새롭게 전개된 이스라엘의 신학적 줄기를 크게 네 개로 정리하였다. 신명기계 신학자 집단(DtrG), 예레미야-신명기계(JerD), 제2이사야(2Jes) 그리고 에제키엘(Ez) 계열이다. 순서대로 하나씩 요약해 보겠다. 먼저 신명기계 신학자들을 살펴보자.

 

신명기계 신학자들은 유배 이전에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약한 신학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히즈키야 임금과 요시야 임금의 유일신 개혁 정책을 적극 지지한 중앙의 신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의 후손일 것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의 사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고, 이들 스스로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정치 등에 상당히 깊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이들은 유배를 떠난 중앙의 엘리트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저항 예언자들과 가까웠거나 깊이 공감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 다신교적 요소를 도입한 일부 임금의 정책을 비판하는 날선 목소리에 동조했을 것이다.

 

일체의 종교 혼합 주의는 물론 아합 등의 ‘현실적인 이원 주의’ 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신을 따르지 말고 오직 주님만 섬기라는 저항 예언자들의 주장과 신명기계 신학자 집단의 성찰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다

 

한편으로는 중앙에서 유일신 개혁을 이끈 임금을 적극 뒷받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 예언자들과 교감하던 신명기계 신학자들은 망국의 현실 앞에서 크게 아쉬워하고 슬퍼했을 것이다. 이들은 저항 예언자들의 날선 비판을 수용하고 오직 주님만 섬기는 유일신 개혁을 올바로 이끌었어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는 결론을 공유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실제 현실은 이들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게 흘러가 버렸다. 저항 예언자들은 배척되었으며, 몇몇 올바른 개혁 임금은 쓰러졌다. 그 결과 나라는 망했고 백성은 하느님께서 주신 땅을 떠나 유배를 가야 했다. 올바른 개혁 정책을 지지했던 이들은 참혹한 현실을 보며 마음속에 울분을 품지 않았을까?

 

이들이 유배 중에 한 일은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를 정리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었다. 신명기계 신학자들은 모세부터 이어지는 모든 역사를 오직 하느님 신앙의 관점에서 정리하였다.

 

뛰어난 신학자들이었던 이들은 상당히 체계적으로 작업하였다. 이들은 먼저 모세의 유언을 정리하였다(신명기). 모세가 마지막으로 후손에게 남긴 말씀은 후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기준이자, 이들 스스로가 후손들에게 역사를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임금이 세워지기 이전의 역사(여호수아기, 판관기)와 왕정의 역사(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를 역사 순으로 조목조목 정리하였다. 그 결과 이들이 정리한 역사, 이른바 ‘신명기계 역사서’(DtrG)는 현재 구약 성경의 정사(正史)로서 우리에게 전승된다.

 

이들이 역사서를 쓴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하느님께 충실한 역사와 그렇지 못한 역사를 정리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쓴 역사는 하느님께 충실한 임금들, 곧 다윗과 솔로몬, 히즈키야, 요시야 등을 상세히 서술한다. 또한 하느님께 불충한 임금들, 곧 예로보암과 므나쎄, 아합 등도 비교적 상세히 서술한다.

 

그리고 저항 예언자의 시조격이랄 수 있는 엘리야의 이야기도 무척 자세히 기술하였다. 유배 중에 이런 임금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정통하고 자료도 많이 보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후손들은 역사에서 배워라

 

신명기계 신학자들의 역사 기술을 분석하면 이들의 ‘이중적 성격’이 잘 드러난다. 이들은 가난한 백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저항 예언자들의 신학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임금과 왕실 중심의 ‘위로부터의 역사’를 기술하였다. 그래서 이들의 메시지는 저항 예언자들의 신학과 근본적으로 일치하면서도 초점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저항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왕정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날선 언어를 내뱉기도 했다. 신명기계 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임금이 전부 잘못한 것이 아니며, 일부 충실한 임금의 노력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신명기계 역사서를 읽으면, 신명기계 신학자들이 선호하는 히즈키야와 요시야의 시도가 성공했더라면 이 나라는 주님의 눈에 들어 번영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긍정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들은 하느님을 향한 근본적인 신뢰와 희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저항 예언자들과 일치한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고 유배를 간 원인은 하느님께서 무력하시기 때문이 아니며, 우리 인간이 하느님과의 약속에 충실하지 못해서라는 점을 공유한다.

 

그러므로 유배는 하느님께서 백성에게 주신 벌이요, 따라서 다시 하느님께 충실하면 그분께서 다시 백성에게 복을 베풀어 주실 희망도 공통적이다. 다만 신명기계 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말하는 ‘사관의 서술’을 채택했다는 점이 다르다.

 

 

역사를 물려주는 마음

 

참혹한 유배의 체험 속에서 신앙의 역사를 정리하는 목적은 후손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을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쓴 역사서는 사실을 전달하려는 것보다는 의미와 진리를 전달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구약 성경의 역사서를 읽으며 이들이 전하는 정보의 ‘팩트 체크’(사실 확인)에 머물지 말고 이들이 전하려는 근본적인 의도와 의미를 읽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성경은 객관적 기록 이상의 간절한 염원과 소망을 전달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반드시 남기고 싶었던 것을 성찰하고 실천하면 수천 년 전 이들이 겪었던 체험은 헛된 것이 아닐 것이다.

 

구약 성경을 통해 전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으며, ‘모든 유산은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신명기계 신학자들의 메시지를 성찰해 보자.

 

*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고대 근동과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평신도 신학자이다. 주교회의 복음선교위원회 위원이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 위원이다. 저서로 「구약 성경과 신들」, 「신명기 주해」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7월호,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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