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예로보암 솔로몬임금의 뒤를 이어 르하브암이 임금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 임금에게 찾아가 자신들에게 부과되던 ‘멍에’를 줄여달라고 청합니다. 젊은 임금은 원로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강압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내 아버지보다 나는 그대들의 멍에를 더 무겁게 하겠소.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하셨지만, 나는 갈고리 채찍으로 할 것이오.’(1열왕 12,11.14)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갈라 새로운 임금을 세웁니다. 이제 왕국은 남쪽의 유다와 벤야민 지파가 이룬 ‘유다 왕국’과 북쪽의 나머지 열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왕국’, 둘로 갈라집니다. 이 북 이스라엘 왕국의 첫 임금이 바로, 그의 이름의 뜻대로 백성을 위해 일어선 이, ‘예로보암’(백성은 위대하다)입니다. 예로보암은 북쪽의 에프라임 출신으로 본래 솔로몬에 의해 발탁된 사람입니다(1열왕 11,28). 그런데 어느 날 아히야라는 예언자가 찾아와 자신의 새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그중 열 조각을 주며 그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예언자는 나라가 갈라지게 된 것이, 솔로몬의 우상숭배 때문임을 강조하며, 다윗 자손들에 대한 징벌이라고 밝힙니다. 이 소식을 들은 솔로몬은 그를 죽이려 하고, 그는 이집트로 달아나야 했습니다(11,29-40).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이 등극한다는 소식에 예로보암은 돌아와 백성의 대표로 임금 앞에 나아가 세금과 부역을 줄여달라고 청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임금은 강압적인 태도로 나오고,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12,1-20). 르하브암 임금은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치려고 하지만, 다른 예언자 스마야가 나서서, ‘동족을 치지 말라. 이것은 주님의 뜻이다.’(12,24)라는 말을 전함으로써 모든 계획을 취소하게 만듭니다. 아히야 예언자가 예로보암에게 임금이 될 것이라고 할 때, 그에게 한 가지 주문을 합니다. 바로 다윗과 같은 사람, 곧 ‘주님의 명령을 귀 담아 듣고, 주님의 길을 걸으며,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고, 주님의 규정과 계명을 지키는 이’가 되라는 것(11,38ㄱ)입니다. 그러면 그에게도 ‘굳건한 집안에 세워지리라.’(11,38ㄴ) 곧, 그의 자손이 대대로 임금에 오를 것이라는 약속까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예로보암은 임금이 되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가 한 첫 정책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대항하는 성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베텔에, 하나는 단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12,28)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이 금송아지 앞에 예배하게 합니다. 탈출기의 금송아지 사건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탈출 32,4). 또 우상 숭배와 연관되는 산당들을 짓고, 레위인이 아닌 이들을 사제로 임명하고, 축제일도 마음대로 지정합니다. 하느님을 거부하는 세상을 임금이 앞장서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법천지를 만든 이유는 단순합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올라갔다가 자신을 버리고 르하브암을 따르지 않을까?’(1열왕 12,26-27) 바로 자신의 권력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신의 안위와 권력을 위해 그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대로, 제멋대로 하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예로보암은 자신이 세운 제단에 직접 제물을 바치고 사제가 하듯이 분향을 하러 올라갑니다. 그 때 ‘하느님의 사람’(예언자를 지칭하는 말)이 찾아옵니다. 그는 이 불법적인 제단이 파괴될 것과, 후일에 그 성소 자체가 부정하게 될 것(제단 위에 뼈를 태우는 행위를 통해)을 예고합니다. 예로보암이 그를 잡으라 소리치며 손을 뻗는데, 그 손이 마비됩니다. 그리고 곧장 예고대로 제단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임금은 자신을 위해 하느님께 빌어달라고 예언자에게 매달립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기도하자 곧 임금은 건강을 회복합니다(13,1-10). 그러나 이러한 표징과 경고에도 그는 자신의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예로보암을 임금으로 세운 예언자 아히야의 입을 통해서 그에게 새로운 경고를 보내십니다. 병든 아들을 위해 왕비가 비밀리에 아히야를 찾아가는데, 그에게서 거친 말이 쏟아집니다. ‘예로보암의 아들은 죽을 것이고, 그의 집안에 재앙이 내릴 것이다. 그 집안에 속한 이는 다 죽임을 당할 것이다.’(14,6-6) 결국 아들은 죽고, 예로보암도 죽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나답이 임금이 된 지 두 해가 지나자 바아사가 일어나 임금을 죽이고 그 집안사람 모두를 죽인 후 자신이 임금에 오릅니다(15,25-32). 주님의 경고를 듣고도 전혀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기에, 그 경고는 결국 현실이 되어 돌아왔던 것입니다. 이후로 북 왕국에는 끊임없이 모반이 일어나 임금이 죽고, 다른 이가 임금에 오르는 역사가 반복됩니다. 그리고 북 왕국의 임금들에게 ‘예로보암의 길을 걸었다.’ ‘예로보암의 죄에서 돌아서지 않았다.’(1열왕 15,26.34; 16,2.19.26.31; 22.53; 2열왕 3,3;10,29.31; 13,2.6.11; 14,24; 15,9.18.24.28; 17,22)라는 평가가 붙으며, 주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긴 임금들의 원조라는 극도의 불명예까지 예로보암에게 주어집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은 지배자가 아니라, 백성들을 이끄는 이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하느님 앞에 누구보다 충실한 사람이 되어 백성의 모범이 되고, 백성들이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첫째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임금들은 권력에 먼저 집중했습니다. 르하브암이 그랬고 예로보암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길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결국 그들이 가 닿은 곳은 영화와 영광의 나라가 아니라, 분열과 파멸이었습니다. 충실한 이가 되라는 요구, 그것은 과거 임금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 예수님의 왕 직분’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주어지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참, 충실하기가 왜 이리도 어려운지요! [2018년 9월 16일 연중 제24주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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